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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까치

by 자몽커피

"저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어요."

"좋아, 상부의 결정을 기다리기만 하면 돼. 얼마 동안, 너는 이 마을을 떠날 수 없어.

그뿐이야. 이 종이 끝에 서명이나 해."

소년은 조서에 서명을 했다. 거기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적혀 있었다.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소년은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이름은 클라우스(Claus)가 아니다. p.555



Lucas + Claus = 나

40여 개 언어로 번역된, 이름의 철자 순서만이 다른 쌍둥이 형제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처절한 운명이 교차하는 3부작 소설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 이 소설은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K시는 물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쾨세그(Koszeg)이다. 작중 인물인 루카스는 나와 닮은 점이 많다. 내가

열 살 때 전쟁이 끝났다. 나도 어려서 국경을 넘었다. 루카스가 고국에 돌아온 나이가 바로 지금의 내 나이(55세)이다. 클라우스 쪽은 나와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오빠이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함께였다. 나는 오빠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고, 나는 이 소설에서 소년으로 변신했다.

이 소설에서 기술하고자 했던 것은 이별---조국과, 모국어와, 자신의 어린 시절과의 이별---의 아픔이다. 나는 가끔 헝가리에 가지만, 어린 시절의 낯익은 포근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고향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p.668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제목만 들어서는 철학책인가 싶었다. 표지에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되어 있으니. 최근 읽은 김애란 작가의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이 생각났다. 학기 초 가장 곤혹스러웠던 시간이 바로 자기소개였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라는 생각을 했었던 책. 규칙은 간단하다. 자신을 다섯 문장으로 소개한다. 다섯 문장 중 하나는 무조건 거짓말이어야 한다.


에곤실레 self seer 아고타 크리스토프(1935~2011)




에곤 실레의 <self seer>가 그려진 표지부터 이번에 새로 리커버 된 표지까지 세 번째다. 촌스러운 표지로 유명한 까치에서 웬일인가 싶었다. 이 고급미 무엇이냐~

만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건 당연히 처음 읽고 나서 바로 알았고 재독을 한 이유는 그렇게 서로를 찾았던 쌍둥이가 막상 대면을 하고 나니 서로 생깐다? 뭐 이해 못 할 건 없었다. 나도 어떤 물건이 들어오는 과정이 좋지. 막상 갖고 나면 쳐다도 안보는 성격이라.

세 번째는 드디어 독서모임 선정작이다. 연합독서 성격이라 나이도 성별도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하는 게릴라성 모임. 이렇게 신날수가. 역시 이런 책은 함께 읽어야 한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커다란 노트>, <증거>, <세 번째 거짓말>을 간격을 두고 쓴 3부작 연작소설이다. 세 작품이 동시에 번역, 소개가 되면서 이 세편을 묶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소제목도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자전적 소설인 <문맹>을 보면 전쟁으로 헝가리에서 스위스로 망명해, 언어를 잃었던 시절을 문맹이라고 표현한다.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외국어)를 새로 배워 <비밀노트>를 썼다고 하니 간결하면서 투박한 문체가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스위스에 도착하고 5년 후, 나는 프랑스어로 말을 하지만 읽지는 못한다. 나는 다시 문맹이 되었다. 네 살부터 읽을 줄 알았던 내가 말이다. <문맹> p.109



리커버 된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다. 워낙 문장이 단문이어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금세 읽는다. 그만큼 몰입감이 좋고 재미가 있다.

작가가 밝혔듯이 이 책은 전쟁의 참상을 그리는 책이기도 하고 두 쌍둥이형제(원래는 작가와 오빠)의 서로의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배신으로 읽을 수도 있고, 한 가족의 비극으로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희랍어 시간>에서는 남녀의 인칭이 '나'와 '여자'에서 '그'와 '그녀'로 마지막에 '우리'로 확장이 되면서 끝난다면 이 책은 '우리'에서 시작해 개별적인 이름 '루카스', '클라우스'를 거쳐 마지막엔 '나', '그'로 축소가 된다.



*1부 비밀노트 (Le Grand Cahier)


아빠는 종군기자로 전쟁에 나갔고 대도시에 살던 엄마는 쌍둥이들을 시골 할머니 집에 맡긴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상한 외할머니를 상상하면 곤란하다. 가축과 채소밭이 있어 그나마 끼니는 해결할 수 있지만 생필품을 사기 위해 술집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하며 돈을 번다. 쌍둥이들은 혹한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뺨을 때리기도 하고 굶기도 하면서 나름의 '단련'을 한다.

