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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내가 가질게

안보윤/문학동네

by 자몽커피


좋은 주인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고 담당자는 몇 번이고 말했다. 언니가 개 목에 걸려 있는 은색 펜던트에 손을 댔다. 밤톨이라는 이름이 적힌, 혹시라도 주인이 찾아올까봐 계속 걸어두고 있었던 그것이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펜던트가 떨어져나갔다.

밤은 내가 가질게.

언니가 개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늙고 새까맣고 병든 개의 이름은 토리가 되었다. p.251




낯선 작가의 책을 고르는 기준은 철저하게 제목과 표지에 있다. 표지그림의 작가도 꼼꼼히 찾아보는 편이다.

표지가 책의 내용을 담고 있을 때, 그 숨은 의미를 찾아냈을 때의 희열까지가 독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그렇게 만난 첫 책이 너무 좋았을 때는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버리는 게 나의 독서 습관이다. 황정은, 정세랑, 이슬아, 구병모, 조해진, 박상영, 임경선, 김지연 작가 등등이 그러했다. 감사하게도를 붙인 건 내가 만난 첫 작품들이 모두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작가를 단 하나의 작품으로 평가하는 일을 허다하게 보아 온 나로서는 이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구나를 느끼게 된다. '아~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만났더라면'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해도 딱 그 작품 하나로 끝을 보는 지인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이 첫 책인 독자와 <시선으로부터>가 첫 책인 독자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을 때가 그렇다.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읽기 전까지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요지는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시라가 되겠다.


안보윤 작가는 감히 말하건대 그 어떤 작품을 만나더라도 단번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에게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만나는 수많은 인재(人災)들은 그저 잠시 안타깝고 슬플 뿐이었다. 그러나 이를 지나치지 않고 글로 꾹꾹 담아 그려내지 않으면 안 되는 작가가 바로 안보윤 작가다. 2005년 <악어떼가 나왔다>로 문학동네상을 수상하며 등단, 올해로 20년 차인 중견작가의 내공을 믿어보시길...




2019년 출간된 <밤의 행방>은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관화재사고(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지만)로 아이를 잃은 주혁이 주인공이다. 아이를 잃고 부부사이도 최악으로 치닫고 직업인 교사도 그만두고 부랑자처럼 살아가던 그에게 인간의 죽음을 볼 수 있는 신비한 나뭇가지 '반'을 만나면서 뜻하지 않게 천지선녀로 오해를 받아 점을 본다. 이야기 끝에 세월호사건이 잠깐 스치듯이 지나가는데 여운이 정말 길게 남은 책이었다. 인간이 일으키는 부정부패를 죽음으로 이끄는 사신으로 표현한 점이 신선하면서 그녀 특유의 코믹적인 요소(우리의 신비한 나뭇가지 '반'의 식성이 마누카 꿀이나 앵무새 설탕이라는 설정은 너무 사랑스럽지 않은가?)도 들어가 있으니 이 책도 읽어보시길...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2023년에 출간된 <밤은 내가 가질게>는 총 7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이 책도 당연히 책과 표지로만 선택당한 셈이다. 표지가 일단 너무 궁금했다. 동그란 구가 3~4개가 있고 핑크와 갈색으로 마블링된 천이 각각의 구를 감싸고 있는데 당최 무슨 그림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이 알려주는 Carsten Guth, <strange Habbits>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음이나 네이버에서는 그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원래 모습이 뭐냐고? 이런 거 나만 궁금한 건가? 내가 또 이런 건 참지 않는다. 결국 알아낸 건 독일의 예술가 Carsten Gueth였다는 점, 스펠링 'e' 하나가 이렇게 무섭다. 문학동네! 쫌!

작품 제목 <Strange Habbits>는 맞았으니 성질은 그만 죽이기로 하자.

작가와 작품 원본은 다음과 같다. (인스타에 die_doing으로 검색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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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확실히 보인다. 그냥 내 눈에는 7개의 구로 보인다는 점, 사실 그 이상이어도 이야기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저 안에 수백 개의 구가 있다고 해도 이야기가 안 될 건 또 뭐란 말인가? 이색도 저색도 아닌 마블링된 구와 천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꼭 이 책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의 세계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모두 연결되어 있다. 미도를 중심으로 동주를 중심으로 가해자 가족을 중심으로 샘물교회를 중심으로 뜨개방을 중심으로 말이다. 추상미술은 관객의 해석이 100%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표지가 해석이 되는 순간 모든 게 용서가 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선을 불분명하게 그려낸 작가의 의도가 표지에서도 읽힌다고 해야 하나.


