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복복서가
원래 나는 '인생 사용법'이라는 호기로운 제목으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내가
인생에 대해서 자신 있게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내게 '단 한 번의 삶'이 주어졌다는 것뿐, 그리고 소로의 단언과는 달리, 많은 이들이
이 '단 한 번의 삶'을 무시무시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적기로 했다. 일단 적어놓으면 그 안에서 눈이 밝은 이들은
무엇이든 찾아내리라. 그런 마음으로 써나갔다. p.197
선거 다음날 김영하 작가의 북콘서트에 다녀왔다. 새로 대통령이 뽑힌 다음날 나의 첫 공식 행사였고, 작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날 모인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교롭게'라는 말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단어에 지닌 함의에 웃음이 터졌다.
강연 주제는 < 왜 책을 읽는가>였다. 책이 어떻게 깊은 수준의 공감과 자기 성찰, 타인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은 유일하게 광고 없는 완결된 매체라는 정의가 마음에 들었다. 도어록도 광고가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10초간 광고 보고 문이 열린다면 누가 사용하겠는가? 눈만 돌리면 온통 광고인 세상에서 평안함을 주는 세계, 바로 책이다. 지금은 너무도 유명한 말이 되어버린 책은 산 책에서 읽는 것이다.
책은 그저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효용가치가 있다. 뭐 때가 되면 어느 순간엔 책이 말을 걸어올 것이다.
'이제는 좀 읽어야 하지 않겠어?'
나는 책을 읽으면서 쉰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지만 독서라는 행위가 휴식이라는 견해도 좋았다. 현실의 문제는 더디 해결되거나 안되거나지만 소설 속에서는 어떤 방식이든 갈등이 해소된다는 점. 나의 문제가 아닌 타인의 문제에 집중할 때 뇌가 쉰다고 하니, 책의 효능감이 이 정도일 줄이야~
나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먼저 접했다. 지금까지 나온 에세이는 모두 읽은 것 같다.
그러다 소설을 접했는데 이런~ 너무 충격적이었다. 특히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같은 초기 소설들은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강했는데 딱 내 스타일이었다. 작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 치료나 상담이 필요한 상태였고, 당시의 우울과 자기 파괴적 충동이 고스란히 소설에 녹아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나의 상태도 작가와 비슷했던 걸까? 흠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장편소설 중에서는 <검은 꽃>을 제일 좋아한다. 2022년에 나온 <작별인사>는 사실 별로였다.
<클라라와 태양>을 쓴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들을 모두 읽어서인지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로 한 줄 평이 끝났다. 아마 시기의 문제도 있었던 것 같다. 좀 더 일찍 <작별인사>가 나왔다면 다른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삶』은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에 나온 산문이다. 산문에는 사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 모임에서도 <여행의 이유>를 읽고 팬이 된 분들이 많았다.
다시 북 콘서트에서 들은 얘기를 풀자면 이번 책(단 한 번의 삶)에 대한 리뷰들을 살펴본다고 한다. 그런데 대다수가 챗 gpt에서 긁어온 글이라고, 심지어 있지도 않은 내용이 버젓이 실려있기도 한다고 한다.
기계가 써주는 소감을 그대로 가져온다라~
참고정도면 모르겠지만 감상마저 인공지능에 기댄다는 게 리뷰를 쓰는 입장에서 스크래치가 긁히는 말이었다. 작가의 말이 마음에 걸려 있지도 않은 내용을 적을까 봐 확인작업을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번 책은 작가 스스로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라고 고백하는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야기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더 좋은 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은 또다시 만날 것이므로, 작가 스스로 이런 단정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이 문장은 나와 같은 독자의 리액션을 바라고 쓴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작가에게서 어느날 훌쩍 늙어버린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이는건지...
전체적인 소감은 '작가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였다. 부모와의 갈등을 겪었고, 학창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전교회장에게 부드러운 적대도 당했으며, 리플리나 개츠비 같이 외모와 부를 동경했으며, ( 물론 작가는 이 부분을 교양과 유능이라는 말로 인간 밑바닥에 있는 욕망을 표현한다.) 타인의 관심을 바라는 관종임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점들이 그러하다.
