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세 장편소설/마디북
윤봉길이 김구의 손목을 보더니, 자기 손목시계를 풀었다.
"선생님 시계는 2위안짜리고, 제 것은 6위안짜리인데 바꾸시지요.
저는 이제 한 시간만 쓰면 그만이니까요."
내민 손목시계를 멍하니 보던 김구가 눈물 맺힌 얼굴로 끄덕였다.
"그럽시다. 내가 그걸 차고 살겠소."
피치 목사는 약속 시간을 정확하게 지켰다. 정차한 검정 시트로엥에 윤봉길이 탔다.
차창 밖으로 뻗은 손을 김구가 맞잡았다. 윤봉길이 김구의 손을 저 밖에서 놓았고,
피치 복사가 가속 페달을 밟았다. p.288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다. 그로부터 22년이 흐른 1931년 중국 상해 임시정부가 이 소설의 배경이다.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상해로 왔지만 그들은 경찰과 밀고자들의 감시를 받았고 자금 전달자들과 조력자들도 체포되거나 사라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인 김구선생이 잠과 밥을 빌어먹어야 할 처지이니 그야말로 임정의 재정상태는 거렁뱅이 수준이었다. 1919년 상해 임정에 발을 들인 안공근의 임무는 일제의 밀정을 찾아 사살하고 내통자를 골목에서 죽이는 일이었다. 안공근은 안중근의 열 살 아래 막냇동생이다.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안공근은 임정을 옮기자고 말한다. 김구는 단번에 거절하는데 그 이유는 상해에 강국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이다. 조계지에 버티고 선 열강들은 힘의 균형을 맞추려 들었고, 임정은 그 사이 어딘가에 디디고 설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그들은 들어줄 상대가 많은 곳에서 독립을 부르짖어야 했다. 외진 곳으로 물러나면 존재감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상해엔 외신기자가 많았고 각국 영사관 행사에 참석해 독립의 필요성을 주창한 김구의 주장이 해외 신문에 실렸기 때문이다.
임정 청사는 프랑스 조계지에 자리했다. 프랑스는 세계 곳곳의 식민지를 잔악하게 통치했지만, 외교 무대에서는 약소국에 온정적 태도를 취했다. 프랑스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위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프랑스가 조선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이나 위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조계지에 일본인이 못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법이 다스리는 프랑스 조계지에서 임정 사람들을 붙잡거나 해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 조계지와 공공 조계지의 경계.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는 일본 경찰과 군인이 함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프랑스 조계지에 자리를 잡았는데, 일본 영사관과의 직선거리는 고작 3.5k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번 소설에서는 1931년부터 1932년까지 국제 정세와 일본의 만행이 그려지며 결국 상해에서의 최후의 날을 맞이하는 임정을 그리고 있다. 위의 지도를 보면 임정과 일본 영사관까지의 거리가 3.5킬로미터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미로같이 복잡한 골목 곳곳에 밀정이 있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1931년의 임정
조선 가정부의 형편은 딱할 지경이었다. 상해에 모인 독립분자들은 노선 차이와 재정 궁핍을 견디지 못해 뿔뿔이 흩어졌고, 남은 건 몇 되지 않았다. 조선가정부의 여러 직책을 거친 이동녕과 김철과 김구 정도가 거의 전부였다. 독립분자들은 몹시 궁핍했는데, 올해 63세인 이동녕은 프랑스 공무부에서 근무하는 엄항섭이라는 자의 집에 얹혀살았고, 김철은 고향에서 형이 보내주는 돈과 산파로 일하는 아내가 번 푼돈으로 겨우 생활하는 모양이었다. 가장 딱한 자는 조선가정부 국무령 김구였는데, 한겨울에도 외투 없이 창샨에 구멍 난 헝겊신을 신고 다닌다 했고, 조선인들 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 먹는 모양이었다. p.64
조선가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가짜 정부라고 비하하여 일본이 쓴 멸칭.
