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창비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p.95
성장형 작가와 완성형 작가가 있다면 한강작가는 후자에 해당된다. 초기작은 어느 정도 미완의 느낌이 있겠거니 했지만 역시나였다. 아~ 인간미가 전혀 없는 작가님. 최고의 작품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어도 '이 작품은 별로였어' 하는 이야기를 지금까지 들은 기억도 없고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 관련 강연이 많이 생겨 열심히 듣고 있고, 특히 올해 독서모임에서 6권이 지정이 되어 그야말로 작가님 책을 정주행 중이다.
특히 5월이면 항상 언급되는 책이기도 하고, 작년 12.3 계엄과 우리나라 정치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 책 <소년이 온다>가 선정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200페이지가 살짝 넘는 소설이지만 한강작가의 책 중에 '제일 무거운 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소년이 온다>는 이미 알고 있듯이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은 인간의 깨끗하고 연한 지점을 응시하는 아주 맑은 소설을 쓰려다 실패한 작가가 '내가 정말 인간을 믿는가?, 인간을 껴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맞닥뜨렸다고 한다. 작가는 내가 왜 소설을 쓸 수 없는가를 생각하다, 유년시절 간접체험 했던 5월 광주에 이르게 되었다고.
이 소설의 에필로그(눈 덮인 램프)에는 작가와 이 소설의 주인공과의 인연을 풀어놓는다. 사실과 허구를 섞어놓았지만 작가가 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필연이 녹아 있다.
처음 읽는 독자들은 마지막장부터 읽기를 권한다.
십 년 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 장 한 장이 넘어가지 않는 소설이었다. 몸으로 쓰인 소설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힘이 든다는 걸 처음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간신히 재독을 하고 독서모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다시 읽은 <소년이 온다>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는 사실에 비현실적이라는 느낌과 이 책이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자 작가님께 깊은 감사함이 들었다. 책 한 권이 이렇게 나라를 살릴 수도 있구나!
어쩌면 이번 12.3 계엄은 이 책이 있었기에 시민들이 더 자발적으로 현장으로 나갈 수 있었으며, 군인들의 소극적인 행동이 결국 이 나라를 살린 것이 아닐지. 그야말로 산자가 죽은 자를 살렸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 것이다.
책 읽은 소감이 1시간을 채운 건 정말 오랜만이다. 눈물이 한바탕 휩쓸었고, 우리가 너무 무지했노라고, 역사를 너무 몰랐다고, 고향이 광주이거나 친척, 친구들, 지인들이 광주인 분들은 몰입감이 더했다고, 살아있음에 너무 감사하다는 평이 줄을 이었고, 특히 이 책은 광주보다는 사람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증언'이라는 의식 또한 쉽게 말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책이었다.
1장에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들이 1980년 5월 광주에 모여있다. 동호, 정대, 정미누나, 은숙, 선주, 진수, 시민군, 동호 엄마와 형 등등. 작가는 빅뱅이 터지듯이 개별적인 주인공들을 다른 시간에 던져 놓고 싶었다며 2장부터 개별적인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일반적인 장편 소설의 서술 방식괄 달리 각 장마다 다른 화자가 등장하고 시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저 자신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제 자의식을 지우고 최대한 그 목소리들이 되려고만 했어요. -한강
타자의 고통을 기억하고 증언하기 위해, 개별적인 고통의 목소리가 들어설 공간으로 자신을 열어 놓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마음을 먹어야 한다. 견뎌 보겠노라고, 책을 펼친 당신은 이미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1년 반 정도가 걸렸고, 어느 날은 3 줄 쓰고 한 시간을 울었다고 한다. 사진첩에 있는 참혹한 시신들의 사진과 총상자들을 위해 길게 헌혈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보며 작가는 수수께끼 같다고 여긴다.
참혹하게 폭력적이면서, 피를 나누는 것이 인간이란 말인가?
1장에서 군인들에 의해 구타를 당하는 신혼부부와, 삐끗한 허리 좀 밟아달라는 동호 아빠의 모습에서 이 장면이 극대화된다. 똑같은 '몸'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십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p.25
너는 익숙한 동작으로 발을 바꿔 아버지의 척추와 엉치뼈 사이를 조심조심 밟았다.
아이고 거기, 그래 거기다⸳⸳⸳⸳⸳⸳ 시원하다. p.34
전체 장의 구성
1장 ✦ 어린새(The boy, 1980) -중학생 동호. 친구 정대를 찾아 상무관에 들어갔다가 죽은 사람을 위해 장부를 정리하고, 초를 밝히는 일을 한다. 계엄군이 다시 온다는 걸 알았지만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총살을 당한다.
