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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머릿속을 뒤흔든다.
엄마의 비명소리와 아빠의 목소리.
응급실의 고요를 깨며 들이치는 찰나의 소음들.
인간의 의식 마지막에 남는 감각이 청각이라고 했던가.
잠든 엄마를 바라보며 이틀 전의 장면들이
모두 소리로 기억되었음을 깨닫는다.
엄마는 주저앉았다.
그녀의 몸은 버스에서 내려 바닥을 딪는 순간 힘없이 내려앉았다.
전이된 암세포가 다리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를 갉아 먹어버린 것이다.
6년 전 엄마의 한쪽 가슴을 앗아간 녀석은
방사선에 검게 타버린 여린 피부 아래 깊이 숨어,
무자비한 항암제를 교묘히 속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적당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순한 암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수십 년간 불면의 늪에서 헤매는 폐경기 여성의 몸 속에서
교활하고 탐욕스럽게 증식했다.
작고 여린 중년 여자의 몸에 들러붙어
통계상의 5년 생존률을 올리는데 기여하고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무섭게 자기 변이를 성공시켰다.
엄마는 완치판정을 받고 1년이 지난 봄,
산과 들에 철쭉이 불붙듯 피어오르는 계절.
내가 튀르키예게서 돌아오던 날.
119 응급구조대 차량에 실려 종합병원 응급실로 들어왔다.
좀처럼 아픈 기색을 하지 않던 엄마였지만
해가 진 후부터는 몸을 뒤틀며 신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 결국에는 비명을 질렀다.
고함량의 진통제가 투여되자 엄마는 조용히 잠들었다.
나는 실연과 배신의 아픔에 허우적대는 성인 여자에서
고통과 죽음의 경계에 선 어미를 지켜보는 새끼로 역할을 바꾸게 되었다.
인생의 시나리오가 한순간에 변경된 탓에
나는 이전에 맡았던 내 배역을 까맣게 잊었다.
생과 사가 공존하는 육중한 무대 위에서
배우는 절규하거나 기도한다.
나는 순식간에 신 앞에 선 어린양이 된다.
기도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신 말고는 매달릴 대상을 찾을 길이 없어
처음으로 신이라는 존재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제발 저를 용서하소서. 그리고 저 여자를 구하소서.
한평생 원하는 것이라고는 남편뿐이었던 저 여자의 인생을 구원하소서.
한 번만 저 여인에게 생을 준다면
내 전부를 걸어 당신을 섬기겠나이다.
태어나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확실한 감정.
나를 주고 누군가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을 신에게 고백한다.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하려고
나를 이런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했는지,
신에게 묻는다.
나는 늘 내가 받는 것은 당연하다 여겼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야 마땅하고,
내가 준 사랑의 밀도만큼 사랑을 받아야 합당하다고 여겼다.
한 번도 ‘거저 주는 법’을 몰랐고,
그래서 항상 채워지지 못했다.
정민이 미지근한 사랑만 한다며 안타까워했고,
혜정이 아내로서 응당 인내해야 하는 부분이 부족하다고 여겼으며,
은정이 남자를 사랑할 때 외로움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거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나보다 자신을 잘 알았다.
참을 수 있는 것과 참지 못하는 것,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았기에
선택했고, 또 이별을 감내했다.
나는 몰랐다. 저울질하느라.
내가 모두 응당 누려야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들을 사랑하여 내가 누릴 다른 행복을 포기했고,
그래서 그들을 기쁘게 했다 믿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한 적도 없었고
더군다나 그들이 그것을 좋아할 리도 없었다.
다만 사랑했고 그것으로 기뻤음을.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후회할 일도 또 바랄 것도 없음을.
하루하루 내 앞에서 스러져가는 생명을 통해 신은 나를 가르친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나는
불안 없이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에 포기하는 과정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