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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다.
우리가 재회한지 2년이 되었다.
한창 여름 휴가철이라 모든 비용이 두 배로 올랐지만 제주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너는 언제나처럼 음식을 준비하고. 운전을 하고. 맛있는 식당을 찾기도 한다.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보여준다.
그러한 의식은 충만하고 평화로운 감정을 느끼게 한다.
함께 여행지에서만 느끼는 감각들을 공유한다.
검고 거친 바위에 부딪히는 바다의 소리
수평선을 물들이는 붉은빛의 굴절과
흩날리는 깃털 같은 구름의 무리들
뺨을 간지럽히던 머리카락의 감촉
깍지 낀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던 습기
여름 공기 사이로 깊숙이 스민 짭짤한 바다 냄새
그런 것들
“나는 노을이 좋아.”
“그래. 너는 노을을 좋아해.”
“어릴 때 동네 아이들이랑 신나게 놀다 보면 밥 냄새가 온 동네에 퍼지거든.
구수하게 뜸드는 냄새가 골목에 가득 차면, 그때 올려다 본 하늘이 온통 새빨간 거야.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또 슬픈지 몰라.
그러면 나는 막 언덕으로 뛰어갔어. 그걸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어린아이 눈에도 노을이 그렇게 보이나... 그만한 아이들이 노을을 볼 줄 아는지 모르겠다.”
너는 왼 얼굴에 노을을 얹은 채로 나를 내려다보며
어린 내가 신통하다는 듯 말한다.
“응. 나만 서 있었어. 언덕 위에. 다들 밥 먹으로 들어갔거든.”
나는 웃으며 너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내가 그래서 널 좋아하는가 보다.”
너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늘 그래왔듯 내 연애는 아래에 불안과 조바심, 공허함을 깔고
그 위에 따뜻하고 강렬하며 절박한 감정을 얹은 케이크 같다.
화려하고 먹음직스럽지만 입 안에 들어가면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허무한 끝맛에 다시 다른 케이크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에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의 케이크 찾기.
서른두 번째 생일은 소금향이 나는 바람과 노을,
그리고 너의 따뜻한 체온으로 빚은 케이크 한 조각이 되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오던 순간보다 더 채워진 마음으로 서울행 비행기 좌석에 앉았다.
좁은 창밖으로 노을이 내려앉는다.
너는 눈을 감고 앉아있다.
먼 지평선 위로 내려앉는 노을은 수평선 위의 그것과 다르게 느껴진다.
저 땅끝에 바다가 있겠지.
어제와 같은 노을이야.
노을이 질 때면 어느 소설 속 남자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방황하고 서성이다가도 노을이 질 때면 집으로 돌아오던 남자.
타오르는 붉은빛이 결국에 어둠을 데려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걸까.
그 절박함 앞에서 우리는 어딘가로 돌아가려 하는지도.
나도 그 남자처럼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어둠을 피해 나를 감싸줄 따뜻한 곳으로.
어쩌면 그것이 너라는 이름의 집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지독한 불안의 원인은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불명확성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무지함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또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야 만다.
너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곁에 있다.
팔걸이 위에 올려진 너의 손을 잡는다.
깍지를 끼고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너는 그저 눈을 감은 걸까. 아니면 잠 속을 헤매고 있나.
나는 바로 옆에 너의 감은 눈꺼풀 뒤조차 볼 수 없다.
붉은 하늘이 보랏빛으로 바뀐다.
엔진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