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정민을 만나러 간다.
일요일 오전.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주 내내 북적이던 버스 안은 어색하리 만큼 여유롭다.
창을 넘어 들어오는 햇살이 제법 부드럽다.
여름이 지나고 있구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에 잠시 생각을 멈춘다.
다듬지 않고 무대 위에 오른 관악기처럼 야성적인,
하지만 영롱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미 노래는 후반부를 향하고 있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귓가에 맴돈다.
우 - 영원할 줄 알았던.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영원할 줄 알았던.
너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 정민이 만나러 가는 중. 입덧 대략 마친 거 같아.-
정민은 너무나 야위어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앉아 있다.
그녀는 두 번의 유산과 한 번의 자궁 외 임신으로 나팔관 한쪽을 잃었다.
정민은 쉬지 않고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처럼
신이 내리는 합격 통지서를 받기 위해 부단히도 산부인과를 드나들었다.
마치 아이를 낳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전에는 본 적 없는 저돌적인 자세로 임신을 시도했다.
그리고 드디어 상처받은 자궁에 아이를 품었다.
그런데 그 후에 찾아온 것은 혹독한 입덧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물조차도.
두 달이 지난 후에 정민은 최소한의 음식 냄새를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적으니
아기는 그녀의 몸에 남은 모든 영양분을 다 앗아가는 듯했다.
보기에도 처절한 생명의 탄생. 이 아닌가.
“괜찮아?”
엉거주춤 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던진다.
“응. 살만해.”
항상 20도짜리 대답.
“살만한가 보네.”
우리는 마주 보고 웃는다.
“아기는?”
“응 도토리 잘 크고 있어.”
도토리는 태명이다. 꿈에서 커다란 도토리를 광주리에 가득 담았다며 조용히 웃던 너.
“다행이다. 예정일은 나왔어?”
“응 4월.”
“그래. 조심해. 항상. 뭐 먹을래. 다 시켜.”
나는 도토리의 이모로서 호기롭게 제안한다.
“나는 울면.”
“여휴, 아직 울면이야?”
“아직은 울면이 좋아.”
정민은 입덧이 조금 가라앉은 후부터 내내 울면을 먹었다.
링거를 꽂은 채 누워있던 그녀의 집에 갔을 때
정민의 남편은 침실 건너편의 작고 어두운 방에서
중식집에 전화를 걸어 울면을 주문했다.
그리고 방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했다.
그때 정민의 동생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남자들이 임신을 하면 좋을 텐데. 그냥 어두운 방에서 오락이나 하면서 버티면 되는 거 아닌가.”
정민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끈기가 없어서 안 돼.”
우리는 그마저도 안되는 거냐며 소리내 웃었었다.
정민은 오늘도 울면을 먹는다.
몇 젓가락 먹는다.
더 먹지 않냐는 말은 귀가 아프도록 들었을 테니
나는 그저 내 몫의 짬뽕을 묵묵히 먹는다.
단무지를 뒤적이며 정민이 말한다.
“이럴 가치가 있을까.”
나는 짬뽕 속에서 오징어 조각을 찾다가 그녀를 쳐다본다.
“이런 고통을 겪으며 태어날 가치가 있을까. 인간이.”
나는 그만 젓가락을 짬뽕 그릇 위에 걸쳐놓는다.
“힘들지”
모른다. 생명이 태어나는 이유를. 그 의미를.
저 땅속에 매미가 왜 한여름 며칠을 살다 말 생을 위해 그리도 애달프게 울어대는지.
왜 해는 뜨고 지는지.
“정민아. 나는 우리가 끝없이 의미를 찾는 사람들인 거 같아.
그냥 의미 없이 오늘을 사는 게 참 견디기 어려운 종인 거 같아.
그래서 우리는 찾고 있는 거야.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그 과정 중에 하나야. 네가 운 없이 우리 중에 제일 먼저 하는 거고.”
그녀는 옅게 웃는다.
“그래도 죽어가며 여위는 것보다 낫잖아.
너는 내가 못 한 창조의 행위를 하고 있어.
