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포체의 위로

by 엠마


린포체가 한국에 방한하셔서 저녁 공양을 올리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마음은, 어쩌면 워런 버핏과의 식사보다 더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었다.

세속적 기준으로 보면 세계적인 투자자와의 만남이 더 특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삶의 방향을 묻고 싶은 스승과의 식사가 훨씬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런데 막상 식사 자리에 가기 전까지도, 무엇을 여쭤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최근 들어 유난히 지쳐 있었기 때문일까. 해야 할 일은 많고, 마음은 따라가지 못하고, 생각은 많지만 정작 말로 꺼낼 질문은 찾기 어려웠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너무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텅 빈 듯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평온이라기보다 방향을 잃은 침묵에 가까웠다.


드디어 식사 자리에서 린포체께서 조용히 물으셨다.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나는 준비된 질문이 없었다. 그 순간 떠오른 말이 무심코 입 밖으로 나왔다.

“집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아마도 무의식 깊은 곳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 순간적으로 흘러나온 것 같았다.

집착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해도 다시 돌아오고, 다시 돌아온 그것을 또 다루어야 하는 반복 속에서 마음이 지쳐 있었던 것이다.


린포체께서는 잠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습니다. 집착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말씀은 길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오히려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집착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집착을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이미 중요한 과정이라는 말씀은 큰 위로가 되었다.


식사는 편안하게 이어졌다. 함께 공양에 동참한 법우님들의 고민과 수행 이야기, 승원에서의 일상까지 소박한 대화가 오갔다.

기대했던 것처럼 거창한 깨달음이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식사에 가까웠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특별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나 자신을 더 편안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그날 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를 마쳤다.

그런데 다음 날 꿈속에서 린포체를 다시 만났다.


꿈속에서 린포체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을 건네주셨다.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다 잘 될 것입니다.”


그 말 한마디였다.


린포체여서였을까.

그 한마디에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던 불안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이 퍼져나갔다.


다음 날 운전을 하던 중, 갑자기 꿈속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 눈물은 분명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기다리던 이해를 받은 느낌,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에서 흘러나온 눈물이었다.


그 순간 알았다.

나는 위로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말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전해지는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린포체께서는 식사 자리에서 특별한 말씀을 많이 하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분의 사랑은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경험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우리는 종종 더 많은 성취, 더 많은 인정, 더 많은 결과를 통해 안정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워런 버핏과의 식사가 더 가치 있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의 식사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더 소중했다.


나의 질문은 작았고, 답도 짧았지만

그 만남은 나를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게 했다.


집착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마음은 흔들리고, 여전히 생각은 많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집착을 없애야 한다는 압박보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이미 길 위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을 다시 기억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그날의 식사는

워런 버핏과의 식사보다

어쩌면 훨씬 더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봄이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