스스로 글을 깨우친 형제는 비밀노트에 작문을 쓰는데 규칙은 단 하나. 반드시 진실만을 적을 것! 진실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에 감정이 들어간 글은 모두 불태워진다.

작품 해설에도 나와 있지만 주인공을 복수(우리)로 한 이유가 감정의 과잉표현이나 주관적 표현을 배제하기 위한 의도를 품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엄마와 아빠가 죽는 장면을 보면 이보다 더 건조할 수가 없다. 인간이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지만 그중 최고는 바로 감정이 아닐까 싶다. 전쟁에서 감정은 일종의 사치일 수도 비효율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많이 나뉘었는데 감정묘사는 절제되어 있는 반면 상황 묘사가 과장되어 있어 불편했다는 시각과 작가가 주입한 감정에 미리 노출될 경우 독자의 상상력과 감상을 막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방식이 더 좋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작가가 의도했던 아니던 잔인한 장면들마다 시각을 붙들고 사고를 계속하게 한 점은 인정한다. 전쟁이기에 가능한 참상들, 감상이 없는 죽음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다음을 보자.



우리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배에서는 창자가 터져 나왔다. 온몸이 피투성이었다. 아기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머리는 폭탄으로 팬 구덩이 속에 늘어져 있었다.

.

.

"무슨 일이 있었니?"

우리가 말했다.

"응, 폭탄이 떨어져서 정원에 구덩이가 생겼어." p.191




아빠는 두 번째 철조망 직전에 쓰러져 있다.

그렇다.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를 앞서 가게 하는 것이다.

마대를 쥐고 앞서 간 발자국을 따라간 다음, 아빠의 축 늘어진 몸뚱이를 밟고, 우리 가운에 하나만 국경을 넘어갔다.

남은 하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p.231





"아무것도 모른다고? 바보 같은 소리! 온갖 궂은 일, 온갖 걱정에 빠져 지내는 게 여자야. 아이들 먹여 살려야지, 부상병들 돌봐야지. 당신들은 일단 전쟁만 끝나면, 모두 다 영웅이 되잖아. 죽었으면 죽어서 영웅, 살아남았으면 살아서 영웅, 부상당했으면 부상당해서 영웅. 전쟁을 발명한 것도 당신들 남자들이고, 이번 전쟁도 당신들의 전쟁이야. 당신들이 원해서 그렇게 한 거야. 개똥같은 영웅들아!" p.130





*2부 타인의 증거(La Preuve)


시간적 배경은 1956년 헝가리 반체제 혁명의 시기. 각자 홀로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한다며 한 명은 국경을 넘고 한 명은 할머니 집에 남는다. 이를 유럽사회가 둘로 쪼개진 측면으로 보는 관점도 흥미롭다. 국경이란 곳이 상황에 따라 적과 아군이 나뉘는 점도 마찬가지다.

국경 경비대 건물의 맞은편에 있는, 도시의 맨 마지막 집에 혼자 남은 아이는 루카스였다. 루카스는 가족들의 죽음에 이어 클라우스의 망명으로 커다란 상실감에 건강까지 잃게 된다.


사제, 서점-문구점 주인 빅토르, 도서관에서 일하는 클라라, 페테르 당 서기관, 불면증 환자 미카엘, 고아원 원장 주디트, 아버지의 아이를 낳은 야스민과 꼽추에 기형인 마티아스 등등 루카스는 이들을 돌보면서 삶의 이유를 찾는다.

3독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루카스는 나름의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사는구나였다. 1부에서 언청이의 엄마를 살해하는 장면이나 전쟁포로에게 빵을 가지고 장난질했던 하녀를 죽이는 장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오늘 모임에서 어르신이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을 말해주셨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이제 아무런 재미가 없고 삶의 의미가 없는 때도 찾아온다. 그런데 저승사자가 찾아오지 않아 죽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이에 따라 이 장면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을 선택했고 그 죽음을 실행해 주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인류애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을.