특히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는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를 담고 있다. 부모가 되는 순간 어느정도 부모를 이해하는 수순에 기대어 본다면 항상 자식의 위치에만 서 본 작가의 한계를 꼬집는 뼈때리는 평가도 있었다.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숭고하고 철학적인 제목으로 시작해서 인생은 재활용도 안 되는 일회용으로 주어진다는 b급 감성이 너무 좋았다는 평이 있었다. 테세우스 배와 야료가 공존하는, 고급과 저급이 적절히 버무려진
한 편의 비빔밥 같은 에세이다.
이번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작가의 가정사, 개인사가 많이 담겼다는 점이다. 장례식장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엄마의 20대 직업부터, 11월생인 작가가 5년 3개월 만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이유, 뒷문과 야로의 세계를 끝까지 믿었던 엄마이야기, 글씨를 잘 써야 성공한다며 우물정자를 하루에 천 개씩 쓰라고 했던 아버지, 공인회계사를 바랐던 부모님의 꿈대신 소설가가 된 이유, 지금은 요가하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인스타에 '머리서기' 자세 동영상이 있으니 확인해 보시길~
그러나 영어반 시절에서 가장 많이 떠올리는 장면은 역시 유인물을 넘겨주며 내게 상냥하게 말을 건네던, 전교 학생회장의 '부드러운 적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환대보다 적대를, 다정함보다 공격성을 더 오래 마음에 두고 기억한다. 어떤 환대는 무뚝뚝하고, 어떤 적대는 상냥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게 환대였는지 적대였는지 누구나 알 게 된다. p.29
그러면서도 아내가 엄마의 말에 매번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그 '앎'의 정확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부모에게 부여한 앎의 권력(자식의 '명목상의' 저자라는 권위)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엄마는 자식을 정말로 잘 알았던 것이 아니라 '자식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력', 즉 다른 사람이 귀를 기울이게 만들 힘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p.95
부모와의 갈등은 모두의 문제여서 다들 한 마디씩 보태졌고, 이 부분에서 공감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굉장히 서운한 부분이었다는 분들도 많았다. 머리가 커지고 저 혼자 큰 줄 아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네가 기억 못 하는 너의 모습을 부모인 나는 알고 있다고, '네가 다 알아?'라는 말로 꾹~ 눌러 주고 싶은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고 말이다.
작가가 아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부모가 내세울 수 있는 권력이 요 정도라면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 주는 너그러움을 발휘해 보자.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이 좋았던 부분은 작가도 특별할 게 없구나, 인생은 다 거기서 거기구나라는 점을 계속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특히나 작가와의 공통점이 한 두 개씩은 모두 있었기 때문에 팬층이 두터운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교집합이 많을수록 내편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니까.
나 또한 작가와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책을 읽는 방식이다.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은 뷔페식이다. 우선 10여 권의 책을 쌓아놓고 50페이지에서 100페이지 정도를 읽는다. 한마디로 맛보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맛이 없으면 바로 덮어버린다. 하지만 너무 재밌으면 당연히 완독을 하는 방식이다. 이런 독서법을 공개했을 때 불편한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있던 터라 사실 나의 독서법을 다른 곳에서는 잘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데 김영하 작가의 독서법이 나와 똑같다니!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편식할 수 있고 언제든 덮을 수 있다고 말이다.
노트에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도, 처음 몇 년은 모두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신은 나에게 집중력은 주지는 않으셨지만 대신 태평한 마음을 주셨던 것 같다. 지금은 이래도 오 년, 십 년이 지나면 그럭저럭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 나에게는 그 마음이 있었고, 참으로 다행하게도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를 때까지 참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다. p.70
나는 책도 수십 권을 두서없이 읽는다. 이 책을 읽다가 저책을, 저 책을 읽다가 또다른 책을⸳⸳⸳⸳⸳⸳그래서 한 권의 책을 다 읽는데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어쨌든 오랜 세월이 지나면 다 읽게 된다. 좀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p.71
그나마 인생사용법에 해당하는 곰 프로듀서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한마디로 1등보다는 2등이 최고라는 것이다. 남들 눈에 띄지 않은 채 조용히 실속을 챙기는, 최선을 다해 2등을 하고 있을 얼굴 없는 고수들의 이야기에서 더 멀리 가면 아예 쓸모 자체가 없어야 좋다는 이른바 무용無用의 용用을 주창하는 장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장자는 쓸모 있는 나무는 그 쓸모 때문에 일찍 벌목되므로, 쓸모가 오히려 제 몸에 해를 입힌다고 말했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를 자르지 않은 나무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잘라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나무라 자르지 않았다는 나무꾼의 말에 장자는, 이 나무는 쓸모가 없어 천수를 다할 수 있었다고 제자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나는 이 이야기에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정말 2등들은 스스로 원해서 2등인 걸까?
