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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문학동네

by 자몽커피

우리는 멀리 떨어진 건물들, 부드럽게 빛나는 샌안토니오 도심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추운 밤이었다. 근래의 기억 중 가장 추운 밤이라 할 만했고 공기가 맵차서 입김이

눈에 보였다. 아래층 마당에서 사람들의 말소리, 파티가 시작되는 소리, 누가 기타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칼리를 가까이 당겨 안아 어깨를 팔로 감싸고 손을 잡았다.

"있잖아, " 얼마 후 나는 칼리와 손가락을 엮은 채 먼 곳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끔 난 우리가 어디로 갔었나 의문이 들어, 칼리."

"무슨 뜻이야?"

"모르겠어."

"우린 아무데도 안 갔어." 칼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문제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어."

나는 칼리를 보았다. "하지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아." 내가 말했다. "가끔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너무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어, 알아?

그걸 놓아버리기가 너무 힘들어."

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실 넌 그다지 다르지 않아." 칼리가 말했다.

"우리 둘 다 그래." p.287



불안하지만 빛나던 시절

청춘, 예술 그리고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들





이번 소설집은 크게 호와 불호로 나뉘었다. 읽다 보니 단편이었다, 이야기가 모호하다, 왜 여기서 멈추는 거냐?, 알만하면 끝나는 이야기에 짜증이 난다, 답답해서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라는 평들이 불호의 이유이다. 인물들 하나하나 따져보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거나 회피하거나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부모가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집을 나간채 딸아이의 축구연습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알렉시스에게 엄청난 분노를 표시한 회원도 있었다.

소설은 도덕책이 아니기에 알렉시스를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지만 나는 결코 이런 부류는 될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건 가능, 이건 불가능을 계속 상기시키는 게 소설의 역할이 아닐까~

아내가 집을 나가도(벌), 친구부부가 자신을 버리고 멀리 이사를 가려고 해도(라인벡), 남편이 이십 대 여대생과 바람 비슷한 걸 피워도(히메나), 병으로 직장도 미래도 불안한데도(첼로) '아직은 아니야'라는 말로 외면하려고 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누구는 그런 게 인생이지라는 반응과 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가라는 반응으로 갈렸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용도 좋았지만 특히 중년 남성의 심리를 알 수 있는 문장들이 아주 맘에 들었다. 반전이나 강렬한 사건이 없는 대신 인물들의 감정들은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 편이다.


15편 모두 1인칭 시점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남성화자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텍사스주의 주도인 오스틴과 샌안토니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또한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직업군을 살펴보면 본인이나 배우자 또는 상대의 직업이 예술가이거나 그 계통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음악, 미술, 영화쪽에 발을 담그고 있는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중년, 젊음도 꿈꾸던 것들도 희미해진 나이지만, 여전히 그때를 놓지 못하는 인물들과 결혼과 아이가 있는 삶에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인물들이 대비를 이룬다.



젊음은 누구를 책임지는 시기가 아니었기에 시간도, 건강도 맘대로 할 수 있었지만 결혼과 함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의 이동은 린지의 대사처럼 무언가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저 달라질 뿐. 때로는 더 좋게, 때로는 더 나쁘게.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전과 다르게라고.

40대에 이르러 결혼을 했거나 아니거나, 아이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래도 불안, 저래도 불안하다.

작가의 경험담이 듬뿍 들어가서일까? 정말 오랜만에 소설이 나온 건 그동안 작가가 육아에 전념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모두 짠한 마음이 들었다.

현재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 살면서 연내 출간을 목표로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며, 트리니티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15편 모두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텍사스주가 주요 배경지도 나온다. 옴니버스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한동네에 살고 있는 주인공들을 카메라가 천천히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사라진 옛 도시의 모습을 기억하는 주인공들을 볼 때마다 내가 살았던 동네의 추억도 동시에 떠올랐다. 변화의 끝에 오는 아쉬움과 씁쓸함이랄까~

도시가 변하듯 나 또한 변한다. 무엇이 사라진 줄도 모르게 바쁜 나날들을 보내다 문득 아~ 저곳에 예전에 내가 다니던 도서관이 있었는데, 이제는 소식도 끊긴 친구가 떠오를 때면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나는 여전히 나인데 사라져 버린 나의 무수한 시간들은 어딘가에 쌓여있는 것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이 소설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많다고 느낀 건 텍사스라는 곳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름이 마야라든지 멕시코 음식인 포솔레, 타코가 등장하는 이유도 텍사스주가 멕시코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진 것들>도 당연히 텍사스라는 곳의 역사를 알아야 더 재미가 있다. 나무위키가 알려주는 지식정도만이라도 알고 가자.

