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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커피 Jun 13. 2024

구의 증명 vs 창세기

소설과 음악이 만날 때


너는 왜 거기 있어.

라고 묻고 싶었다. 어떤 내용이든, 돌아올 대답이 무서웠다. 불투명한 창 너머로 두 사람의 실루엣이 언뜻 나타났다. 귀가 먹어버린 듯 문득 사방이 고요해졌다. 눈알에 그 창을 끼운 듯 모든 것이 불투명하게 보였다.

외딴길을 헤매다 불현듯 산꼭대기에 선 것처럼 모든 정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격렬하게 뛰던 심장이 제 박자를 찾아 서서히 잠잠해졌다. 손에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를 바닥에 놓았다. 그저 놓으려고 했는데, 쓰레기봉투는 터져버렸고 내 발아래는 더러워졌다. p.118





 오늘 소개할 책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과 '9와 친구들'의 <창세기>입니다. 원래는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로 하려고 했는데 작가의 마지막 글을 읽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비도 오는 아침시간 마음이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네요.

저처럼 책장을 덮으면 바로 유튜브에 '9와 친구들'의 <창세기>를 검색하는 분들이 많았나 봅니다. 참고로 <창세기>는 음악입니다.

이 음악에 달린 댓글까지가 이 소설의 마침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펑펑 울었다는 댓글들이 많았는데  3분짜리 음악을 들으면서 펑펑 울었다는 건 저도 비밀입니다. 


읽는 내내 저는 '구'가 되었다가 '담'이가 되었습니다. 책에는 두 개의 원이 표시가 됩니다. ○와 ●인데요. 앞의 원은 '담'이가 말하는 부분이고 뒤의 까만 원은 '구'가 말하는 부분입니다. 처음에는 이 원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명사

(1)    

어떤 사항, 판단, 이유 등에 대하여 그것의 진위를 증거를 들어서 밝힘.

(2)    

[논리] 어떤 정당한 사실, 곧 정리나 공리에서 출발하여 유효한 추론을 통하여 다른 명제의 참과 거짓을 밝히는 일.

(3)    

어떤 사실을 명백하게 밝히는 공적인 서류.


제목에 있는 '증명'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왜 <구의 증명>일까? 계속 의문문을 품으며 읽게 되는 소설. 

구는 살아있어야 했고, 하지만 영원히 찾을 수 없어야 했습니다. 방법은 무엇일까요? 




나는 사람을 먹었습니다. 이것이 죄가 됩니까? p.12


 니콜라 푸생이 54세 때 그린 <포키온의 유골이 있는 풍경>입니다. 갑자기 웬 명화냐고요? 풍경이 워낙 많은 부분을 차지해 사람은 보이지도 않지만 그림 아래쪽을 유심히 보면 어떤 여인이 바닥에서 뭔가를 주워 담고 있습니다. 바로 남편의 뼈가루입니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포키온은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항복 협상이 시민들에게는 불만으로 번졌고  반역했다는 비난을 받아 재판도 받지 못한 채 부당하게 처형을 당하고 말았죠. 그리고 한평생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고국 땅에 묻힐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맙니다. 

포키온의 아내가 도시 성곽 밖에서 시신을 화장하고 주변을 의식하면서 유골을 수습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서구에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여러 이야기로 변형이 되었는데 그중에는 포키온의 아내가 남편의 유골을 수습해 물에 타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즉 자신의 몸을 남편의 무덤으로 쓴 것이지요. 엽기와 로맨스의 차이도 어찌 보면 스토리의 진정성이 아닐까 싶네요. 


                나의 <몸>을 누군가의 무덤으로 쓸 만큼 사랑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길바닥에서 죽은 구를 담이는 택시에 태워 집으로 옵니다. 시체조차 팔아먹는 잔인한 사채업자들의 눈을 피할 방법은 구의 행방을 숨기는 일입니다. 그의 죽음까지도요. 그런 구의 시체를 먹고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 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살아남겠다고 담이는 다짐합니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절에 살던 이모에게 담이는 맡겨집니다. 이모는 절을 나와 담이를 키우기 위해 돈을 법니다. 소리를 만들고 (스피커,) 향기를 만들고 (향수), 예쁨을 만들고 (거울,) 어둠을 만듭니다. 어둠은 뭘까요? 바로 전구입니다.

같은 반이었던 구는 담이를 괴롭혔습니다. 아홉 살 때의 일입니다. 구는 걸으면 십분 거리에 살았습니다. 평일 오전에 학교가 아닌 적막한 골목에서 마주친 이후로 둘은 친구가 됩니다. 


 소설은 구의 죽음에서 시작해 구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부모의 빚은 계속 늘어났고 구는 편의점, 시장, 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부모를 대신해 구와 담이 노마를 집으로 데려다줍니다. 울트라 캡송 아빠가 꿈이었던 노마는 졸음운전을 한 트럭에 치여 죽습니다. 

노마의 죽음으로 구와 담은 사이가 서먹해지고, 구는 집을 나와 공장의 진주 누나집에 들어갑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구는 진주누나와 헤어지고 군대를 들어갑니다. 말도 없이 군대에 간 구가 미웠지만 이모도 할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죽게 되자 담이에겐 구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군대를 제대했을 때 구의 부모는 행방불명이 됩니다. 구에게 남은 건 평생 이자만 갚아도 모자랄 빚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다음 이야기는 사채 업자를 피해 구와 담이의 떠돌이 생활이 나옵니다. 도망가면 찾아와 패고, 도망가면 찾아옵니다. 

그렇게 구는 사채업자에게 맞아서 죽습니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서른 걸음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이모는 병으로, 노마는 교통사고로, 구는 돈 때문에 죽었습니다.  돈이 있었다면 이모는 병을 늦출 수 있었을 테고, 부모가 부자였다면 노마는 밤늦은 시간 길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테고, 부모의 빚이 유산이 된 구도 죽지 않았을 겁니다. 최소한 이런 이유로 말이죠. 


언제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 년토록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p.174



구를 따라 죽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담이를 안아주고 싶은 소설입니다. 가슴 아픈 사랑을 한 모든 이들에게 이 노래 가사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9와 친구들 <창세기>


https://www.youtube.com/watch?v=ajERPzx02Ps&pp=ygUZOeyZgCDsiKvsnpDrk6Qg7LC97IS46riwIA%3D%3D


그대는 내 혈관의 피 

그대는 내 심장의 숨

그대는 내 대지의 흙 

그대는 내 바다의 물 

그대는  내 초라한 들판 

단 한 송이의 꽃

그대는  내 텅 빈 하늘 위

휘노는  단 한 마리의  신비로운 새

포근한 그 품 속에  가득 안겨있을 때면 기도해요 난 지금이  내 마지막 순간이길

그대 그 아름다운 미소  

그 밖에 난 없어요 

유일한 나의 세계  매일이 하루 같은 나의 꿈 

그대는 내 아침의 볕 

그대는 내 공기의 열

수억 광년 어둠을 뚫고  날 부르는 별

그대는 날 이끄는 길

그대는 날 지키는 법

수백만 년 정적을 깨고  날 흔드는 손  

포근한 그 품 속에  가득 안겨있을 때면 기도해요 난 지금이  내 마지막 순간이길

그대 그 아름다운 미소 

그 밖에 난 없어요 

유일한 나의 세계 매일이 하루 같은 나의 꿈



#구의증명 #최진영 #은행나무 #구와친구들 #창세기 #지독한사랑 #수학책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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