작품의 제목인 <이상한 습관, 취미>에 대해 한 마디 덧 붙이자면 질릴 때까지 사과하는 황목사나 동전 던지기로 동주 뺨을 때리는 승규나 잘못을 저질러도 사과하지 않는 개새끼 오빠나 조교신분을 이용해 스토킹을 하는 대학 선배나 어린 주승이를 때리는 주승이 엄마, 할아버지나 스토킹 신고를 해도 사랑이니 인연이니 병신 같은 소리를 해대는 경찰이나 '신'이라 불리길 원했던 아동 학대범 미도 엄마나 세상엔 정말 쓰레기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넘친다. 이보다 더 완벽한 제목이 있을까? 뭐 꿈보다 해몽이니까!


이 책의 최고의 반전은 미도의 이야기가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편인 < 밤은 내가 가질게>에서 미도는 사기를 당해 전세금을 날린 후 동생집에서 지내게 된다. 미도는 조금 모자란 아이였지만 엄마의 가스라이팅으로 정말 모자란 아이로 성장하게 되고 끊임없이 폭력과 사기에 휘말리는 인물이다. 유기견 봉사를 다니면서 밤톨이를 입양하게 되는 이야기로 그나마 따뜻한 결론으로 마무리짓나 싶었던 찰나 식스센스급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만 앞에서 토리가 죽었다고 나왔는데 하면서 다시 책을 펼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완전한 사과>에서 가해자의 동생이 피해 여성에게 사과하러 가는데 바로 그 여성이 미도였던 것이다. 미도는 폭력의 현장에서 다리를 잃고 아이도 잃고 토리도 잃었다는 내용을 다시 읊조리면서 '이 작가 정말 이렇게 까지 우리 미도를 응? 응? 그 가엾은 토리를 응? 응? 거 너무한 거 아니요'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에서는 토리라고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온 강아지와 혼자 사는 언니가 나온다. 바로 미도다. 유영은 몇 번이나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별일 아니라고 그냥 돌아가버리는 경찰에게 지치지도 않고 다시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응한 유일한 인물이다. 유영때문에 미도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미도는 토리를 입양하고 나서 혼자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는데 개쓰레기 같은 남자에게 또다시 걸려 폭력을 당하게 된다는 걸.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맞춰진 퍼즐이 어찌나 쓰고 찝찝하던지. 그냥 좀 해피하게 살게 놔주지.

초등학교 때부터 승규의 괴롭힘을 당한 동주의 이야기를 담은 <완전한 사과>와 승규의 죽음으로 승규엄마에게 또 다른 괴롭힘을 당하는 동주이야기를 담은 <애도의 방식>, 미 발표된 <딱 한번>을 엮어 연극으로 발표가 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걸 또 놓치다니. 연극에서는 승규 엄마의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한다. 가해자의 엄마에서 피해자의 엄마이고 싶었던 걸까?



1. 어떤 진심

유란의 엄마는 뜨개방과 스무 평 아파트를 기부하고 황목사의 사모님이 된다.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는 믿음샘교회에서 유란은 갈 곳 없고 마음줄곳 없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접근해 데려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학교육학과에 다니는 유란은 과외 매칭앱에서 만난 이서를 꼬신다. 재혼가정 내의 불화나 친구사이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서는 금새 유란에게 자신의 가정사와 고민을 얘기한다. 데리고 온 아이들은 집을 나와 자연스럽게 그곳에 머물게 된다. 유란은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첫번째 열매이자 사모님의 딸인 유란은 언제나 예외였다. 혹독한 노동과 가혹한 수금 앞에 유란의 이름이 불리는 일은 없었다. p.37



유란은 그런 이서의 의존과 맹목이 부담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진심 같았다. 유란은 쓰고 있던 글자들을 서둘러 지웠다. 어떤 진심은 진심이라서 한심했다. 어떤 진심은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속 복숭아처럼 쇠 냄새를 풍기며 삭았다. 어떤 진심은 추해졌고 어떤 진심은 다만 견뎌내는 삶으로 전락했다. p.25




2. 완전한 사과

주인공은 방과 후 교사를 하다 오빠의 사건으로 잘리고 집도 나와 혼자 지내고 있다. 낯선 동네에서 하교 도우미를 하고 진심을 담은 돈가스 집에서 돈가스를 튀기며 생활한다. 초등학생인 동주의 하교를 도와주고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 주인공은 동주를 괴롭히는 승규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어느 날 다리를 절며 나온 동주는 욕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딱 한 번만 승규의 정강이를 까고 싶다면서. 스스로를 가만한 사람이라고 정의한 주인공이지만 동주의 목을 감고 있는 승규를 떼어내며 제발 진심을 다해서 사과하라고 외친다.