2장 ✦ 검은 숨(The boy's friend, 1980) -혼령이 된 정대. 정미누나를 찾으러 나갔다가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 작가는 정대처럼 한 장은 실종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3장 ✦ 일곱개의 뺨(The editor, 1985)- 김은숙. 출판사 직원인 김은숙은 번역자의 소재를 대라는 경찰에게 일곱대의 뺨을 맞는다. 김혜순시인의 <김혜순의 말>에 이 에피소드가 자세히 실려있다. 검열로 지워진 희곡집이지만 침묵이라는 언어로 연극을 올린다.
4장 ✦ 쇠와 피(The prisoner, 1990)-김진수와 함께 고문을 받던 시민군. 시민군의 목소리를 통해 김진수가 어떤 고문을 받았는지, 그 후 어떤 삶을 살았으며 왜 자살했는지의 행적이 그려진다. 그날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과 정신병원에 들어간 영재의 이야기를 통해 고문으로 파괴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5장 ✦ 밤의 눈동자(The factory girl, 2002)- 방직공장 노동자 선주. 1970년대 인권탄압과 노동운동을 함께했던 성희언니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선주는 병원으로 향한다. 여성의 몸에 가해진 폭력의 흔적을 안고 사는 선주에게 윤은 증언을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선주는 거절한다.
6장 ✦ 꽃 핀 쪽으로(The boy's mother, 2010) -동호 어머니.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동호를 끝내 데리고 오지 못한 후회와 회한, 희생자 가족들과의 연대 등이 그려져 있다.
에필로그 ✦ 눈 덮인 램프(The writer, 2013) -작가. 동호네와의 인연과 이 글을 쓰기까지의 여정이 그려져 있다. 겨울 망월동 묘역, 동호와 소년들 무덤 앞에 초를 밝히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책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6개의 장으로 나뉜다. 영어 제목이 boys coming 이 아니라 human acts인 이유는 영어 come에 성적인 의미가 있어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영어번역본의 소제목은 연도와 주인공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친구인 정대의 죽음을 끝내 외면했다는 죄책감에 동호는 상무관에 남게 되고, 그곳에서 장부정리와 죽은 자들을 위해 초를 밝히는 일을 한다. 도청에서 끝까지 남아있다 총살을 당하는 인물이다. 동호를 '너'라고 부르던 화자의 목소리는 어느새 책을 읽고 있던 '나'의 목소리와 합쳐져 자꾸 동호를 불러내고 있었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라고 하는데 불러서 살아있게 하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책이 읽기 힘들었다고 하는 지점은 내가 동호가 되었다가 정대가 되었다가 은숙으로... 마지막 동호의 엄마, 작가까지,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합일의 과정을 거치는 순간들 때문이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역지사지의 감정이 드는 순간, 이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달아났을 거다,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p.45
'어린 새'로 시작한 동호의 이야기는 '검은 숲'에서 동호의 친구 정대의 시점으로 옮겨간다.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정대는 자신의 '몸'을 떠나지 못하고 다른 시신과 한 데 층층이 쌓인 뒤 마침내 군인들에 의해 불태워진다. 민간인 학살과 사체 처리의 과정이 살아있는 자가 아닌, 죽은 혼을 통해 그려지고 있어 그 참상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수십개의 다리가 달린 괴물의 사체처럼 한덩어리가 된 우리들의 몸을 더이상 들여다보지 않을 수 있다면.
깜박 잠들 수 있다면. 캄캄한 의식의 밑바닥으로 지금 곤두박질칠 수 있다면.
꿈속으로 숨을 수 있다면.
아니, 기억 속으로라도. p.54
3장의 주인공은 은숙이다. 1980년 5월 광주 전남도청에서 소년 ‘동호’를 데리고 나가려 했던 수피아여고 3학년 생이었던 은숙은 대학 중퇴 뒤 출판사에서 일한다. 경찰서에 불려 가 일곱 대 따귀를 맞고 오른뺨 실핏줄이 터진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나오는 분수대를 보고 분노하는 인물이다. 검열과에서 삭제된 대사들은 배우들의 입모양으로 다시 살아나고 연극무대에 있는 동호를 보게 된다.
