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문예출판사
나는 그의 희망을 부숴버렸지만 나 자신의 욕망은 만족시키지 못했소. 욕망은 언제나 불타오르며 갈구했소. 나는 여전히 사랑과 우정을 갈구하고 여전히 버림받았소. 그건 정말 불공평하지 않소? 인간들은 모두 내게 죄를 저지르는데 왜 나만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거요? 당신은 왜 친구를 문전 박대한 펠릭스는 미워하지 않는 거요? 자기 자식을 구해준 사람을 죽이려고 한 그 시골 사람은 왜 증오하지 않는 거요? 그래, 그들은 고결하고 순결한 존재라는 것이지! 나, 흉측하고 버림받은 놈은 멸시당하고 걷어차이고 짓밟혀도 되는 괴물이란 말이지. 그런 부당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끓어오르오. p. 439
자신을 만든 창조주로부터 버림은 받은 피조물이 있다. 그 피조물에 의해 자신의 형제, 친구, 아내를 잃은 남자도 있다. 과연 누구의 죄가 더 클까?
이 소설은 북극을 탐험하는 월턴의 편지를 바깥 틀로 삼은 액자구조로 되어 있다. 월턴의 배가 빙산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구조하게 된다. 친구가 너무도 그리웠던 월턴은 프랑켄슈타인의 인품과 지성에 매료되고, 그에게 들은 기묘한 이야기를 써 자신의 누이에게 편지를 보낸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모든 발명과 발견에는 희망과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 과학자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신의 영역인 인간을 창조하고, 탐험가 로버트 월턴은 한 번도 인류가 밟지 못한 미지의 땅 북극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인물이다. 인간을 위한다는 이 위대한 포부가 희망으로만 끝나면 좋겠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럼에도 당신은 go를 할 것인가?
이 소설이 나온 당시 북극점 도달에 성공했다는 공식 기록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단지 바렌츠 해, 허드슨 만, 베링 해 등 북극점 도달에 실패했던 탐험가들의 이름만 지명으로 남아 있었다.
자신이 신의 영역인 인간창조로 인해 불행이 시작되었듯이, 북극탐사또한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빅터는 경고한다.
당시 이론적으로는 북극점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그곳을 탐험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빅터의 긴 이야기를 들은 월튼은 결국 북극탐험을 포기하고 배를 돌려 고향으로 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려면 작가인 메리 셸리의 출생부터 살펴봐야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철학자이자 소설가로 알려진 급진주의 사회사상가인 윌리엄 고드윈이다. 어머니는 여성의 교육적. 사회적 평등을 주장한 여권신장가인 울스턴 크래프트로 둘은 당시 유명인사들이었다. 울스턴 크래프트는 메리를 낳고 얼마 후 사망한다. 고드윈은 메리가 네 살이 되던 해 재혼을 하는데 이때 복잡한 가족이 구성이 되고 계모와의 갈등이 심했던 메리는 독서가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17세 때 유부남이었던 시인 퍼시와 사랑에 빠지고 급기야 첫 딸을 낳는다. 그러나 아이도 출생 11일 만에 사망하고 1816년 아들 윌리엄이 태어난다. 이때 메리는 남편과 이복 여동생인 클레어와 제네바로 여행을 하게 되고 여기에서 시인 바이런을 만나게 된다.
