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54

by ZAMBY


엄마는 먹지 못한다.


삼키지 못한다고 해야겠지.


대신 하얀 곰팡이들이 입안에 무늬를 놓았다.

살아있는 사람의 입안에 곰팡이가 생길 줄은 몰랐다.

엄마의 몸은 작게 꼬부라졌다.

척추가 얇은 살 아래로 그 모양을 드러냈다.


우리는 병원으로 간다.

의사에게 엄마의 입안을 보여주고 상태를 설명한 후.

입원 수속을 위해 병원 2층으로 향한다.

병원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픈 사람이 많구나.


병원에 오면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어둡고 푸석한 기운이 가득한 곳.

직원들은 옅은 친절을 내밀지만 시간과 불안에 지친 사람들은 여유가 없다.

휠체어에 앉는 엄마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마스크를 낀 엄마의 얼굴은 사라질 것 같다.


“아빠가 병원 가지 말라 했잖아.”

작은 음성이 마스크 안에서 삐져나온다.

“응? 엄마? 뭐라구?”

“아빠가....”

아빠는 지난 두 번째 항암에 실패한 후 엄마에게 대체 의학 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엄마의 몸속에 있는 암세포를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병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중에 엄마는 매일 여위어 갔다.

아빠의 서재에는 대체 의학에 관한 책들이 수북이 쌓여갔다.

엄마의 입안에 생긴 곰팡이들을 관리할 방법은 책에 없어서

나는 회사에 있는 아빠에게 말하지 않고 엄마를 병원에 데리고 왔다.


“알았어. 아빠한테 전화할게.”

꼬부라져 곧 반으로 접힐 같은 엄마는 이제야 안심이 되는 듯 시선을 옮긴다.

“아빠, 병원에 왔어요. 네. 입안도 보여주고, 우선은 링거를 맞아야 할 거 같아서요.

네. 나중에 오세요.”


엄마는 병실에 다시 누웠다.

4개월 만이다.

4개월이 엄마를 집어삼켰다.

내가 터키로 떠나기 전날 엄마는 건강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요일 아침을 보냈었다.


“뭐 힘든 일이 있어?”

엄마는 마주 앉아 안부를 물었고

나는 터키에 가보고 싶다는 뻔한 대답을 했다.

“그래....젊어서 뭐든 많이 해봐야지. 많이 보고.”

내가 워낙 정신 나간 표정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엄마는 나를 두둔하곤 본인의 바람도 덧붙였다.

“아빠 퇴직하면 나도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다.”

나는 엄마의 말이 사뭇 반가웠다.

“엄마, 지금도 다닐 수 있어. 나랑 가도 되구.”

“아니. 아빠랑 같이 가야지. 아빠 일하는데 나만 다닐 수는 없지.”

엄마는 흔한 계모임 해외여행도 가지 않았다.

아빠의 아침을 챙겨줘야 한다는 이유였다.

“아빠는 좋겠다. 엄마 같은 마누라가 있어서.”

앞에 놓인 커피잔을 툭툭치면서 아빠를 추켜세웠다.


엄마는 잠깐 쉬었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아빠랑 결혼할 때 결심을 했었어. 저 사람을 꼭 행복하게 해줘야지.

그런데도 참 힘들었어... 그 마음으로 결혼을 해도.”

엄마는 준비한 듯 말을 이었다.

“결혼이 그런 거야. 뭘 받으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몇 배로 힘들어져.”


나는 갑자기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엄마가 의아했다.

“받으려고 하지 마. 내가 뭘 해줄까 마음이 들 때 결혼을 하면 된다.”

그때 나는 내 이별의 배신감에 압도되어 그 말을 흘려들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에게 결혼의 조건은 '포기'였구나.

받고자 하는 마음의 포기, 주고자 하는 마음의 확신.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하는 와중에도

남편의 허락만을 기다리는 엄마를 오늘은 이해해 보기로 한다.

병실에 누워있던 엄마는 입과 목을 뒤덮은 곰팡이를 살피는 내시경을 받아내기 위해

검은 방으로 들어간다.

잔인한 곳.

고통에 뒤틀린 소리가 들린다.

내시경을 받고 나온 엄마는 더 이상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우리는 생명이 꺼트려지는 과정이 이토록 고요하고

또 거세다는 것을 목도한다.


엄마의 모든 삶이 사그라드는 순간에

우리는 소리친다.


엄마는 고요하고

우리는 소란하다.

청각이 마지막까지 살아있을 거라는 믿음은 공고해서

침묵하는 엄마에게 절박하게 외친다.


“엄마. 고마워. 내 엄마로 살아줘서. 우리 꼭 다시 만나.”


무슨 말이든 당신이 들을 수 있는 순간까지 들려주고 싶다.

다시는 만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기처럼 엄마의 볼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운다.

"우리 꼭 다시 만나."

내 눈물이 엄마의 여윈 볼우물에 고인다.

"엄마. 사랑해."

채 감기지 못한 엄마의 눈이 허공을 응시한다.


이별한다.

나는 이별이 이런 것인 줄 전에는 몰랐다.

이제야 진짜 이별을 한다.

무엇으로도 돌이키지 못한다.

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비춘다.


칼날처럼 차가운 빛이 우리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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