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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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이쯤되면 나라는 인간에 대해 다시 살펴야 한다.


내 연애는 왜 늘 시험하고 싶은 지경으로 가야 하는가.

그것은 나의 문제인가.

아니면 내가 상대를 잘 못 선택한 탓일까.


은정은 대체로 내 연애를 반대했다

무거우면 지친다는 거였다. 내가 항상 무거운 상대를 고른다고 했다.

그녀가 가벼우니 쉽게 말한다고 여겼다.


정민은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연애의 속살을 조금씩 보았다.

중반 이후까지 가면 그녀는 수건을 던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내가 현실 속에 살아야 숨을 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사랑만으로 견디는 건강한 사람이 아님을

그녀는 알았다.


혜정은 침묵했다.

그녀는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때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내가 알아서 나가 떨어지기를.


너를 만나 황홀했다.

실패한 사랑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수정하는 것 같은 일이다.

과거를 바꾸어 다시금 ‘그들은 행복하게 영원히 살았습니다’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기분.

그 황홀한 시간여행 속에 영원히 지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찬란한 행복감을 상환하듯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 사랑이 진실한가. 이 사랑이 가능한 것인가.


겨울이 깊어간다.

매마른 공기에 까슬한 나뭇가지들이

이유도 모른 채 부러진다.

작은 불씨가 산 하나를 불태운다.

뉴스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산을 태워 없애는 영상을 송출한다.

작은 불씨에 모든 것이 재가 된다.

사소한 서운함도

용기 없는 자들에게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서로를 찌르게 한다.


정민을 만나고 그녀의 둥근 배와 전에 없던 환한 미소가 부러웠을까.


너에게 정민의 안부를 전한다.

“정민이 너무 좋아 보였어.”

“그래? 이제 입덧도 끝났고, 한창 좋을 때네.”

너는 어른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걸 어떻게 알아? 한창 좋을 때인걸?”

나는 졸렬하게 너의 말끝을 잡고 늘어진다.

“그냥... 그 정도는 다 알지 않아?”

너는 신호등이 바뀌자 브레이크를 밟는다.

“다 해봐서 좋겠다. 뭐든 다 해봐서.”

“.......”

너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다.


울고 싶다.

나는 정말 엉망이다.

품위도, 배려도, 여유도 상실한 아마추어가 되어

시도 때도 없이 너를 물어뜯을 준비를 한다.

나조차도 나를 위로할 수가 없다.


나의 서운함은

원초적으로 나와 함께 태어난 불안을 만나

거대한 창으로 융기한다.

먼지보다 작은 이유로 너를 공격한다.

너의 침묵이 방패가 되어 내 창을 받아친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창과 방패를 30년 동안 갈고닦아

마침내 서로를 향해 사용한다.

다시는 없을 전쟁처럼 결연히.

오늘도 우리는 반가움과 그리움으로 시작해

원망과 비난. 침묵과 외면으로 결론을 맺는다.


우리의 전투는 날을 거듭할수록 치열하고 저열하다.

누가 이긴다 해도 처참한 폐허는 각자의 몫이 된다.

피투성이 전사가 되어 벌판에 뒹군다.


누가 누구를 상처 주었는지 분간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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