오빠는 원래 우리집에서만 쉬쉬하던 개새끼였는데 그날 밤 이후로 만인의 개새끼가 되었다. 그게 개새끼인줄 모르는 이는 엄마뿐이다. 심지어 오빠도 지가 개새끼인 걸 안다. 아니까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겠지. 아니까 마지막까지 여자에게 협박전화를 걸고 모가지를 꼿꼿이 세운 채 잡혀가 대형 로펌 변호사를 붙여달라는 개소리를 했겠지. p43



이런 인간이었구나. 나는 망설임없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이었구나. 이렇게 습하고 비열한 눈으로 사실은 아무 상관 없는 어린애를 바닥으로 내던지는, 이런 짓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이었구나. 그런데 그 두가지뿐인가? 약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렇게, 상대를 힘껏 내던지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나? 뒤를 돌아보니 동주가 저멀리 있다. p.71



3. 애도의 방식

가족, 친구,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잃고 다시 평정심을 갖기까지의 시간을 애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 애도과정에서 제대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인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동주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승규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살았던 동네를 뜨기로 한다. 아들을 잃은 승규엄마는 동주가 일하고 있는 미도파찻집을 찾아와 그날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애원한다. 승규의 죽음은 공사가 중단된 상가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사고였으나 그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목격자인 동주와의 관계가 알려지자 사건이 되어버렸다.

동주는 그날의 일을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 기억한다. 그것이 동주가 선택한, 선택당한 애도의 방식일 것이다. 승규엄마는 성동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가 시금치를 키우며 살 거라고, 오랫동안 괴롭혀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다. 돈가스집 아들 승규도 부모의 돌봄에서 소외된 불쌍한 아이는 아니었을까?


거듭되는 상상은 현실보다 혹독했다. 나는 수없이 승규를 붙들고 수없이 승규를 밀쳤다. 매 순간 나는 필사적이었다. 오롯이 진심이었다. p.102



음식에다 이게 뭔 짓이야. 너 진짜 모르는 사람 맞지?

몰라요.

나는 진심을 담아 말한다. 알 리가 없다. 이미 으깨진 것을 기어코 한번 더 으깨놓는 사람의 마음 같은 건. p.97



4.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주거침입 혐의를 받은 남자는 하진의 대학 선배였다. 학과 행정조교신분을 이용해 개인정보를 빼내 일을 저질렀다. 경찰에 잡힌 남자는 '네가 궁금해서 그랬다'는 변명을 늘어놓았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사랑은 불가항력 때문이라고, 인연 운운하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해대며 흥얼거릴 뿐이다. 대학진학 후 하진은 집을 나와 독립해 살고 있었다. 가족은 커녕 그 누구도 집에 들인 적이 없었다.

바늘 끝에 바들바들 떨며 살려달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외면한 건 공권력뿐 아니라 하진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하진의 엄마는 초등학교 때 남편이 집을 가출하자 모든 화를 딸에게 푼 인물이다.


하진은 전화기에 대고 소리치는 엄마의 말만을 들었다. 너, 내가 반드시 후회하게 해 줄 거야. 네 새끼 죽여버리고 나도 꽉 죽어버릴 거야! p.119



하진은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 없이 떡볶이를 토했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다. 하진을 사랑했다. 그것은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잠든 하진의 목을 조를 수 있었다. 그것 역시 도망칠 수 없는 진실이었다. p.121



엄마가 목을 조른 사건 이후로 하진은 방문을 잠그고서야 잠이 들었다. 그 이후 아빠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평범한 가정을 유지했고 하진은 딱 한 번뿐이었다는 엄마의 말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대학선배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용서를 구했다면서 오히려 그 사람을 자극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하진은 절망한다.

그런 하진에게 옆집에 사는 유영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하진은 중학교때도 유영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낯선이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가가는 유영의 몸짓을 배우고 싶다. 구운 귤과 아무것도 타지 않은 따뜻한 물을 건네면서 말이다.



그런 건 용서가 아니야. 하진은 엄마에게 말했다. 십 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말할 수 있었다.

엄마, 내 침묵은 용서가 아니야. 내 침묵은 나를 위한 거였어.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가 지금까지는

침묵밖에 없었던 것뿐이야. 나는 계속, 계속. 하진이 호떡을 씹을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가 났다. 나는 계속, 늘, 엄마가 두려웠어요. 정말이지 엄마가 끔찍했어. p.136



5. 미워하는 일

친딸인 나보다 다른 아이에게 더 관심을 쏟는 엄마를 보게 된다면? 그 아이를 떼어놓기 위해서 무슨 짓까지 할 수 있을까?

