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공항은 북적인다.
나는 무작정 발권한 국제선 항공권을 들고 게이트 앞에 선다.
5일의 휴가를 쓰고, 7일 간의 여행을 떠난다.
내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소원의 기둥'이다.
12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이스탄불에도 봄은 와 있다.
바람은 차갑지만 은은하게 바다 냄새가 스며있고
노란 택시들이 줄지어 승객을 태운다.
꽃을 품은 가지들이 온통 봄을 터뜨릴 준비를 마쳤음을 알린다.
환전소 앞에 신문을 읽고 있는 남자. 길거리 케밥 집 앞에 줄 선 사람들.
늦은 오후 낯선 나라에서 보는 장면들도
내가 사는 곳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여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너의 표정도.
어쩌면 이미 두 사람이 마음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보다 예뻤나.
기억할 수 없는 얼굴. 그저 수줍고 즐거운 모습
바라는 몸짓. 환희에 찬 실루엣만 기억난다.
아마도 너를 만나던 날들의 나도 그러했으리라.
소원의 기둥 앞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등 뒤로 긴 줄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품고 웅성이며 서 있다.
엄지손가락을 넣고 한 바퀴 돌리며 소원을 빈다.
- 아무렇지 않게 하소서. -
신이여. 당신이 계신다면. 나를 치유하고 아무렇지 않게 하소서.
당신이 만들어낸 이 모든 피조물들이 오늘 죽고 내일 다시 태어나듯.
내 안에 모든 감정을 죽이고 또 새로이 태어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가 비로소
아무렇지 않게 하소서.
거대한 돔 천장에 새긴 찬란한 모자이크를 올려보며,
신을 향해 기도하던 수백 년 전 여인의 모습을 상상한다.
신성으로 완성한 저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수많은 생사 앞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나는 죽고 또 누군가는 태어나 저 그림을 보러 올 것이다.
신이 있다면 나를 다시 세울 거다.
수 천 년간 인간이 신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작품들을 만들어왔으니
어여삐 여긴 신이
멀리서 온 나 같은 이방인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모른다.
배신과 치욕의 기억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기를
증오와 복수의 감정으로부터 나를 구원하기를.
성당인지 모스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2,000년이 다 된 건물을 등에 지고
카파도키아행 비행기를 검색한다.
신에게 한 뼘만 더 가까이 가보고 싶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
너와 그녀가 함께 하는 순간이 자꾸 떠오른다.
신에게 가서 묻고 싶다.
나한테 왜 이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