그 해 여름은 습하고 날씨가 궂었고, 끊임없이 내리는 비에 며칠씩 집에 갇혀 지내야 했다. 바이런은 유령이야기를 한 편씩 짓자고 제안을 했고 넷은 그 제안을 수락했다. 매일 아침마다 이야기를 생각해 냈냐는 질문에 메리는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한다. 당시 바이런과 퍼시 셸리는 짤막한 이야기를 썼고, 폴리도리는 '흡혈귀'라는 단편을 썼다. 약속대로 장편을 완성시킨 사람은 메리(19)뿐이었다. 폴리도리는 문학적인 야심을 품은 젊은 의사였고 문학계에 연줄이 있는 존경받는 가문 출신이었다. 의과 대학을 졸업한 폴리도리(20), 과학 실험실까지 차려 온갖 실험을 했던 퍼시(24), 과학에 흥미를 지닌 바이런이 모였으니 이들의 대화의 주제가 과학인건 당연한 결과였다. 유령이야기 짓기 모임에서 이 괴물 스토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윈의 실험이나 죽은 조직에 전기가 흐르는 금속을 대면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는 루이지 갈바니의 대화가 오간 날 메리는 <프랑켄슈타인> 속 박사와 괴물을 상상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은 서문이 두 개가 나온다. 1818년 초판의 서문은 낭만주의 시인이며 메리 셸리의 남편인 퍼시 비시 셸리가 쓴 것이다. 당시 유부남과 추문이 있었던 메리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을뿐더러 이런 기괴한 소설을, 그것도 여성이 출판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런 이유로 초판은 퍼시의 서문과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1832년이 되어서야 메리는 이 책의 저자임을 밝힌다.
보리스 칼로프카 연기한 영화를 보고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창조자의 이름이다. 괴물은 죽을 때까지 이름이 없다. 리뷰를 쓰면서 괴물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그 피조물은 괴물, 악마, 원수 등으로 불리는데 과연 누가 괴물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전도유망한 대학생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죽은 시체로 인간을 만들어 낸다. 그의 창조물이자 그의 아이였던 괴물은 너무도 흉측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빅터는 곧바로 후회와 절망을 느끼며 집을 나오고 만다.
집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는 이미 괴물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빅터는 그 충격으로 2년간 병간호를 받아야 했는데 그의 곁을 지킨 건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클레르발이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차에 하녀인 저스틴이 빅터의 막냇동생을 살인해 재판을 받게 됐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빅터는 살해범이 자신이 창조한 괴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당당하게 나서지 못한다.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나는 정신적으로 몹시 혼란을 겪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무죄를 믿었고 그 사실을 알았다. 내 동생을 살해한 그 악마가 사악한 장난으로 이 죄 없는 사람을 죽음과 치욕스러움에 빠뜨린단 말인가? p.152
슬픔을 수습하기 위해 빅터는 사촌 엘리자베스와 여행을 떠나게 되고 홀로 빅터가 몽탕베르 산에 올라갔을 때 괴물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조물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빅터가 창조한 이름도 없는 이 괴물은 숲에서 추위를 견디다 불의 용도를 깨닫고 가난한 시골집을 염탐하면서 가족 간의 애정, 사랑, 효심을 배워나간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실낙원>, <플루타르크스 영웅전>을 통해 언어, 역사, 종교, 사회를 배우는 과정은 계모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책으로 세상을 배웠던 메리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듯했다.
그 불이 주는 따뜻한 온기에 너무나 기뻐 완전히 넋이 나가고 말았소. 너무 기쁜 나머지 나는 아직 꺼지지 않은 잉걸불에 손을 쑥 들이밀었다가 고통스러워 울며 손을 빼내고 말았소. 같은 것에서 그렇게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다니, 정말 신기했소! p.195
이 소설이 재미있는 점은 액자 구조가 계속 겹친다는 점이다. 월턴은 빅터의 이야기를, 괴물은 드 라세 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괴물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데다 대단한 달변가이기도 하다.
다른 종교와 부유함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터키출신의 상인이 사형선고를 받자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펠릭스는 상인을 탈출시킨다. 그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영구추방을 당해 가족이(아버지 드 라세와 여동생) 독일에서 숨죽이고 살고 있었다. 갑자기 하층민의 신분으로 떨어진 그들은 가난과 추위 속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탈출을 도와주면 배상하겠다던 상인은 인면수심으로 이들을 외면하고 상인의 딸 사피는 아버지를 피해 펠릭스를 찾아온다.
이 모든 사정을 들은 괴물은 그때부터 몰래 먹던 양식을 축내지도 않고 나무를 해다 주는 등 조용히 가족을 돕는다.
