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래하는얼룩말 Aug 16. 2022

대니쉬 걸

여운을 이렇게 남기게 될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영화 감상이 끝났는데도 내 심장이 아직 쿵쾅 거린다는 건 내가 아주 감명을 받았다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 만큼 여운은 아주 오래갔다. 

대니쉬 걸(덴마크 여인)은 내 인생영화 이자, 에디 레드메인에 꽂힌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은 에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연기의 강약이라면 이런 걸까, 

남성스러움도, 여성스러움도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표현해 낸 그가 너무 멋있었다. 

1920년대 덴마크 코펜하겐을 배경으로 역사상 첫 성전환 수술을 한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영화다. 

그렇다면 연기를 하는 에디도 남자였다가, 여자였다가를 반복하며 연기를 했었어야 했는데, 

실제 트랜스젠더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그는 자연스러웠다. 

그의 작은 몸짓, 손짓 하나까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고, 

며칠간의 여운을 남긴 채로, 그가 나온 영화를 하나하나 훑어보게 했다. 

레미제라블을 아주 감명 깊게 봤음에도 불구, 그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고, 

메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에 함께 했던 그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나를 탓했다. 


그만큼 대니쉬 걸에서의 그의 인상이 아주 강렬했다. 

과할 수 있었던 장면에서도 그는 그저 호흡으로 눈빛으로 전했으며, 

절제된 행동으로 남 녀의 선을 자유자재로 넘어 다녔다. 


순간 정말 릴리인가? 

정말 아이다 인가? 

어쩜 한 사람이 이렇게도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연기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한참을 멍하니, 영화를 감상했다. 


나는 이 영화가 이렇게 슬픔을 자아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시작했었다. 

그저, 

의학계의 한 획을 그은 아주 큰 사건을 영화화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나의 눈물샘은 

이젠 너무도 자연스럽게 릴리의 모습을 한 그에게 

나는 나의 남편이 보고싶어, 나는 나의 남편을 안고 싶어, 노력이라도 해줄 수 없어?' 라며 

숨어 있는 내 남편을 찾아 울부짖는 그녀를 보고, 

수술받으러 떠나는 열차역에서 

마지막 내 남편 아이다의 모습으로 아내 게르다에게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하던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그저 포커스를 그 당시에 받아들이기 힘든 성전환 수술을 진행한다는데 집중했을 뿐, 

아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못했다. 

게르다는 아직도 너무 사랑하고 아끼는 남편 아이다를 보내야만 했다. 

그의 행복을 위해서, 

그의 바람대로 

그를 보내야만 했다. 

그 마음을 그 장면에서야 읽었다. 

그게 그렇게 슬플 거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내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는 게르다의 마음은 어땠을까,

두 번의 수술로 "난 이제 진정한 여자가 되었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세상을 떠나는 릴리(아이다)를 보내는 게르다의 마음은 

감히 헤아리지도 못하겠다. 

나는, 

만약의 내가 그때의 게르다였다면 

있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그의 행복을 위해 보내줄 수 있을까, 

못했다. 이해조차도 못했다. 

정신병이냐며 되려 그를 압박했을 거다. 그랬을 거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며, 

한 인간이 그렇게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왜 이제야 이 영화를 접했을까, 하며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한번 더 감상할 계획을 갖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국영화/또 한 번의 여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