*이들이 이렇게 궁핍한 이유
상해에서 돈을 수령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통장을 개설해 송금 여부를 전보와 전화로 확인받고 이쪽 지점에서 돈을 인출받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우편총국에 가서 우편물에 동봉된 우편환을 제출하고 돈으로 바꿔오는 방법이었다. 두 방법 모두 조선 독립분자들은 쓸 수 없었다. 1910년 이후 일본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편입시키지 않고 있었다. 조선인은 일본 총독의 지배를 받는 자들일 뿐이었고, 일본 정부나 조선총독부 모두 해외 조선인의 법적 지위를 증빙하거나 보장해 주지 않았다. 따라서 타국에 장기 체류중인 조선인들은 신분을 인증할 수 없기에 계좌를 개설하거나 우편환을 찾아올 수 없었다.
1920년 이후 상해 우편총국에는 일본 헌병대가 상주하다시피 했다. 그들은 조선에서 온 모든 우편물에 접근해 국내 송금책과 연락책을 체포했고, 우편환을 현금으로 찾아가는 자들을 잡아들여 조선가정부의 손발을 끊어냈다. p.69
한마디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애매한 신분이라 통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가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이번 예를 들어주고 싶다. 통장개설을 못하니 당연히 돈줄이 막히는 건 인지상정. 인편을 통해 돈을 움직이는 건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고 그 비용 또한 비합리적이다.
임정사람들에게 일본 영감이라고 조롱을 받던 이봉창이 일본 본진으로 파견된다. 1932년 1월 8일 관병식에 맞춰 1931년 12월 17일 고베행 배에 오른다. 목표는 하나! 일본 천황 타도를 위해서.
일본의 침략은 언제나 천황을 위해 행해졌다. 일제의 압제를 타도하려면, 국가 그 자체인 천황을 타도해야만 한다는 게 이봉창과 김구의 뜻이었다. 하지만 의거는 이봉창과 김구가 아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했다. 그건 이봉창 개인이 아닌, 국가의 집행이어야 했다. 김구는 이 일을 국가 대 국가의 일로 만들어야 이봉창의 행위가 공의로운 일이 될 거라 여겼다. p.110
"맞다. 그 사람이 아니라 나다!"
"숨지 않을 테니 점잖게 다뤄달라."
이봉창은 범행을 부인하지 않았고, 남은 한 발의 폭탄으로 자결하려 들지도 않았다. 험악한 손길 사이에서 이봉창은 사납게 흔들렸고 매무새가 흐트러졌다. 이봉창은 저항할 생각과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의 저항은 폭발로 이미 이뤄졌고, 마미탄은 그의 염원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이봉창은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1932년 1월 8일이었다. p.117
의거는 실패로 돌아가고 고문을 버티다 이봉창은 김구가 쓰는 가명 중 하나인 백정선을 발설한다. 모든 정보를 긁어모은 상해 헌병대의 최우선 과제는 단 하나.
프랑스는 임정을 보호할 수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내놓는다. 일본은 임정을 옭아매기 전에 먼저 혐중 시위를 일으킨다. 만주와의 전쟁을 치르던 일본은 열강의 눈을 상해로 모으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그 총책임자로 관동군 다나카 류키치 소좌가 파견된다.
다나카 소좌는 청나라 공주지만 밀정노릇을 하는 가와시마 요시코, 가부키 배우인 오무라 마사미치, 연극 극단 막내인 마치다 료타, 타고난 거짓말쟁이 아오이 다에코 등을 불러 원팀을 꾸린다.
가와시마 일행은 일본의 유력자들과 젊은이들을 선동해 연일 시위를 일으킨다. 자국민인 승려를 죽이면서까지 일을 크게 만든 일본은 드디어 중국과 전쟁을 일으킨다.
*일본이 임정이 아닌 혐중시위를 먼저 일으킨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상해에 주둔하고 있는 중국군 병력을 철수시키기 위해서다.
미치지 않고서야 중국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만주도 뺏긴 판국에 상해까지 뺏길 수 없었던 중국은 바로 전쟁에 들어가고 당연히 임정의 입장은 중국 이겨라~
다나카가 관동군에 복무하며 배웠던 건 이런 것이었다.
전쟁은 명분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명분이 올바를 필요는 없다.
