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여자에게 애도기간 따위는 사치다
30대 후반 여자에게 애도기간 따위는 사치다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속상해서 당분간 소개팅 안 하고 혼자 지내려고요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안타깝다. 30대 후반 여자에게 애도기간 따위는 사치다. 30대 중반 이후의 여자에게 장기 연애의 끝은 후유증이 심하다. 내가 노처녀들의 장기연애를 극구 말리는 이유다. 여기서 장기 연애란 6개월이 넘어가는 연애를 뜻한다. 30대 중반 이상의 남녀가 연애를 한다면 교제 기간 최소 2-3개월부터는 결혼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연애기간이 6개월 이상이 되었는데 남성이 결혼 의사를 내비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헤어져야 한다. 철저하게 여자 기준으로 잡은 기간이다. 왜냐하면 여자의 시간은 가임기라는 걸림돌 때문에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이별 바로 다음 날 소개팅
썸과 교제를 합한 2개월의 짧은 만남이 막을 내렸다. 어제 헤어졌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침대에 박혀서 유튜브나 보고 싶었다. 늘 그렇듯 어제가 지나갔으면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도록 오늘의 스케줄이 세팅이 되어있다. 인생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언밀히 말하자면 내가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말이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소개팅 시간이 다가와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한껏 꾸미고 꾸역꾸역 나갔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나기 전부터 좋은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내 느낌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힘들어도 이번 약속을 파투 낼 수는 없었다.
약속시간보다 10분 늦어 서둘러 들어갔다. 레스토랑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아 들어가서 본 첫 장면은 소개팅남의 앉아있는 뒷모습이었다. 생각보다 풍채가 좋고 어깨가 넓었다. 앞모습이 궁금할 만큼 뒷모습이 순하고 듬직해 보였다.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그의 앞모습을 보며 인사했다. 나를 보고 반기며 화색이 도는 그의 얼굴을 봤다.
한마디로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계속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살짝 앳되어 보이는데 어딘가 모르게 아저씨 아우라가 난다. 헤어스타일은 5:5 가르마를 탄 단발머리에 마치 멍이 든 것처럼 다크서클이 눈 아래부터 토실한 볼까지 시퍼렇게 퍼져있다. 처음 보는 캐릭터다. 요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 같다. 낯설었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애써 표정관리를 했다.
나: 키가 되게 크신 것 같아요.
그: 아 네 제가 키가 187cm인데요 앉아있는 키가 좀 큽니다. 허허허
나:...
넉살 좋게 웃는다. 앉아있는 키가 크다니 겸손함인가 싶었다. 대화하며 나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서 단발머리로 간다. 대체 머리는 왜 길렀을까? 거슬린다. 계속 싱글벙글 웃는 그의 모습이 다시 봐도 영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 교수라고 소개 들었어요.
그: 아 저는 교수는 아니고 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강의한 적 있고요.
‘뭐지. 교수가 아니라고?’ 순간 당혹스러웠다. 어쨌거나 나는 관심 없는 티를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나며 식사를 했다. 식사를 다 마칠 때 즈음 그가 내게 물었다. ‘우리 이야기 정말 잘 통하지 않나요? 2차로 다른 곳 갈래요?’ 우리가 동갑에 자라온 환경도 비슷해서 그런지 대화 차제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요.’라고 대답했다.
앞으로 성큼 가서 계산하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풍채가 좋아서 듬직한 맛은 있다. 계산 후 엘리베이터에 탔고 밀폐된 공간에서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나의 시선은 자연스례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우리 둘의 모습으로 갔다. 롱코트를 입은 그는 키가 정말 커서 큰 나무 같았고 그의 풍채가 나를 아담하고 가냘픈 존재로 만들어줬다. 만나기 전에는 동갑이라는 이야기에 나보다 어려 보이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풍채 덕분에 아저씨 느낌이 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나보다 어린 느낌이 나는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2차로 근처 분위기 좋은 이자까야로 갔다. 소개팅 장소는 두 군대 모두 꽤 센스 있는 선택이었다. 모두 내가 가본 곳이어서 새롭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되는 장소를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 이 사람이 평범하지 않게 느껴졌다. 2차에서는 와인 한잔씩 하면서 꽤 긴 대화를 했고 어느덧 밤이 깊어서 우리 둘 다 일어났다.
나: 2차는 제가 낼게요.
그: 아녜요. 제가 낼게요.
1차와 2차 모두 가격이 꽤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2차만큼은 내가 계산하겠다고 우겼으나 극구 사양하더니 그가 계산을 했다. 의아하면서도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감사했다. 이 남자 계산을 마치더니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큰 몸을 숙여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 씩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1차 2차 모두 제가 살게요. 더치페이하는 남자들은 다 혼나야 된다니까.
순간 묘한 감동이 느껴졌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일단 성격이 너무 마음에 든다. 방금 멘트 좀 멋있었다. 내일 괜찮으면 잠깐 커피라도 한잔 하지 않겠냐고 그가 내게 물어본다. 일단 다음 약속은 확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