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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Nov 14. 2024

미식의 나라

나의 미국수난기 7 -마음고생 편

다 먹고살자고 하는 말 아니가.

한국인은 밥심이지.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먹는 게 남는 거다.


뭐. 당장 생각나는 먹음, 에 관한 우리의 속담 혹은 격언들이다.

먹는 행위라 함은 무릇

좋은 식재료로부터 시작하여 적절한 레시피, 정성, 그리고 차림새,

보고, 입에 넣고, 씹고, 향과 맛을 음미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과정적인 면에서 한국의 미식은 매우 수준이 높다 하겠다.

미국에 비하면 말이다.

미식으로 유명한 이탈리아나 프랑스과 견주어도 한국의 가정식은

결코 뒤지지 않을 거라 자부한다. 가정식 미슐랭을 서열 지어도 자신 있다.



국뽕이 늘 가득한 나는.

해외에서 잠깐 살면서도 한국이 왜 더 좋은가에 늘 도취된 시선으로 그 나라의 삶을 바라본다.


먹음의 첫 단계인 식재료.

한국땅의 채소와 과일은 무르고 수분이 많으며 대체로 껍질이 얇고 순하다.

그래서 보관하기에 쉽지 않고 쉬 상하지만

생으로 먹을 때 그 향은 진하고 식감은 사람이 그것에게 기대하는 느낌에 가장 알맞다.

파, 무, 당근, 호박, 고구마 같은 채소들은 그냥 생으로 먹어도 단맛과 그 특유의 사각거리는 식감이

단단하고 밀도가 높은 이곳의 것들과 차이가 난다.


한창 무와 호박의 계절이다.

미국의 무는 단단해서 칼로 썰때 마치 커다란 당근을 써는 기분이다.

(실제 미국 당근은 한국 당근보다 2배 단단하다. 내 느낌상)

칼부리를 밀어 넣으면 쩍 갈라지는 우리 무와 달라서

무생채라도 해먹으라치면 도마 위에서 한판 씨름을 한다.

가끔 데굴데굴 반쪽이 굴러 떨어지기도 한다.


무생채, 깍두기는 그 아삭한 식감이 맛의 절반인데 여기서는 (과장을 조금 하자면) 가끔 딱딱한 지우개를 씹는 기분이 든다.


호박은 어떤가.

마녀의 집 앞에 가득할 거 같은 선명한 오렌지 빛깔의 호박.

꼭지는 얼마나 굵고 초록빛인지

가을철에 이 녀석으로 등을 만드는 게 당연한 자태다.

하지만 그 맛은,

우리 늙은 호박에 견줄 수가 없다.


어디에나 굴러다닐 법한 한국의 늙은 호박.

겉은 거칠고 색도 한참은 날아가서 허여누르스름하기만한, 꼭지도 말라비틀어진 볼품없는 늙은 호박


반으로 쪼개어 속을 긁어내어 듬성등성 썰어

찹쌀에, 팥에, 새알까지 넣어 푹- 오전 내내 끓이면 달고 고소한 그 죽맛이란!

반짝이를 뿌린 듯 영롱한 짙은 노란빛.

동네 시장어귀에 어디든 보이는 노란 호박죽.

그 맛을 저 동그랗게 쌔끈한 제법 젊어 보이는 미국호박은 따라올 길이 없다.


죽을 끓이려다 한두 주먹 남겨서 채를 썰어 찹쌀가루 솔솔 뿌려 바삭하게 구워내면

그 달달한 호박전* 맛은!

* 내 알기로 늙은 호박전은 경상도 향토 음식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수염이 숭숭한 거친 호박잎을 쪄서

모락모락 김 나는 하얀 밥을 감싸 간장 양념에 푹 찍어 먹는다.  

질기고 단단한 콩이파리도 양념에 재워 밥을 싸 먹으니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답다.

찬바람 부는 요맘때 점심으로 우럭탕 한 그릇 먹기 위해 회사 앞 횟집에 들르면

늘 상위에는 호박전 한 접시가 자리하고 있다.

진정한 애피타이저다.



먹는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글이 안 써진다.

너무 많은 먹거리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분잡 하다.




보드랍게 입안에서 뭉개지던 딸기, 복숭아.

달달한 향이 입냄새도 가려주던 한국의 과일들.

보드라운 땅에서 여리고 부드럽게 자라난 채소들.

좁은 데다 비도 많지 않은 땅에서 나오는 맛 나고 좋은 물.

남의 나라 안 먹는 산나물에 해초까지 제철이면 향긋하게 무쳐내는 거친 손마디까지.

오늘도 한국 뉴스는 절망과 울화, 슬픔이 묻어나지만

나는 그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먹는다는 것은,

곧 삶 그 자체이다.

씨를 뿌려 비바람 견뎌 사계절을 거쳐 거두고

모진 풍랑에 살을 찢는 추위에도 그물을 던져 올려

깨끗이 씻고, 정성스럽게 만들어,

입안에서 그 즐거움을 느끼기까지

어느 것 하나 거저 오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 먹음의 길목마다

한국의 땅과 사람, 만드는 방식과 먹는 방식이 모두 좋다.

좋다.

한국인으로서 먹고사는 것이 참 좋다.

미국 학교에서

냉동치킨너겟하나 끼워진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우리 초등학교 급식 조리사님들께 큰 절을 하고 싶다.

5대영양소가 다 같은 영양소가 아니다.

구색만 맞으면 뭐 하나.

먹음의 행위가 이다지도 하찮은 것을.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하고 기본적인 행위가

자고, 배설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더라도

먹는 일은 천차만별인 것은 그것이 문화와 정서, 토양과 풍습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 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부심을 느껴 마땅하다.

우리는 미식한다.

왕이나 귀족이 아닌 서민의 음식마저 이토록 맛나게 발달한 대한민국

전쟁통에도 돼지국밥 끓이고 밀면을 말아먹던 사람들

콩으로 된장 쑤고, 배추 절여 김치 담그는 베지테리언 민족.


오늘도 나의 국뽕은 미국산 호박으로 전을 부치다가 시작된다.

왜 이리 맛이 없나

내 실력이 문제인가. 호박, 네가 문제인가.







예쁘기만 해서 전등갓으로만 쓰이는 너



호박죽 한그릇 따뜻하게 생각나는 아름다운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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