텍사스는 미국의 주로서, 대한민국의 7배에 달하는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 도시 휴스턴, 최대 광역권 댈러스-포트워스, 주도 오스틴이다.

동쪽으로 대서양과 연결되어 있으며, 커다란 면적 덕분에 같은 주 안에서도 서로 다채로운 날씨를 가지고 있다.

텍사스는 세계 에너지 산업의 수도 (Energy Capital of the World)로 유명한, 대표적인 석유부자 주이다. 축복받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부의 원천을 이룩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번영과 함께 부유한 경제력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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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지도는 구글, 포솔레 음식 사진은 블로그 maddog에서 가져왔음.



<첼로> , <숨을 쉬어,> <히메나>, < 포솔레>등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다. 나에게도 포솔레와 같은 추억이 있는데 그곳은 정말 아는 사람만 가는 곳이었다.

점심에는 칼국수나, 들깨 수제비, 낙지덮밥 같은 밥 종류를 팔고 밤에는 주점간판답게 술과 안주를 파는 곳이다. 00 주점이라는 간판이 무색하게 중고등 학생들도 오고 직장인, 동네 주부들까지 그야말로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서 나도 종종 애용하던 곳인데 어느 날부터 문이 닫혀있었다. 알고 보니 주인분이 암에 걸려 한동안 쉬다가 결국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설 속 인물들도 종양이나 암에 걸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제는 암이 정말 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살지만 또 누구는 죽을 수도 있는 병.


파킨슨병의 전조증상을 보이는 <첼로>의 나탈리를 보면서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심정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남편보다 오히려 의연한 모습에서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파킨슨 병은 나빠지면 나빠졌지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병이기 때문이다.


태어나 수영을 배운 적 없는 아들이 몇 초간 물에 빠진 사고가 일어났다. 아이는 재빨리 꺼내졌고 조금 겁먹은 듯했지만 그것 말고는 괜찮았다. 집에 와서 계속 아들의 상태를 살피는 아빠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가 실직했던 두해 동안은 아이와 친밀한 사이였지만 다시 규모가 큰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아이는 엄마만 찾는다. 아들과 친해지려고 하지만 아들은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익사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자기가 물에 빠진 순간 '아빠는 무엇을 하고 있었어?'라는 말에 솔직히 기억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공황장애를 앓게 되는 주인공에게 모두가 해주고 싶던 한 마디는 바로, 숨을 쉬어.


첫 소설집에서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편이 가장 좋았다. 이번 책에서는 <히메나>. 가족도 연인도 아니지만 특별한 관계를 맺고 숨 쉴 틈을 만들어 주는 인물들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먼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짧게 소개하고 <히메나>로 넘어가겠다.

모든 학생의 이해 수준을 넘어선 물리학 방정식이 기말고사 시험문제로 나온다. 유일하게 문제를 푼 헤더를 교수가 자기 집에 초대를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사랑과 우정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둘의 사이에 헤더의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균열이 생긴다.

30년이란 나이차와 무관하게 헤더는 교수에게 그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다. 가족, 남자 친구에게는 할 수 없는 말을 모두 다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니. 결국 교수와 헤더의 사이를 남자 친구가 목격하고 만다. 헤어질 생각이 없었던 헤더의 남자 친구는 모든 걸 덮은 채 둘은 결혼한다.

이번 소설에서도 우정과 불륜의 경계에 있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사건을 크게 만들지 않는다.

당사자도 그렇고 배우자도 그렇고. 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내가 넘어가면 그냥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관계를 끝낼 생각이 없으면 없던 일처럼 침묵하는 것이 정답일까?



<히메나>에서는 영화를 전공했지만 할아버지의 유산을 계기로 회사를 그만둔 남자가 나온다. 십 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칼리와 서른여덟에 결혼했고 아이는 없다. 칼리는 남편이 다시 일하기를 원한다. 회사에서 인턴에게 밀리는 상황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예술 단체에서 홍보 담당자로 일을 하던 칼리는 불경기에 한번 인원감축을 당한 전력이 있어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 위축되어 있다.