메달리스트 중에서 가장 불행한 등수가 은메달이라고 한다. 은메달을 딴 선수들은 금메달과 비교해 실망하고 낙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동메달리스트는 오히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과 비교해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은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죄인처럼 죄송하다고 한 인터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물론 이것도 예전 이야기다. 지금은 메달을 따면 딴대로 아니면 아닌대로 그들이 흘린 땀에 경의를 표하는 시대가 되었다
2라는 숫자가 그냥 불편했다. 최선을 다하는 2등이 과연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 자체가 맞지 않는다고 본다. 인생은 등수로 매겨질 수 없으며 인간의 쓸모와 나무의 쓸모를 같은 선상에 놓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전에 이효리 씨가 쓴 에세이에 이제는 옷이나 신발, 화장품에 대한 소비욕구가 사라졌다는 글을 봤다. 그 이유는 활동시기에 입어볼 수 있는 모든 옷들을 입어보았기 때문이고 온갖 화장법을 해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 거 다해본 사람의 소비욕구와 경제적 능력이 안되는 사람의 소비욕구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모든 걸 다 누린자들의 검소와 가난한 사람의 검소를 한자리에 놓고 비교한 것 같아 이 부분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1등보다 2등이 더 좋아라는 말도 결국엔 1등을 해본 사람들이 건네는 위안같이 느껴지거나 2등들의 흔한 핑계같다고 할까~
작가는 스스로 20대 때 시간들을 낭비했다고 후회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마 낭비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다른 부분에 대해서 후회하노라고 할 것 이다. 청춘은 무모해야 하며 당연히 그때의 소중함을 몰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인간은 후회라는 것을 하고 반성도 하고 계획도 세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맘껏 즐기지 못했던 20대가 가장 후회스럽다. 인생이 선불제건 후불제건 결국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는 개인의 몫이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인정했던 부분은 '건강'이었는데 건강은 후불제가 맞다. 있을 때 잘 하자~
십대와 이십대에는 몸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 날마다 술을 퍼마셔도, 매일같이 나쁜 음식을 먹어도, 운동을 전혀 안 해도 몸은 멀쩡했다. 몸은 충동적인 내 정신의 순종적인 노예로서 모든 부당한 처사를 묵묵히 감당했다. 함부로 방치되고 혹사되었다. 지금은 돈과 시간, 노력을 많이 투입해야만 몸을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다. 마음도 돌보지 않았다. 되는 대로 아무 생각이나 받아들였고,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무한대로 남아 있는 것만 같은 시간은 지독히도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구 낭비해버렸다. p.157
매일 잊고 사는 한 가지 진실은 우리의 삶은 단 한 번이며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잊기 위해 종교가 만들어지고 예술이 태어나고, 지금은 메타가 제공하는 가상현실에 대부분의 시간을 저당 잡혀 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현재 나는 어디쯤에 있으며 나의 갈등요소는 무엇인지, 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자기 리뷰를 할 수 있게 도와준 책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고통 중에서 무의미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어떤 고통일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다.
잠시 한 템포 쉬어 갈 수 있는 휴가를 선물해 주는 책. 혼자 읽기 보단 눈 밝은 이들에 기대어 함께 책을 나누니 더 좋다.
작가가 말한 대로 인생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목공, 요리, 꽃, 커피, 그림, 등산, 글쓰기 같은 취미칸이 많은 사람이 되보자는 게 올해 목표 중 하나라면 하나이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삶도 부디 축복된 여정으로 남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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