한 권의 책을 쓰겠다며 빅토르는 누나의 집으로 떠나고 루카스는 빅토르의 서점을 사고 마티아스를 돌본다.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p.362





특히 책 한 권을 끝내 쓰지 못했던 서점 주인 빅토르의 이야기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어찌나 짠하던지.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존재확인'의 도구라는 의견이 많았다. 전쟁이 일어났고 재활원이 폭파가 되면서 루카스는 서류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루카스가 결국 존재했다는 증거는 타인의 기억이 유일하다. 그런데 아무도 기억을 해주지 않는다면 마지막 남은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기록이다. 루카스가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3부까지 읽고 나면 2부의 내용도 모두 거짓이란 게 밝혀진다. 루카스의 현실과 다른 그가 꿈꿨던 일들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읽으니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결국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을 살리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자신의 쌍둥이 형제인 클라우스마저 존재를 부정했으니 루카스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미완성이지만 루카스의 원고를 클라우스가 완성시키면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루카스가 마을에 남아 살고자 했던 삶이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책을 펼치시길. 2부 내용은 여기까지. 루카스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영특한 아이 마티아스의 반전스토리도 포함되어 있다.




*3부 50년간의 고독(Le Troisieme Mensonge)


클라우스가 서술자로 등장해 앞선 이야기들을 다시 뒤흔드는 진술이 이어진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멘붕이 오기 시작한다. 뭐야 앞의 내용이 모두 거짓!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아빠의 불륜이었다니! 3부에 와서 어찌나 허무하던지. 아빠는 안토니아와 바람이 나고 그녀는 이미 배속에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이 사실을 안 엄마가 권총으로 아빠를 죽이고 사고로 루카스도 총에 맞아 불구가 된다.

다친 루카스와 정신이상이 된 엄마가 병원에 있는 상황에서 클라우스는 아빠의 불륜녀인 안토니아와 이복동생 사라와 함께 지낸다. 루카스가 있던 K시에서 클라우스와 잠시 스치듯 지나가기도 하지만 끝내 둘은 알아보지 못한다. 클라우스는 엄마를 돌보기 위해 안토니아의 집을 나온다. 루카스가 있던 재활원에 폭탄이 터지자 k국경 근처의 낯선 할머니에게 입양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쓴 노트가 바로 1부 비밀노트.



어릴 때 사고로 희미한 기억에 의지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 클라우스(실제는 루카스)는 여권이 만료돼 수도 대사관 보호를 받고 있다. 그는 곧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 그가 돌아온 이유는 단 하나! 쌍둥이 형제와 엄마를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마침내 '클라우스 루카스'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시인이자 염세가를 찾게 된다. 클라우스는 결혼도 하지 않는 채 식자공이 되어 지금까지 엄마를 보필하며 살고 있다. 자신이 루카스를 죽였다고 생각한 엄마는 남은 아들 클라우스를 구박한다.



나는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적당한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드라마, 비극, 파국 따위로도 부를 수 있겠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단순히 '그 사건'으로 새겨져 있었다. 거기에 걸맞은 이름은 없었다.

아이들 방은 깨끗했고, 침대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우리를 분명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가장 간절히 기다린 것은 바로 내 형제 루카스였다. p.634





나는 매일 묘지에 간다. 나는 Claus라는 이름이 새겨진 십자가를 바라보며 Lucas라는 이름이 새겨진 다른 십자가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또한 우리 네 사람이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만 돌아가시면, 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기차, 그래, 그건 좋은 생각이다. p.659




50년 만에 찾아온 루카스를 클라우스는 끝내 형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더 웃긴 사실은 그런 클라우스를 루카스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존재가치의 유무는 타인의 기억 속에 내가 있는가? 없는가로 결정지을 수 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데 존재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타인의 기억에 앞서 나의 기억이 더 중요하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클라우스의 두려움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용기 있는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남겨진 루카스의 미완의 원고는 또다시 루카스를 증명하기 위한 숙명이자 원죄가 아닐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들... 반드시 재독을 부르는 책이라는 점에서 작가는 얼마나 행복할까? 삼독을 한 나로서는 이 책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 진실이라고 믿어도, 모두 거짓이라고 믿어도 변치 않는 사실은 전쟁은 여전히 참혹하다는 사실이다. 부모를 부정하고, 이름과 나이를 똑바로 말할 수 없는 세상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 이 책은 전체가 글쓰기의 과정을 보여준 책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글쓰기의 첫 단계는 감정을 배제하고 상황묘사를 간접적으로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은 결국 진실만큼이나 거짓말을 듣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실이 너무 끔찍해 거짓말로 노트를 가득 채웠던 아이 루카스. 그 노트가 루카스란 존재를 증명해준 유일한 증거. 50년간의 고독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글쓰기의 힘에 기대 더 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라는 마지막 질문을 던지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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