그럴듯하게 명분을 꾸며라. 전쟁 따윈 이기면 그만이다. p.141
이봉창의 의거는 실패했지만 상해 우편 총국에 우편물이 쇄도한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조선인들이 보낸 편지들이었다. 우편환이 들어있는 격려편지였는데 그 금액은 제각각이었다. 전쟁이 벌어져 일본 헌병대 인원이 부족한 와중에도 우편총국의 감시는 여전해 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중국이 임정에게 손을 내민다. 이봉창의 의거에 감동한 중국은 군수품 지원을 약속한다.
1932년 2월 일본은 창춘에서 중국인 매국노들을 동원해 신국가 건설회의를 조직하도록 일을 꾸민다. 신국가 건설회의는 만주국 설립을 추진하고는 푸이를 황제로 추대했다. 훗날 일본은 푸이를 신징에 보내 허수아비 국가 만주국 황제에 등극시킨다.
중국의 지원을 받은 임정은 투트랙을 계획한다. 왜놈들의 지휘소 역할을 하는 군함 이즈모를 폭침할 것, 상해 비행장에 설치될 탄약고를 폭발할 것.
<제 3장 무너지는 벼랑 편>은 정말 긴장감이 최고조다. 이즈모폭발을 기획하는 임정팀과 김구를 잡겠다는 다나카팀의 장면이 실시간 오버랩되면서 나의 심장도 터질 뻔했다. 한 순간의 방심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수뢰를 집접 보겠다는 김구선생의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그러다 얼굴이 노출되는 장면에서는 정말 어서 피해요!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김구를 향해 총을 쏘는 장면에서 아~ 일본 놈들도 밉지만 밀정들 정말 치가 떨리는 순간이다. 뮤지컬 공연이 확정이라는데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
다나카 쪽도 김구를 코앞에서 놓치고 만다. 밀정 황병립, 한정우, 추원창을 이용해 김구를 잡으려는 일본의 함정과, 밀정 잡는 안공근의 수싸움이 궁금하다면 당장 이 책을 펼치시길.
황푸짱에 정박해 있는 이즈모군함을 날려버렸어야 했는데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수뢰가 폭발해 버려 실패한다. 왜놈들의 탄약고도 날려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이 일도 엎어지고 만다. 전세는 중국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결국 중국은 상해에서 군대를 빼게 된다. 임정이 지금껏 버텼던 건, 프랑스 정부의 비호와 중국 정부의 도움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이 둘 모두를 잃게 된 것이다.
"왜놈들은 만주에서 시선을 떼게 만들려고 일부러 상해에 불을 지른 거야."
임정 사람들은 조각조각 가져온 정보를 갇힌 방 안에서 듣기만 했던 김구는, 놀라운 직관과 통찰력으로 진상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일본은 올드시티와 자베이의 중국 통치를 인정하되, 군대는 상해 바깥으로 물리라고 합니다. 중국군은 이를 받아들일 예정입니다. 군대 없는 중국 땅이 되는 셈이지요. p.266
기어코 상해 임정 최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상해 임정 청사의 문지기가 소망이었던 김구는 국무령으로서 마지막 지령을 내린다. 이동녕, 항저우에 새 임시정부 청사를 수배할 것. 최흥식, 유상근, 만주 다롄으로 가서 일본 고위층을 처단할 것, 이덕주, 유진만, 조선으로 가 조선 총독부를 암살할 것.
이분들의 이름을 일일이 적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기억하고 있노라고 말이다.
작가도 밝혔듯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을 추리기 위해 버려진 이름들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1932년 4월 29일 훙커우 공원, 상해점령 축하식에 참석하러 온 일본 수괴들을 향해 물통모양 폭탄을 던지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마지막으로 이 책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위에 열거된 수많은 인물들의 마지막 여정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생각했다.
벽에 걸린 커다란 태극기 앞에서 선언문이 적힌 패를 목에 걸고 권총과 폭탄을 들고 사진을 찍는 열사들.
그 순수한 미소에 다시 한번 울컥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어제 광복절 전야제를 보면서 이렇게 축제처럼 즐길 수 있다니 진짜 이게 보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때마다 나라를 위해 애써준 이름없는 모든 범부들과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AI로 복원한 독립운동가분들이 떠올랐을 때 그 감격이야 뭐라 말할까!
대한이 살았다. 계엄 때 모두 한 마음으로 국회에 모여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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