유럽인들에게 이방인이었던 아랍 여인인 사피를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괴물은 희망을 가지게 된다. 이들이라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다행히도 드 라세 노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니 더욱 선입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박한 시골집 노인에게 용기를 내 가족과 친구가 되어달라고 호소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흉측한 몰골을 본 자식들의 공포와 경악, 기절이었다. 괴물이 놓친 점은 사피의 어머니는 기독교도인 아랍인이었다는 점이고 미모가 뛰어났다는 점이다. 당연히 펠릭스가 사피에게 반한 포인트도 바로 미모가 한몫을 했다.
펠릭스의 정의감도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괴물이 놓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영리하고 착한 괴물이 어떻게 악인이 되어가는가이다.
과연 누가 괴물을 만들고 있는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무관심과 홀대, 옳고 그름을 가르치지 않는 양육자의 모습,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 노동자와 약자를 보는 시선들은 지금도 낯설지가 않다.
그런데 내 친구와 친척들은 어디 있을까? 내겐 어린 시절을 지켜보았던 아버지도, 웃음과 애정 어린 손길로 축복해 준 어머니도 없었소. 아니 설사 있었다고 해도 나의 모든 과거는 지금 내 눈에는 하나의 얼룩,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공백이었소. p.231
이 사건 이후 피조물은 빅터의 고향집으로 향하고 빅터의 막내 동생인 윌리엄을 죽이게 된다. 그는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같은 여자인간을 만들어 주면 유럽을 떠나 신대륙의 황야에 가서 둘이서 살겠다고 제안을 한다. 처음에 거절하던 프랑켄슈타인도 그의 말에 설득당해 결국 여자인간을 창조하지만 그들이 종족을 번식한다는 생각이 들자 파괴하고 만다.
순간 그를 닮은 또 다른 존재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치미는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는 만들던 놈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비열한 놈은 내가 자기 미래의 행복이 달린 존재를 파괴하는 광경을 보더니 극도의 절망과 원한에 사로잡혀 한껏 울부짖으며 물러났다. P.327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짝을 만들 것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제안이 나왔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만일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이, 지역사회가 받아들였다면 과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마지막 희망마져 짓밟힌 괴물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메리가 경험한 주변인들의 죽음이 이런 소설을 낳은 배경이라는 점도 일면 설득력이 있다. 자신을 낳고 산욕열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퍼시의 본 부인 해리엇과 이복언니는 자살한다. 퍼시 사이에서 다섯 명의 자녀 중 4명이 죽었고 남편인 퍼시도 익사로 죽는다. 아이들의 머리카락과 남편의 심장을 책상에 보관하고 있었다는 일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소설의 부제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살펴보자.
그리스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주신인 제우스를 거스르고 인간에게 불과 그에 따른 문명을 가져다준 존재이다. 프로메테우스에게는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프랑켄슈타인도 과연 그럴까?
괴물의 지적 수준은 그 누구보다 높다. 사랑과 우정을 갈구했을 만큼 감성적인 면도 가지고 있었다. 끝까지 괴물을 외면했던 프랑켄슈타인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란 말인가?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와 사촌 엘리자베스, 친구까지 그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던 그에게 무엇이 결여되었던 것일까?
책임감이 없는 지적 호기심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메리는 미리 예견했던 것일까?
괴물이 처음 불을 보고 음식을 익혀먹는 장면은 원시인이 불을 발견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러다 노인의 가족에게 외면당했을 때 그가 하는 최초의 복수는 불을 이용한 것이었다. 또한 빅터의 죽음을 확인하고 스스로 장작더미에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독서 토론을 하면서 가장 많이 나왔던 논제는 역시나 혐오였다. 혐오는 사회적 감정으로, 가치관이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유럽중심주의에서 소외된 나라들, 민족들, 노예들, 소수자들, 이민자들, 장애인들, 그리고 앞으로는 A.I까지 포함하지 않을까?
니체는 <선악의 피안>에서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 역시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대가 한참 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더불어 과학기술의 이중성을 꼬집은 책 <프랑켄슈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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