눈. 코. 입. 대장. 소장. 위. 간. 척추. 이런 것들이 네 안에서 생성되고 있는 거잖아.
너는 숨 쉬고 먹고 자고 싸고. 평소 하던 그것을 해내면
그 아이가 네 안에서 열심히 만드는 거야.”
나는 그녀의 배를 가만히 바라본다.
정민이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든다.
그래.
우리는 그저 살아내는 것뿐이야. 나머지는 다 알아서 가는 거야.
그게 우주의 섭리든 신의 장난이든.
나는 궁물 속 오징어 조각을 찾으며 단무지를 씹는다.
달고 새콤한 무가 입안에서 아삭거린다.
인생의 의미라는 게, 태어난 이유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알게 되기는 하는 걸까.
너는 울면을 먹고 나는 짬뽕을 먹는다
우리는 메뉴판에서 각자의 선택을 한다.
그리고 책임을 진다. 남기든 먹어 치우든.
“정민아,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뭐?”
“있잖아... 임신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 해서. 아이와 엄마 말구, 남자와 여자 사이에.”
“.......”
정민은 내 질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안다.
그녀는 앞에 놓인 울면 그릇에 젓가락을 넣어 뒤적인다.
“별거 아니야. 섹스를 하다 보면 아이가 생기는 것뿐이야.”
“뭐야. 너 너무 다 살아온 사람 같아.”
“섹스를 아무하고나 하는 건 아니니까.
임신은 섹스를 하고 싶을 만큼 좋아한 이성 간에 이루어진 성과물 같은 거 아닐까.
임신도 중요하지만 출산 이후에 만드는 가족이 더 중요한 거 같아.”
나는 정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침을 삼킨다.
“아이가 태어나서 부부의 관계가 다시 정립되는 거 같아. 주변 사람들을 보면.
섹스로 만든 피조물과 구성한 가족이 서로에게 큰 의미가 된다면
임신은 가족을 만든 빅뱅 같은 걸 거고,
아니라면 뭐. 은정이 말대로 아무것도 아닌 거지.”
정민의 배의 완만한 능선을 본다.
“그렇게 생각하다간 네가 못 견뎌.”
정민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 타이르는 목소리다.
“응...나도 알아.”
“실수를 하잖아. 누구나. 그냥 젊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다가 실수를 한 거야.
서로 감당하지 못해서 헤어진거구.
너랑 걔 사이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그 앞의 일들과는 무관해.
걔는 그냥 사랑을 하려고 너한테 온 거야.”
네가 내게 오기 전에 전처 말고도 또 다른 여자를 거쳤다는 사실을 말해봐야
상황이 바뀔거 같진 않아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나중에 임신하고 와서 살쪘다며 호들갑이나 떨지 마.”
정민은 조용히 웃으며 나에게 밝은 미래를 건넨다.
“그래. 그때는 또 그게 걱정이겠지.”
나도 함께 웃는다.
“내가 참 별걸 다 물어본다.”
“임신의 의미는 철학자에게 물어봐. 힘든 임신부 말고.”
정민은 눈웃음을 지으며
숟가락으로 국물을 홀짝인다.
그래. 너는 그저 너무 어렸던 거 뿐이야.
운이 나빴겠지. 너도 너의 전처도.
하지만 너의 아이는...
나는 너의 눈을 닮은 사내아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낯설다.
나는 엄마가 되본 적이 없어서.
네가 그 아이에게 느낄 애정과 그리움 같은 것을 공감하는 것이
동화책을 읽는 것만큼 막연하다.
중식당을 나와 길을 걸으며 정민이 말한다.
“임신이 좀 힘들긴 한데 꽤 괜찮아. 견딜만해.
심지어 나는 너만큼 열렬히 연애를 하지도 않았잖아. 그런데도 참 좋아.”
정민은 작은 배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그래. 정민아. 너무 보기 좋아. 네가 드디어 뭔가를 찾은 거 같아.”
너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한다.
-입덧 많이 힘든데. 잘해줘. 맛있는 거 사주고.-
문득 네 곁을 지나간 임신의 과정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너는 이미 안다.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