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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5시간전

미국의 흔한(?) 생일파티

나의 미국수난기 8 - 몸고생 편



내 생일은 여름 한가운데 있다.

엄마는 나를 낳고 외할머니가 선풍기를 못 틀게 하셔서 온몸에 땀띠가 났더랬다.

한편, 나는 어린 시절에 생일이 방학중이라 생일파티를 할 수 없는 것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막연히 내가 아이를 낳으면

방학이 아닌 봄이나 가을에 태어났으면,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내 아이는 아름다운 계절을 선택했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고, 과일과 채소가 무르익어 모든 것이 풍성한 가을에.

그래도 나는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지는 못했다

아이의 생일은 늘 내가 회사에서 무척 바쁜 시즌과 겹쳤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생파를 피했다.


그랬던 내가 미국에 온 것이다.

파티의 나라, 미국에.

뭔 파티를 이리도 좋아하는지

1월에는 신년파티, 2월은 발렌타인, 3월은 성패트릭, 4월은 부활절, 5월은 어머니, 6,7,8월은 풀파티, 9월은 바비큐파티, 10월은 할로윈, 11월은 추수감사, 12월은 성탄.

파티와 홀리데이를 사랑하는 미국인 들은

아이들의 생일파티도 참 요란하게 하곤 한다.

모든 아이들이 생일파티를 성대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생일파티에 다녀온 아이는 그간 참고 있던 욕망을 드러냈다.

바쁜 엄마가 덜 바쁜 내가 되면서,

나는 더 이상 파티,라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집 마당에서 하는 파티, 수영장에서 하는 파티, 체육관에서 구르며 하는 파티, 스케이트장에서 하는 파티, 호텔에서 하는 파티, 미술학원에서 하는 파티, 도자기 가게에서 하는 파티.....

뭐. 종류도 다양하다.


미국 생일파티에서 본 신개념 아이템들은

구디백(Goody bag). 피냐타(piñata). 컵케익. RSVP 같은 것들이다.




# 생일파티 2달 전

초대장을 만들기 전에 생파 장소와 일시를 정한다.

집에서 할지, 다른 곳에서 할지. 고민했다

집은 너무 좁고 청소를 수반하니 금세 포기한다.

집 근처에 농장이 있다.

말, 닭, 칠면조, 오리, 돼지, 고양이 이런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그런 농장

음.

그래 여기는 미국이고, 또 시골이니까

세상 특별한 생일파티가 되겠군.

선금 50불을 걸고 예약을 완료했다.



# 생일파티 1달 전

생일이 되면 몇 주 전에 초대장을 만든다.

청첩장처럼 온라인 초대장을 만들어 엄마들에게 메일이나 전화번호로 보낼 수도 있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종이 초대장을 한 명 한 명 나눠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초대장 제일 끝에 RSVP라고 적고 호스트의 전화번호를 적는다.

알고 보니 불어다.

레포데 씰 부 쁠레

발음이 맞는지 모르겠다.

영어로 해석하면 Please Respond, 우리말로 하면 회신 바람, 정도 되겠다.


아이는 열심히 생일파티 초대장을 만들었다.

본인 태몽을 모티브로 아기자기하게.

어린 시절로 돌아간듯한 기분.

조금 설렜다.




# 생일 파티 2주 전

미국 아이들의 생일파티에는 빠져서는 안 되는 아이템이 있다.

구디백.이라는 것인데

아마도 Goody Bag, 답례품 정도가 아닐까.

생파를 마치면 친구들에게 작은 가방을 준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고 귀여운 물건들과 과자, 사탕을 담아서.

세상 신박한 물건들을 주문한다.

오, 이런 것도 있네?

와, 요건 뭐지? 하면서.

환율이 오르는 속도로 내 장바구니도 차오른다.




# 생일파티 1주일 전 혹은 직전

미국은 파티의 나라라

파티 용품을 파는 가게가 동네에 종종 있다

월마트에는 헬륨가스를 비롯해 각종 파티용품 코너가 큼지막하게 자리한다.

이 맘 때면 크리스마크 용품을 위한 커다란 창고가 마련되기도 한다.

나는 대선 이후 끝을 모르고 치솟는 환율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며

열심히 달러를 써댔다.

공포심을 이긴 나의 소비욕구

아니면 행사의 완벽성을 기하는 철두철미함?

여튼.

생분해되는 일회용 식기부터, 컵케익에 꽂는 귀여운 장식들, 펜시한 풍성과 냅킨.