전재산을 기부하고 사이비 종교에 푹 빠져 딸을 방치한 명선 고모가 있다. 친 고모가 아니라 뜨개방에서 알게 된 엄마의 지인 중 한 명이다. 명선 고모는 수시로 딸 세연을 엄마에게 맡기고는 했다. 주영도 그런 세연이를 앤이라 부르며 거짓말 놀이를 하며 놀았다. 남편이 죽은 후 종교에 빠진 명선고모는 세연을 돌보지 않았고 아이가 혼자 라면을 끓여 먹다 손이 데었다는데도 그놈의 교회에서 나오지 않았다.




세연이 놀란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세연의 주근깨투성이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얼굴이 동글어졌어도 푸석푸석하던 머리칼이 보드라워졌어도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도 여전히 엉망으로 찍혀 있던 주근깨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아무 일도 없었던 거잖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니까 유난 떨지 마.

불쌍한 척 좀 그만하라고.

세연이 나간 뒤에 나는 내가 몸을 뒤로 한껏 젖히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p165



그날 주영은 오로지 엄마의 위로가 필요한 날이었다. 학교가 파하고 학원으로 가는 길에 왠 낯선 남자가 참기름병을 휘두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주영 앞에 걸어가던 남자아이가 쓰러졌다. 어쩌면 그 아이는 자신이 될 수 있었다. 너무 무서워 집에 왔는데 엄마는 세연에게 가야 한다며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혼자 남겨두고 나가버렸다. 세연을 방치한 명선고모가 나쁜가? 주영을 남겨두고 세연에게 간 엄마가 더 나쁜가?



6. 미도

미도는 골렘효과의 피해자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비판적인 발언을 하면 그의 가능성이 실제로 약화되는 현상) 미도는 정상적인 아이였으나 엄마의 '모자란 아이'라는 말에 갇혀 정말 그런 사람으로 성장했다. 미도의 엄마는 상담센터에서 만난 다른 엄마들의 아이들을 무료 돌봄으로 맡아주면서 '구원자', '신'이라는 칭송을 받았으나 아동학대가 드러나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선처를 구하기 위해 모자란 딸 미도를 카드로 쓰려고 한다.

미도 또한 그 아이들 때문에 자신이 엄마의 관심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가 아이들을 어떻게 학대하는지도 모두 보았다. 과연 미도는 엄마를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릴까?


-학대는 그냥 학대야. 거기엔 어떤 이유도 붙으면 안 돼. p.186



너는 항상 너의 동생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자란 사람도 다만 선한 사람도 아닌 너의 동생 같은 사람. 학대는 그냥 범죄라고 너의 동생은 말했다. 사과할 때 조건이 없듯 범죄에도 붙일 수 있는 이유가 없다고. p.208





7. 밤은 내가 가질게

아이 몸에 난 상처를 어린이 집 교사 탓이라고 난리를 부리는 주승이 엄마. 그 일 이후로 주승이는 어린이집에 오면 옷을 벗어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어느 날 상처가 보였고 교사는 바로 신고했다. 이주 뒤 주승이는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다시 어린이 집에 다니게 되었다. 이번에는 하원시간을 자꾸 어긴다. 단호하게 아이를 보내지 말라는 사건 이후 하원시간은 잘 지켜졌다. 그런데 나무처럼 구석에 가만히 있던 주승이가 간식을 먹고 나면 반드시 제자리에 쪼그려앉아 똥을 눈다. 엉덩이만 닦아주려는데 아이가 옷을 벗는다. 옷을 벗으면 교사가 자신을 구해주리란 것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공평해. 네가 선을 가지면 저쪽이 악을 가져. 네가 만만하고 짓밟기 좋은 선인이 되면 저쪽은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 줄 안다고. p.231



이 책의 키워드인 진심, 사과, 공평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심, 사과, 공평이 폭력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는 걸, 상대가 아닌 나의 기준에서 이런 말을 할 때가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불행에 처한 천사들을 어떻게 구해내야 하는 걸까?

바늘 끝에 몇 명의 천사가 있는가?라는 한심한 질문에 동조하지 않기를. 애초에 그 바늘 끝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기를. 피해자의 절규에 딱 한 번뿐이었다는 공허한 소리를 하지 않기를. 미약하나마 용기를 낸 사람들의 목소리에, 몸짓에 좀 더 귀 기울이기겠다고 다짐한다.


증인이 되기로 결심한 도윤이, 매표소 직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손님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외치는 미도파 찻집 아저씨, 경보음이 울리면 바로 뛰어갈 준비가 되어있는 유영이, 엄마가 죗값을 받았으면 좋겠 다는 미도, 주승이가 보내온 신호를 놓치지 않고 신고한 나무반 주임교사, 아무 의심 없이 자신의 가장 취약점인 빨간 배를 보여주는 토리, '네가 필요해'란 말 한마디에 달려와준 이선이까지. 세상엔 더 많은 천사가 있다고 말해주는 책 <밤은 내가 가질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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