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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커피 May 08. 2024

속죄

이언 매큐언/ 문학동네

브라이어니는 로비가 세실리아만 주목할 것이라고 짐작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는 정신병자가 아닌가? 누구라도 그의 먹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당연히 가장 약해 보이는 대상을 고른 것이다. 동생들을 찾아 어둠에 잠긴 낯선 곳을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용감하게도 섬에 있는 예배당까지 찾아간 깡마른 어린 소녀. 브라이어니 자신도 그의 희생양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더욱 커지면서 결심이 확고해졌다. 불쌍한 사촌이 진실을 밝힐 수 없다면, 그녀가 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할 거야. p.248




 이언 매큐언의 첫 책은 <견딜 수 없는 사랑>이었다. 아마 <속죄>를 먼저 읽었다면 나는 작가의 전작을 모두 독파했을 거다. 4부로 나눠진 각각의 챕터만 따로 보아도 한 편의 소설이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글을 잘 쓰는 작가임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소설가 존 맥가헌은 '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뚜렷이 보이지 않았던 사건, 말, 표정, 사물들이 다시 첫 장을 읽었을 때 선명해지는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놀라운 경험이 내게는 너무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한국작가로는 한강작가가 유일한 것 같다.


 회전판 메뉴처럼 각 인물들의 시점에서 보는 상황들로 채워진 1부가 어지러웠던 이유도 3부에서 작가의 의도였음을 알게 된다. 1부가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2부 3부의 양이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데 이것도 작가의 의도라고 한다. 독자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다는데 1부와 2,3부의 글자 수까지 맞췄다는 작가의  인터뷰글을 읽고 사이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성격이라고 해두자. 작가를 신과 동급으로 여기는  브라이어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언 매큐언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예측할 수 없는 전개라고 할 수 있다. 강간범으로 몰린 로비가 경찰에 잡혀가기까지 1부를 긴 호흡으로 이끌었던 작가는 2부에서 프랑스 됭케르크로 장소를 이동한다. 갑자기 전쟁이라고? 2부는 됭케르크로 퇴각 명령을 받은 영국 군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935년 로비는 감옥에 들어가고 5년 후 감형을 위해 전쟁에 참전하는 걸로 설정이 되어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지막 '1999년 런던' 파트에서 로비와 세실리아가 오고 갔던 편지와 전쟁박물관등의 자료, 자문단등의 조언을 토대로 2부가 브라이어니의 창작물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반전의 반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13살 소녀의 거짓말로 감옥에 가야 했던 똑똑한 청년  로비 터너, 그 일로 가족과의 모든 인연을 끊어내고 연인을 기다리는 언니 세실리아. 자신을 강간했던 재벌집 아들 폴 마셜과 결혼한 사촌 롤라. 

13살 소녀의 증언만으로 추가 조사 없이 로비는 강간범이 되어 버렸다.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보낸 음란한 편지와  상류층이 아닌 가정부의 아들이었다는 이유가 아마도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로비는 내세울 것 없는 가정부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잭 탤리스(브라이어니의 아빠)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주인집 딸인 세실리아와 같은 대학을 다녔지만 어색한 기류만 흐르던 둘 사이에 그녀에 대한 노골적인 편지가 트리거가 되어 둘은 사랑의 감정이 화산처럼 솟아오르던 찰나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집에 와 있던 사촌 롤라가 성폭행을 당한 현장을 브라이어니가 목격하고,  범인으로 로비를 지목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다음 세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첫째,  브라이어니가 진실이라고 믿는 그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둘째, 롤라와 폴 마셜의 죄는 누가 단죄하는가?

셋째, 브라이어니는 죄책감으로 당시 사건을 59년 동안 책으로 쓰고 사후에 출판을 하려고 한다.  그녀는 속죄를 할 수 있을까?



 2008년 개봉한 영화 <어톤먼트>에서 가장 충격적인 인물은 폴 마셜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비치였다. 배우에게 이런 면이 있지 않을까 싶은 정도로 느끼한 재벌도련님 연기가 그냥 천성 같았다. 역시 배우는 배우다.

로비는 책에서는 폴 마셜과 비슷하게 키도 크고 덩치가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제임스 맥어보이는 작고 왜소해서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감독이 눈빛 때문에 캐스팅을 했다는 인터뷰를 보고 그냥 수긍이 되었다. 그리고  미남이라는 걸 이 영화를 보고 알았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대부분 실망스럽기 마련인데 역시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가 이를 뛰어넘기도 한다.

타자기 소리로 시작하는 음악은 극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브라이어니의 briony 테마곡인데 정말 잘 어울린다. 

장편소설에 비해 인물들이 많지 않아서 그 점은 좋았다. 내무성에서 일하는 아빠 잭 탤리스와 항상 편두통에 시달리는 엄마 에밀리, 그리고 오빠 리언과, 언니 세실리아가 브라이어니의 가족이다.

가정부 아들 로비 터너, 부모의 이혼으로 이 집에 와 있는 사촌 롤라, 쌍둥이 잭슨, 피에로형제, 오빠 리언의 친구 폴 마셜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오랜만에 집에 오는 큰 오빠 리언을 위해 브라이어니는 연극대본을 쓴다. 외국에서 온 못된 백작과 약혼한 아라벨라가 결국 버림받고 병으로 누워 있던 그녀에게 의사 왕자님이 와서 가족들과 화해하고 해피하게 살았다는 스토리다. 사촌들과 올리려 했던 그녀의 연극은 끝내 올려지지 못한다. 브라이어니의 77세 생일 때 그녀의 오빠와 사촌의 자손에 의해 올려지는 이 장면을 '너무나 영국적'이었다는 회원의 말이 인상 깊었다. 



