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귄 지 2주 만에 결혼 확정

뭐 부터 해야 할까

by 자몽까는언니
나중에 결혼하면
어디서 하고 싶어?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그가 내게 물었던 질문이다. 1초의 망설임 없이 나는 ‘성당’이라고 답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성당 결혼식은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들의 클래식한 웨딩을 연상시켰고 무엇보다 금액부담이 적어 현실적으로 적절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여자들과 달리 나는 결혼식이나 웨딩드레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없었다. 마흔을 앞둔 마당에 누구랑 결혼하는지가 중요하지 어디서 하는지가 중요하겠는가.


남자친구: 의외다. 이미지만 보았을 때는 왠지 호텔같이 화려한 곳에서 하고 싶어 할 것 같은데.

나: 나는 결혼식에 대한 환상 없어. 다이아도 필요 없고 웨딩드레스도 굳이 비싼 거 입어야 하나 싶고.


대답을 하면서 내가 꽤나 반전 매력 있는 여자로 비치는 것 같아 내심 으쓱했다.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 호텔 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결혼이란 것을 처음으로 꿈꾸었던 스무 살 무렵, 이담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최고급 호텔에서 화려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자각하고 그 로망은 내 마음속에서 지우고 애써 외면하며 잊은 지 오래였지만.



사귄 지 2주 만에 결혼 확정
이제 뭐부터 해야 하지?


사귄 지 2주 만에 결혼이 확정되고 나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뭐부터 해야 하지?’였다. 4월 중순이었는데 같은 해 가을에 식을 올리자는 합의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대략적인 시기만 정했을 뿐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결혼 날짜가 정해져야 거기에 맞춰서 모든 일이 진행될 것 같았다. 택일이 중요한 사람들은 결혼 날짜를 먼저 정하고 그날에 예약이 가능한 식장을 선택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식을 올리는 장소가 날짜보다 더 중요했다. 우선 우리가 원하는 식장을 고르고 거기에서 가능한 날을 고르면, 바로 그날이 우리의 D-day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베뉴투어는 어디부터 가야 하는 걸까?


나: 신라호텔에 가서 상담받아볼까?

남자친구: 그래. 근데 내 기억으로는 호텔에서 할 생각 없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애?

나: 아~응. 근데 상담은 받아볼 수 있잖아?(웃음)


왜 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첫 베뉴 투어로 신라호텔에 가보고 싶었다. 꼭 거기서 안 하더라도 상담은 받아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먹지도 못할 감 찔러나 보자란 마음이었다. 다행히 남자친구가 흔쾌히 가자고 해서 우리의 첫 베뉴투어는 신라호텔이 되었다.

처음 상담을 받았던 그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모든 직원들이 나에게 ‘신부님’이라고 부르시는데 어찌나 오글거리던지. 지배인님이 우리 커플을 환대하며 무척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셨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고급스러운 호텔 서비스와 분위기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상담만 받아보려고 방문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과잉친절을 받아도 되나 싶어 몸 둘 바를 몰랐다. 상담 내내 제공해 주는 다과를 먹으며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니 벌써부터 계약한 것 마냥 설레었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상담받을 때만 해도 나중에 우리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치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배인님은 PPT로 야외웨딩과 실내웨딩 모두에 대한 설명을 꽤 자세히 해주셨다. 상담 시기로부터 6-7개월 뒤인 9월과 10월은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었다. 그렇다면 11월이나 12월로 미뤄야 하는데 우리는 11월 이후로 결혼이 미뤄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이유인즉 하루라도 빨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내 입장에서는 나이도 한몫했다. 어차피 정해진 결혼,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선택지는 시기를 많이 앞당긴 8월이었다.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름은 결혼시장에서 비수기라 예약이 가능한 날짜가 조금 있었다. 우리의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가장 늦은 8월 예식으로 견적서를 부탁드렸다. 지배인님은 7월과 8월에 가능한 날짜 리스트를 뽑아주셨다.


운명의 장소를 발견하다

지배인님의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소 투어를 돌기 시작했다. 상담실에서 걸어 나와 실제 결혼식 장소 투어를 하니 정말로 예비신부가 된 기분이 들었다. 걸어 다니며 설명을 듣던 도중 나의 시선을 고정시킨 곳이 있었다.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정원이 슬로 모션으로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냥 정원이 아닌 한옥이 있는 야외 정원이었다. 그 순간 지배인님의 말이 환청처럼 울리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발이 얼음처럼 그 자리에 멈췄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요정들이 잔치를 벌이는 천국 같았다.

나: 여기는 무엇을 하는 장소인가요?

지배인님: 야외 웨딩장소인 영빈관입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식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은 하나의 사진처럼 남아 이후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게 되었다.



장소를 둘러보고 견적서까지 받으니 우리는 실제로 이곳에서 결혼을 하는 것 마냥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8월이면 한창 더울 때인데 하객들이 더위를 먹으면 안 되니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홀에서 무조건 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고 서운한 감정이 묘하게 들었다. 그의 말대로 8월에 야외에서 하는 웨딩은 하객들에게 민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이 백번 옳아서 겉으로는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나는 이전에 야외 웨딩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었다. 야외 웨딩이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막상 결혼이 결정되고 나서 왜 갑자기 야외 웨딩이 몹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나도 모르겠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했다.

다행히 남자친구도 나 만큼 신라호텔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추가적으로 웨딩홀을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느냐며 여기서 진행하는 것이 어떠한지 내게 물어보았다. 오히려 그가 나보다 더 좋아해 줘서 내심 고마웠다. 문제는 우리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요즘 좋은 예식장도 많은데 굳이 거품이 잔뜩 들어간 비싼 호텔예식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다른 예식장들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좋은 예식장에서 상담을 받아서 그런지 다른 곳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호텔에서는 합리적인 견적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호텔 웨딩투어를 돌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어 투어를 예약하고 그와 동시에 웨딩플래너 섭외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서른여덟에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아버지께 정식 소개해드리다

베뉴 투어와 동시에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먼저 나는 우리 부모님과 그와의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남자친구를 정식으로 부모님께 소개하는 것이 처음이라 무척 긴장됐다. 참고로 아버지는 이전에 내가 만났던 이성을 모두 탐탁지 않아 하셨기 때문에 내심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남자친구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이렇게 흡족해하시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원래 말 수가 적으신데 그날따라 말씀이 많으셨다. 룸에서 식사를 했는데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아버지께서는 식장을 잡는 두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다. 첫째는 교통이 편할 것, 둘째는 예식비용은 일정금액 이하로 할 것이었다. 식장 얘기를 하시는 것을 보니 내 생각보다 빠르게 결혼 승낙을 받은 셈이다.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예비 신랑에게 한 마디 하셨다.

‘인상이 좋네.’


현실적으로 식장을 알아보기 시작하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예산과 조건을 생각하며 예식장을 잡으려고 생각하니 원하는 식장을 고르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결국 예전에 나의 계획대로 성당 예식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성당 예식은 확실히 비용 부담이 적었다.

식장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을 찍었을 때 예쁘게 나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히는 명동성당과 약현성당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검색해 보니 두 곳은 모두 내가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가 이미 예약 마감되어 있었다. 씁쓸했다. 웨딩홀을 알아봐야 하나? 이제까지 내 삶이 그래왔듯 결혼식까지 부모님이 원하는 스타일로 진행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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