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장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
오래 사귄 커플도 양가 상견례 혹은 결혼준비 과정에서 트러블이 생겨서 결국 파혼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결혼이 확정되었더라도 식장 들어갈 때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혼하고 아이가 있어도 이혼하는 마당에 하물며 결혼 준비 과정은 오죽하겠는가. 서로의 현명한 입장 조율은 원만하게 결혼으로 골인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관문이다.
남자친구와 첫 갈등
명동성당과 약현성당이 아닌 다른 성당에서는 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아버지께서 추천하신 웨딩홀에 방문했다. 그곳의 지배인님은 과로한 업무에 시달린 것처럼 피로해 보였고 우리 커플을 기계적으로 상담해 주었다. 나름 프리미엄 웨딩홀인데도 불구하고 이전에 여러 호텔들에서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상담을 해서 그런지 무언가 정이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꼽은 두 가지 조건인 교통이 편한 장소였고 예산 또한 맞았기 때문에 우리는 상담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 예약금을 걸기로 했다. 내키지 않았다. 프리미엄 웨딩홀이었지만 이미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서 그런지 무언가 아쉬웠다. ‘현명한 예비부부는 예식 비용을 아껴서 집을 장만하는 데에 보태서 쓴다.’를 스스로 상기시키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침대에 눕는 순간 문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비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성당에서 결혼해야 할 것 같아.
웨딩홀 예약금 입금을 미루고 명동성당과 약현성당 외에 다른 성당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워낙 촉박해서 새벽에 잠을 자지 못 자고 검색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우리는 모두 지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성당을 찾기 위해 알아보던 도중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당 예식은 사진업체와 영상업체를 내가 원하는 업체로 지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폰 스냅은 두 말할 것도 없었다. 무조건 성당에서 지정해 주는 업체만 이용해야만 했다. 예전에 친한 언니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원래 두 곳의 사진 업체가 오기로 합의가 되어있었는데 그중 한 업체가 당일 연락도 없이 펑크를 낸 것이다. 결국 한 개 업체에서 사진을 찍어줬는데 모두 같은 각도에서 연사로 찍어주는 바람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하나도 없어 속상했다는 후일담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성당은 업체 선정 시 신자들이 운영하는 업체를 지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성당이 이어주는 업체들의 실력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성당에 문의해보았더니 안타깝게도 지정 업체 외에 아예 입장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나: 아무래도 성당에서 진행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예랑: 또 바뀌는 거야?
나: 원래 신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뀐대. 결혼식은 신부가 주인공이니까 이해해 줘.
그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 속상했다. 연애기간이 워낙 짧아서 처음 보는 예비 신랑의 부정적인 반응에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파왔다. 올 초에 내가 했던 굳은 결심이 생각났다. 바로 ‘무조건 나만 생각하면서 살자. 나에게 제일 좋은 것만 해주자. 남을 배려하기 이전에 내가 원하는 거에 집중하자’는 다짐이었다.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가 원하는 거, 신랑이 원하는 거는 모두 잊어버리자. 비용도 생각하지 말고 더운 날씨도 생각하지 말자. 오로지 내가 원하는 것만 생각했다. 나는 야외 웨딩이 꼭 하고 싶었다. 야외웨딩을 한다면 꼭 영빈관에서 하고 싶었다. 영빈관에서 결혼한다면 영원히 내 기억 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먼 훗날 생을 마감하며 눈을 감을 때 나의 결혼식을 떠올리며 ‘그때 참 아름다웠지.’라고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내 과거 기억 속에 꼽을 만한 행복한 추억의 장면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내가 나에게 꼭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화려하게 말이다. 나는 마음먹기까지가 어렵지 한번 마음먹으면 하는 사람이다. 우선 가장 어려운 관문인 부모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어머니는 호텔 결혼식에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힘을 합쳐 결국 어렵게 아버지의 허락을 이끌어냈다.
결혼식은 신부가 주인공이다.
간절히 원하는 바는 절대 양보하지 말아라.
부모님 설득은 성공했으니 이제 신랑을 설득할 차례가 왔다. 다행히 남자친구는 신라호텔에서 하는 것을 찬성할 것 같았지만 더운 것을 워낙 참지 못하기 때문에 에어컨이 없는 여름 야외 웨딩은 결사반대 할 게 뻔했다. 나도 기호가 있는 사람인데 그동안 왜 부모님이 원하는 거 신랑이 원하는 것에 부합하는 조건만 생각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살다 보니 위법이 아닌 이상 원하는 거 앞에서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신랑을 설득할까 고민하다가 결혼을 꼭 8월에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신라호텔 지배인님에게 받은 견적서에 예약 가능한 날짜를 보니 7월이 리스트에 있었다. 1달 반을 당겨서 7월 초에 예식을 올리면 무더위는 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안다. 8월 말도 아주 급하게 하는 결혼인데 7월 초로 예식을 당기면 미친 스케줄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나는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이다.
처음 내 말을 들은 그는 웃었다. 당시 5월 초였는데 7월 초 결혼은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더위를 많이 타고 무엇보다 하객들에게 민폐라 여름에 야외웨딩은 하지 않는 것으로 이전에 이미 이야기가 다 되었던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당시에 나는 그를 배려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원하는 것은 숨기고 나도 모르게 알겠다고 대답했던 거였다고 말이다. 그동안 살면서 미움받기 싫어서 내가 주변에 맞춰주려고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을 앞에서 바로바로 말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고 말했다. 고치려고 많이 노력 중이고 그래서 이번만큼은 용기 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말을 모두 들은 남자친구는 그동안 내가 그를 배려해서 그의 말에 동의한 것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런 속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이어서 ‘그것이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거라면 좋다’고 대답해 주었다. 나는 신이 나서 당장 신라호텔 담당 지배인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우리가 원하는 날짜가 아직 예약이 되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렇게 7월 7일 그림 같은 영빈관에서 우리의 야외웨딩이 진행되는 것으로 확정이 되었다. 행운의 숫자 7이 두 개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