자신들의 아파트 아래층에 입주해 살고 있는 히메나는 이 두 부부와 각각 얽혀있다. 젊고 예쁘고 방종한 생활을 하는 히메나를 칼리는 좋게 보지 않는다.

히메나는 매춘부도 마약중독자도 아닌 사우스웨스트 예술대학의 도예과 학사 과정에 있는 미대생이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히메나를 보고 주인공은 지역예술가 인터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히메나의 이야기는 항상 바뀐다.

때로 히메나는 내 아내가 나를 버리고 찾아간 여자다.

어떤 때는 내가 아내를 버리고 찾아간 여자다.

또 어떤 때는 둘 다 아니다. p.235




히메나는 샌안토니오 남부에 있는 어떤 스튜디오로 일하러 간다. 자신의 작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형편없고 창피하다고 표현한다. 그녀는 다른 모든 면에서는 확신이 강하고 침착한 사람 같았지만, 예술에 관해 얘기할 때는 갑자기 모호해지고 작아지고 수줍어진다.


칼리가 직장에 가 있는 시간 동안 남자는 히메나의 아파트에 간다. 그곳은 바깥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형 동굴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인생이야기,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 둘 다 좋아하는 예술가, 영화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세대차이에서 오는 모르는 세계와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둘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칼리의 퇴근시간이 되면 남자는 히메나의 집에서 나온다.


우리의 감정은 우정 이상은 전혀 아니었다. 히메나가 아름답긴 했지만, 그리고 내가 그녀를 사랑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육체적인 끌림이 아니었다. 히메나가 내 옆에 바짝 붙어앉아 맨다리를 내 다리에 거의 밀착한 채, 제가 그린 스케치 작품이나 갖고 있던 이상한 문학 저널에 실린 시구절을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였다. p.252




히메나가 푹 빠져있다는 베네수엘라 영화감독 마르고트 베나세라프에게도 관심이 갔다. 물론 이건 작가의 관심이겠지만. 책이 주는 정보는 1950년대 후반 다큐멘터리 영화 <아라야>로 칸에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했다는 정도이다.



"아라야, " 마침내 히메나는 텅 빈 눈빛으로 말했다. "베네수엘라에 실제로 있는 반도의 이름. 거기에선 꼭 달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고 마르고트 베나세나프는 말했어요."p.257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마르고트 베네세라프 margot benacerraf 작년에 97세로 죽은 여성감독이었다.

실제 발음은 마곳 베네세랍정도가 될 것이다. 아니면 마고 베나세랍일수도. 우리나라 표기상 자음으로 이름을 끝내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일 테지만 주석에 영어이름정도 남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마르고트 감독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편집자인 피에르 세게르와 함께 공동집필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I wanted to tell this story as a poem."


전편을 모두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무성영화 같았다. 유튜브에 나와 있는 정보로는 2분 정도여서 사실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라야>의 다른 특징, 다큐멘터리이지만 다큐멘터리 같지 않다. 허구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 허구의 이야기에서 생겨나는 것과 비슷한 시적인 느낌 분위기가 있다. 지역의 소금 광부들이 연기하는 등장인물이 있고, 실험적인 형식과 구조를 사용한다. 베나세라프는 이 영화를 완성한 뒤 베네수엘라의 여러 영화 및 문화 기관에서 수장을 맡았으나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았다.p.281



감독이 이 영화를 촬영했던 섬으로 다시 갔을 때는 사람들이 거의 다 사라진 후라고 한다. 유령도시가 되어 버린 섬이라니. 히메나는 그냥 영화 속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싶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화의 끝부분에 여전히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히메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린 사건이 있었음에도 다시 그곳으로 떠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결혼을 할 뻔 했고 딸이 있다는 사실. 영화처럼 히메나의 결말도 희망적이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무엇이 사라졌나?가 아닌 그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채워졌나로 독서모임이 마무리 되었다. 즉석에서 만들어진 논제였는데 나의 내답은 '시선'이라고 답했다. 사람을 보는 눈이라고 할까~

현재의 모습으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게 된 점은 경험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180도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의 날라리가 과거엔 범생이었을 수도 있다. 너무 허무하지 않게, 고독하지 않게, 쓸쓸하지 않게. 지금을 잘 보내고 싶다. 칼리의 말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다르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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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자신을 예술가라고 여기며 위대해질 운명이라 믿었던 그때의 우리는 밖에서 보내던 그런 밤에 각자의 계획, 미래의 프로젝트, 희망 같은 것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즈음에는 정기적인 밤 외출이 없어졌다......