브라이어니는 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갑자기 포스터를 대각선으로 확 뜯어버렸다. 포스터는 반 이상이 찢겨 바닥에 떨어졌다. 세실리아는 꽃병을 내려놓고 달려가 무릎을 꿇고 브라이어니가 짓밟기 전에 찢어진 포스터를 구해냈다. 그녀가 자기파괴적 행위로부터 브라이어니를 구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p.71


<속죄>에 작가가 뿌려놓은 수많은 복선을 찾아내는 것도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아라벨라의 시련>은 가족과 연을 끊은 세실리아의 인생을, 집안의 가보로 여겨지는  크렘삼촌의 꽃병은 로비터너의 목숨을 복선으로 깔고 있다. 세실리아와 로비가 분수대에서 실랑이를 하다 꽃병의 주둥이 부분이 살짝 깨지고 만다. 둘의 위태로운 관계는 이어 붙인 꽃병 조각처럼 아슬아슬하다.

3부에서 브라이어니와 세실리아의 첫 대면에서 이 꽃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꽃병이 아주 박살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세실리아는 충격을 받는다. 나 또한 이 장면에서 혹시 로비가 죽은 게 아닐까 싶었다.



순간 세실리아의 냉정한 태도가 흔들렸다. 팔짱을 풀더니 손으로 뺨을 꾹 눌렀다.

"깼다고?"

"계단에서 떨어뜨렸대."

"완전히 깨졌단 말야? 산산조각이 났다고?

"응." p.477


 

 성폭행으로 얼굴과 손목이 까진 롤라는 목욕을 하려고 했는데 쌍둥이들이 들어와 자신을 할퀴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쌍둥이들이 집으로 가겠다며 편지를 남기고 사라지자 집안에 있던 어른들이 모두 흩어져서 아이들을 찾기 시작한다. 

예배당 근처에서 브라이어니는 숲 속으로 사라진 남자를 로비라고 단정 짓는다. 그 자리에는 롤라가 쓰러져 있었고 쌍둥이들에게 할퀴고 다친 앞선 사건들이 겹쳐 브라이어니는 롤라에게 연민의 감정이 배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두 번 읽기 전까지는 쌍둥이들이 조금 과격하네, 아니면 장난이 심한 걸로 이해했던 장면이었다. 폴 마셜의 성폭행사건임을 감안하고 읽어보시라~. 처음 목욕탕에서는 롤라가 반행했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던 것이다. 와 마셜 이 나쁜 놈!!!

사실 롤라는 끝까지 누구였는지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았다는 점은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오로지 브라이어니만 로비라고 단정 짓기 때문이다.



사실 읽는 내내  브라이어니는 <속죄>가 되었는가? 아닌가? 에 초점을 두고 읽었다. 브라이어니의 입장에서 '그때 나는  열세 살이었어! 대학을 포기하고 간호사로 일하고 그 일에 대해 잊지 않고 글을 썼어. 물론 출판을 하려고 했지만 폴 마셜 부부의 재력으로 출판사 하나쯤 없어질 수 도 있다고 하니 출판도 쉽지는 않더군. 재판을 한다고 해도 이길 수는 없었을 거야. 그러니 할 만큼 한 게 아닐까?' 


그런데 독서토론을 하고 나니  마셜의 죄를 대신 짊어진 로비터너가 죽음으로써 대속한다는 관점에서 속죄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대속한 행위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본다면 말이다.

모옌은 <개구리>에서 창작은 결코 속죄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죄책감만이 계속 커져갈 뿐이라고.


브라이어니는 59년 동안 자신이 지은 죄를 잊지 않기 위해, 또 죄를 바로잡기도 전에 죽어버린 언니와 로비에게 속죄하기 위해 책을 쓴다. 그러나 출판사의 반대, 아직 살아있는 먀셜과 롤라부부와의 기나긴 법정싸움등 여러 가지 장애물로 자신이 쓴 책을 사후에 출판을 하려고 한다.

이 부분 때문에 브라이어니는 끝까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자, 못된 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죄의식 없이 살고 있는 마셜부부와 비교해 보면 나는 브라이어니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녀가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인 두 사람이 이미 죽고 없다는 것이다. 로비는 전쟁터에서 언니는 런던 대 공습 때 지하철 폭파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실체는 사라졌고 여전히 나의 죄와 죄책감이 남았다면?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답이 없는 질문 같기도 하다. 용서의 한계(할 수 있는 만큼의 양)는 하는 입장이나 받는 입장에 따라 그저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에게 철학이란 정당화된 믿음과 정당화되지 않는 믿음을 구분할 수 있는 것, 믿어도 되는 믿음과 믿을 근거가 없는 믿음을 구분할 수 있는 것,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가? 의 물음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자신만의 표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나의 해석이 선이 아니라 악이 되어 타인의 인생을 죽음으로 몰았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 했을까?

다시 한번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의 프레임으로 타인을 판단하지 않기를. 나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볼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작게나마 소망해 본다.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에게도 소설가에게도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언제나 불가능한 일이며,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다. 오직 속죄를 위한 노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p.532



#속죄  #이언매큐언 #문학동네 #독서토론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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