금문교에서의 밤

– 어릴 적 상상과 마주한 시간의 다리 –

by 엠마


벌써 미국에 머문 지 20일이 넘었다. 여행의 막바지, 조금은 지친 마음과 함께 나는 마침내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녹화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책임감과 일정은 제대로 된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위해 제부가 오늘만큼은 마음 편히 쉬자며, 특별한 일정을 준비해 주었다.


우리는 온 가족이 함께 페리를 타고 소살리토섬에 다녀오고,

밤에는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보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가로질러 페리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

언덕을 따라 굽이진 길과 오래된 건축 양식들이

도시의 나이를 고요히 말해주고 있었다.


멀리서 갈매기 소리가 들리더니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고,

마치 어린 시절 소풍을 떠나던 날처럼,

내 마음은 묘하게 들떠 있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페리에 올랐다.

제부의 제안으로 우리는 배 앞자리에 앉았고,

그 순간부터 바다는 내게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펄럭이는 바람, 강렬한 태양, 바다 내음,

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는 짭조름한 향기까지—

나는 어느새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마음껏 자유를 느끼며 도착한 곳은

작은 정원이 가득한 섬, 산토리오.

꽃이 만발한 집들 사이로 고요함이 흐르고,

마치 도시가 연주하는 음악처럼

한 음 한 음이 조용히 공간을 채워갔다.


이곳에 하룻밤 머물고 싶다는 유혹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배를 타고 돌아왔다.

어릴 적 미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금문교,

그 다리를 드디어 보게 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다리를 마주했을 때,

왠지 모를 실망감이 스쳤다.

다리는 여전히 거기 그대로인데,

그 시절 내가 가졌던 경외심은 없었다.

예전엔 다리가 나를 바라보는 듯했는데,

지금은 내가 그 다리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가며 조명이 켜졌고,

그 붉은 금문교는 마침내 내 마음속에

한 장의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 앞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 속엔,

오래된 꿈을 품고 여기까지 걸어온 나의 성장도 담겨 있었다.


제부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하루를 온전히 여행으로 채웠지만,

즐거움보다 먼저 찾아온 건 체력의 한계였다.

피곤함에 눈을 감은 채,

나는 다시 어린 시절 상상 속에서 그려왔던

미국이라는 세계로 조용히 잠수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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