그녀가 술잔을 옆에 두고 휴대전화 화면을 연신 넘기거나 업무 이메일에 답하는 동난 그냥 식탁에 앉아서 잡지를 읽기도 했다. p.258





그러나 히메나와 함께 있으면 늘 다시 보이는 존재가 된 느낌이었는데, 아마 그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히메나는 젊었고, 어쨌든 나보다는 젊었고, 나를 바라봐주었다. 아마도 그 눈길에 연애 감정은 없었겠지만-나 역시 그런 차원에서 생각하진 않았다- 같은 인간으로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후회에 휩싸인 채 인생을 망치지 않으려 애쓰며 이 땅 위를 건든 사람으로서 나를 바라보았다. p.267





히메나 자신이 무엇을 얻었는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한 그 시간에서. 자신의 아파트에서 보낸 그 길고 나른한 날들에서. 어쩌면 딴생각을 하게 해줄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거실에 타인의 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는지 모른다. 나는 너무도 오래 칼리와 함께 지냈기에 가끔 잊고는 했다. 독신일 때는 그것만으로도, 같은 공간에 누군가가, 타인의 몸이, 얘기를 나눌 다른 인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p.288



<사라진 것들> 문장 모음으로 리뷰를 마치겠다.


#오스틴 - 무슨일이 일어난 거야, 친구? 연한 파란색 문자 칸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너 어디로 간 거야? p.24


#담배 -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p.26


#넝쿨식물 - 지금 내 이메일 계정에서 네게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이제 더이상 내가 아니야. p.64


#첼로 -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p.92


#라인벡 - 그래서 나는 궁금해진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을지,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지워져버렸을지. p.126


#고추 - 테리사가 식탁에 홀로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담배는 평생 끊은 적이 없다) 그 아름답고 빨간 고추를 한 번도 낳은 적 없는 아이인 양, 혹은 항상 그리고 싶었던 그림 인 양 응시하는 모습이. 열기로 가득차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그 조그많고 아름다운 것을.p.132


#숨을 쉬어 - "수영장에서. 왜 나랑 같이 있지 않았어? 아빤 나랑 같이 있었어야지." p.156


#실루엣 - "부모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 어쩐다, 다들 얘기하잖아요." 린지가 말했다. "뭐, 물론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흔히 떠올리는 변화와는 다를 뿐이죠. 뻥 뚫린 마음이 채워진다거나 하진 않아요. 무언가를 해결해주진 않죠. 그저 달라질 뿐이랄까요? 때로는 더 좋게, 때로는 더 나쁘게.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전과 다르게." p.181


#알라모의 영웅들 - 하지만 그날 밤, 그런 미래는 아직 내 생각과 먼 곳에 존재했다. 그날 밤 나는 우리가 대화의 공백을 게임으로 채울 필요가 없었던, 서로 얘기를 나누기 위해 밖에 나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었던 초여름의 가벼운 분위기를 되살려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p.200


#벌 - 나도 부분적으로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내가 두려움 때문에 그런 일을 용인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울러 내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 가정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내가 너무 세게 밀면 모든 게 무너져버릴지도 몰랐다. p. 211


#포솔레 - 그러다 나는 그만두었다. 우리 둘 다 그런 포솔레 수프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다른 식당은 이 도시 안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p.234


#히메나 - 히메나 자신이 무엇을 얻었는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한 그 시간에서. 자신의 아파트에서 보낸 그 길고 나른한 날들에서. 어쩌면 딴생각을 하게 해줄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거실에 타인의 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는지 모른다. 나는 너무도 오래 칼리와 함께 지냈기에 가끔 잊고는 했다. 독신일 때는 그것만으로도, 같은 공간에 누군가가, 타인의 몸이, 얘기를 나눌 다른 인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p.289


#빈집 - 아내가 다시 받아준 거야, 어느 날 저녁 우리가 집에서 나가는 길에 에스텔이 알려주었다. 난 그렇다고 거의 확신해. p.291


#사라진 것들 - 오늘날의 오스틴은 우리 유년기의 오스틴, 혹은 대학과 대학원 시절의 오스틴과도 닮은 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에 갈 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대니얼이 말하던 '4월의 마지막 나날'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대니얼이 읽었다는 어떤 시의 구절인데 시인의 이름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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