생일 주인공을 장식하는 헤어밴드와 뱃지

아이들을 위한 간식과 주스,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는 샴페인과 알코올이 들어간 샴페인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냉장고과 식료품 창고를 가득 채우고

생일 아침을 맞이했다.


코리안 스타일로 미역국을 끓이고

아메리칸 스타일로 쿠키를 굽는다.

마시멜로를 이용해서 생파에 오는 친구들의 이니셜을 하나하나 새긴다.

마음을 움직이는 파티.

고객의 감성을 건드리는 행사.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하는 완벽한 날을 위해. ㅡ.ㅡ

회사일을 하듯이 체크리스트를 점검하고 타임테이블을 만들어 하나씩 클리어한다.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혹시나 발생할 변수에 대해서도 고려하여 이것저것 추가로 대비책을 만든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왜 그리도 생각해 대는지.




그렇게 아이의 생일파티는 시작되었다.

농장의 역사가 100년이 되었다는 이야기

유기농 채소들을 기르는 이야기

자연방목 치킨과 칠면조의 기질 이야기. 수탁이 가족을 지키는 이야기

소와 염소가 만든 치즈 이야기

유유히 꼬리를 흔들며 파리를 쫓아내는 초원 위의 말들을 바라보며

카우보이 모자를 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로빈윌리암스를 닮은 분이셨다.


미국 수퍼마켓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대파도 뽑고

아이들 얼굴만 한 고구마도 캐고, 당근도 뽑았다.

허브나 케일 같은 잎채소와 고추, 토마토 같은 열매채소도 바구니에 담았다.

미국에도 수세미가 있다는 걸 알았고

그 밭에서 자란 잡초나 채소잎으로 가축들을 먹인다는 것도 알았다.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한 친구는 닭에게 물려 시무룩해지기도 했다

서로 더 큰 말을 타겠다며 다투는 아이들도 있었다.

해가 저물도록 로빈윌리암스를 닮은 그 어르신은 아이들에게 농장의 모든 것을 알려주셨다.

감동적이었다.

아이들에게 늘 다정한 사람들. 관대하고 따뜻한 배려.

이 나라의 어른들은 기다릴 줄 안다.

아이가 실수를 하더라도 처음부터 못하게 막는 일이 적다.

그래서일까.

여기 아이들은 늘 기가 살아(?) 있다.

가끔은 부럽고 때로는 의아하다.

새치기를 해도 당당하고

1학년이 되어도 히이잉... 하며 우는 아이들도 왕왕 보인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배려심 있고 건강한 아이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모나고 이기적인 아이는 마음의 말을 거르지 않고 제 권리인 양 내뱉는다.

미국 아이라고 다 자립심 강하고 나이스 하지 않다.

못된 녀석은 못됐다.


다행히 생일파티에 그런 아이들은 배제되었다

좀 당하는 성격의 내 아이는(순전히 내 생각에)

그런 친구들을 과감히 명단에서 제외했다.

작은 복수인가.

나 역시 딸아이의 결정에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생전 처음 해본 야외 파티는 성공적이었다.

한국인 가족들은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고

현지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다정한 인사와 따뜻한 포옹으로 나를 응원해 주었다.

아이는 행복해 보였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즐거워 보였다

나의 체크리스트 마지막.

참석자들에게 사진을 공유하는 일까지 모두 마치고 하루가 저물었다.



미국의 생일 파티는 내가 한국에서 일을 하며 만드는 의전행사와 같았다.

자연스럽게 집으로 불러 떡볶이나 나눠먹는 그런 파티가 아니었다.

그래서 좀 더 의미가 있었던 지도

생일의 주인공인 내 아이뿐 아니라

두 달에 걸쳐 그걸 준비한 나에게도 참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참.

이번 생일에는 하지 못한 피냐타. 터뜨리기는 우리나라 박터뜨리기 같은 놀이다

종이로 만든 커다란 인형모양 박스에 사탕이나 초콜릿을 가득 담고

아이들이 장난감 망치로 두드려서 터뜨리는 놀이다.

멕시코 전통 놀이라는데

월마트에 있던 커다란 미키마우스 상자는 매력적이었지만

그 안에 사탕은 내가 구입해서 채워 넣어야 했다.

오우, 그건 자신이 없다.

역시 자본주의의 미국.

뭐 하나 공짜로 되는 게 없다.


피냐타 자료화면(출처. 네이버)




생파 이후로 나는 장을 보지 않는다.

크레이지 환율에 더 이상 환전을 할 수가 없기에

쌀밥에 김치로 끼니를 때우며 1300원대로 내려갈 순간을 관망한다.


둘째는 이미 한참 남은 본인 생일파티의 참석자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벌써 머리가 아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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