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0

서른 둘 여름 - 재회

by ZAMBY



- 생일이라 전화한건데.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다. -


그래.

네 앞에서 할말을 찾지 못하는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 고생했어.-


.


묻고 싶다.

그녀는 어디에 있냐고.


- 계속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었네. -


..............

할말을 찾아야한다.


헤어진 사람한테 뭘 연락을 해.

나는 웃는다.


- 그래. 그렇지.-

너도 웃는다.


- 많이 힘들었겠다. -

뻔한 공감이 커피숍안을 떠돈다


응. 힘들었어.

나는 그말을 삼키듯 대답한다.


- ............. -

너는 말이없다.



괜찮아.

침묵을 깬 나의 인사에 너의 눈이 반짝인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는 안다.


- 보고싶었어.-


내 심장을 주무르던 너의 한마디.

한마디로 나를 달리게 만들었던 마법.

그 후의 말은 스스로 짐작해야만 했던 우리의 대화.

나는 묻지 못하고, 너는 미리 답하지 않았던 창과 방패의 이야기.


왜. 라고 물어야하지만

나는 묻지못하는 병에 걸린, 창을 든 여자이므로

그저 조용히 책장을 넘긴다.


한번 더 단단하게 매듭을 만든다.

나는 이제 괜찮아.

매듭 하나

지금은 애도가 필요한 시간인거같아.

매듭 둘

지나간 일에 마음쓰지 않아도 돼.

매듭 셋


- 너는 .. 참..-

끝을 흐리는 너의 말투.

늘 나에게 다음 순서를 넘기는 너.


물어보고 싶었다.

우리가 정말 사랑을 했던가.

그게 정말 사랑이었을까.


내가 사랑이라 이름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 내가 부른 것임을 이제는 인정해야한다.

나는 질문하지 않기로 한다.

네가 넘긴 바톤은 이제 그저 길위에 두고 가기로 한다.



나는 정말 괜찮아.

마지막 매듭.


- .......... -

괜찮다는 말의 의미는 너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다.


- 벌써 누가 생긴거야?-

너의 반문이 생각보다 대중적이다.


............

벌써. 라니.


- 벌써….-

나는 내가 그날 본 장면을 잘게 씹어 삼킨다.

너의 가벼움을 비난하고 눈앞에 물컵을 네 얼굴에 쏟고 싶다.

너는 말끝을 흐리고 나는 대답을 지운다.


찬란한 시절이 빛을 잃고 스러진다.

우리는 이미 다 했다.


네가 7년의 세월 후에 내 안에 다시 들어 앉았던 것 처럼.

내 남은 인생에 또 한번 사랑이 없을까.

내가 이름했던 모든 사랑이 나를 빚어 지금 여기에 앉혔다.

그 모든 사랑이 때로 모질고 때로 부드럽게 나를 어루만져

길위에 홀로 세웠다.


잘가.

우리는 길위에서 돌아선다.

벌써. 라는 단어에 비난과 책망, 의아함과 멸시의 뉘앙스가 있다는 것을 너를 통해 알게된다.

네 입에서 나온 벌써라는 단어는

내가 느낀 배신감을 내 사랑의 천박함으로 치환시킨다

육중한 배신감보다 묽은 천박함이 이별하기에 낫다.


나는 이제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으며 다음 이야기를 상상한다.

인생이 명랑하고 심플한 전개로 이루어지려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검색창에 질문하려고 전화기를 꺼낸다.

초록색 검색창에 커서가 반짝인다.


빌딩 숲 사이로 불어드는 더운 바람에 가로수가 미세하게 경련한다.

정류장에는 교복차림의 두 남자아이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각자 조용하다.

오토바이를 탄 배달원이 다르르 갓길을 지나고

벤치에 앉은 할머니는 연신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지나가는 여름의 풍경들이 귀엽다.

검색창에는 '명랑하게 살아야 행복하다' 같은 신문기사가 노출된다.

내 다음 이야기는 조금 더 밝고 경쾌한 스토리가 되기를.



저기 버스가 보인다.

나는 명랑하게 일어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라비안 나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