이 에피소드는 김혜순 시인의 <김혜순의 말>에 자세히 나와있다. 당시 시인은 대학 졸업 뒤 출판사에 다녔다. 서울시청 검열과 군인에게 원고를 내고 받아가는 게 신입의 일이었다. 어느 날 교정 보던 책의 번역자의 연락처와 만난 장소를 대라며 경찰은 추궁한다. “이게 까불어?” 욕설과 함께 벼락처럼 몰아친 따귀가 일곱 대였다. 맞으면서 숫자를 세었다. 하숙집에 엎드려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을 썼다는 이야기다.
안내받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다시 기다렸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되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p.69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p.79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거대한 풍선 같은 침묵이 병실의 모서리들을 향해 부풀어오르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트럭이 병원 앞길을 지나가며 목소리가 크고 선명해졌다. p.91
'쇠와 피'는 도청에서 체포돼 모진 고문을 겪은 또 다른 생존자의 이야기다. 은숙처럼 계엄군이 당도하기 전 도청을 나서지 못한 이들은 모진 고문과 동물이하의 대접을 받는다. 검은색 모나미 볼펜을 손가락에 끼우고 뼈가 드러날 만큼 고통을 겪었던 이들, 그 삭막한 시간이 평생토록 남아 삶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교대 복학생인 화자는 식판 하나에 한 줌의 식사를 나눠먹었던 김진수를 회상한다. 교도소를 나간 이후 드문드문 만남이 이어진다. 일그러진 시간을 끝내 견디지 못한 김진수는 자살을 선택한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p.114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135
'밤의 눈동자'는 은숙과 함께 부상자 치료와 시신 염습을 맡았던 선주의 이야기다. 사건으로부터 무려 20년이 지난 2000년대, 그러나 선주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광주에서의 일에 대한 증언을 요청받는다. 이름도 얼굴도 나가지 않고, 혼자 하는 녹음이지만 좀처럼 녹음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70년대 방직공장 여공으로 일하다 겪은 그 무참한 일들이 80년 광주와 연결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니,라고 묻던 성희 언니의 침착한 목소리를 당신은 기억한다. 무슨 권리로 내 이야길 사람들에게 하는 거야,라고 당신이 이를 악물며 물었을 때였다. 이어 대답하던 성희 언니의 차분한 얼굴을 당신은 지난 십년 동안 용서하지 않았다. 나라면 너처럼 숨지 않았을 거야. 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 나 자신을 지키는 일로 남은 인생을 흘려보내진 않았을 거란 말이야. p.161
죽지 마.
죽지 말아요. p.177
'꽃 핀 쪽으로'는 막내 동호를 잃어버린 어머니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사건 전날 밤 둘째와 함께 도청 앞에 도달한 어머니는 '들어가 막내를 데려 오겠다'던 둘째의 팔목을 잡아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자식 둘을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 '동호'는 사망 당시 16살이었던 문재학 군이 실제 모델이라고 한다.
5·18 때 문군은 동호처럼 주검을 임시로 보관했던 상무관과 옛 전남도청을 오가며 희생자 수습을 도왔다.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집에 들어오라”는 동호의 작은형처럼 가족들은 문군을 야단치고 구슬렸지만 끝내 귀가하지 않았다고.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192
에필로그인 '눈 덮인 램프'에서는 작가와 동호의 인연을 그리고 있다. 자료를 모으는 과정과 동호의 형을 찾아가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 든다.
중흥동집에서 작가는 태어나 9살까지 살았다. 그 집에 이사 온 이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동호네다. 담임을 한 건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가르친 학생이었고 작문을 해서 내라고 하면 곧잘 쓰던 애여서 기억이 났다고 한다. 2년 뒤 아버지가 광주에 갔다가 터미널에서 구입한 사진집을 보게 되고 2013년에 이르러 글을 쓸 마음을 먹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p.207
나는 가방을 열였다. 가지고 온 초들은 소년들의 무덤 앞에 차례로 놓았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앉아 불을 붙였다. 기도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묵념하지도 않았다. 초들은 느리게 탔다. 소리없이 일렁이며 주황빛 불꽃 속으로 빨려들어 차츰 우묵해졌다. p.215
카스텔라, 모나미볼펜, 분수대 같이 평범한 단어들이 체한 것처럼 가슴에 막힌 채 내려가지 않았다. 하릴없이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대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소년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제가 가장 인상 깊었다. 기억이다, 양심이다, 의무이다, 공감이라다는 대답이 나왔다. 죽은 자를 통해 산자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혼자일 때는 무력한 약자일 수 있지만 그 한 명 한 명이 모이면 큰 힘이 될 수 있음에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죽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시민군처럼 우리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지만 미미하나마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경험의 동물이고 몸에 새겨진 경험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지는 선거다. 내일은 다른 오늘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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