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 없이 본격 결혼 준비

99일 만에 결혼하기 프로젝트

by 자몽까는언니
결혼 2개월 전

플래너 없이 결혼을 준비할 생각은 없었다. 많은 신부들이 플래너의 도움을 받으며 웨딩을 준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친한 언니의 지인이자 10년 차 베타랑 플래너를 소개받아 첫 통화를 하게 됐다.


플래너: 안녕하세요. **소개로 연락드렸습니다. 7월에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들었어요. 스드메 예산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나요?

나: 안녕하세요.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드레스 예산은 200-300만 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플래너: 아. 네애…. 근데 영. 빈. 관. 에서 결혼하신다고 하셨잖아요?

나: 네.

플래너: 그럼 그….. 장~소~의~~ 격에.. 맞~는 드레스를 입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당황)

나: 제가 드레스 욕심이 별로 없어서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고..


순간 기분 나쁘고 창피하면서 약간의 모멸감까지 느꼈다. 워낙 급하게 일정이 잡혀 웨딩드레스 시세에 대해 알아볼 겨를도 없었고 과거에는 웨딩드레스에 관심이 전혀 없어서 무지했다. 물론 사전지식이 없이 플래너와 전화를 한 나의 잘못도 있겠지만 그래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다. 대체 플래너라는 직업이 왜 있는 것인가. 서투른 예비 신부들에게 적절한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것이 플래너의 역할이 아닌가? 뭣도 모르는 사람 취급을 당한 것 같았다.


이후 전화로 대화를 몇 번 나눠보니 나와는 결이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대화가 불편했다. 계약 전부터 불편한데 앞으로 같이 결혼 준비를 하게 된다면 번번이 플래너의 눈치를 보게 될 것 같아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인소개라 그녀와의 미팅을 취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다른 플래너를 알아보기에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여러모로 난감했다. 결국 플래너와 미팅 일정을 잡기는 했지만 그녀가 바쁜 관계로 무려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직접 웨딩드레스와 촬영스튜디오 업체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드레스부터 직접 알아보기 시작

드레스에 대한 로망이 없었고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드레스 예산을 대략 200만 원 내외로 생각하고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패션의 완성은 얼굴과 몸매라고 생각했고 드레스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내 체형의 강점이 골반이라서 이를 부각해 줄 머메이드 실루엣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화려한 비즈가 달려있으면 좋겠는데 뻔한 머메이드 실루엣이 아닌 약간의 차별성이 가미된 드레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패션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레스는 정말 또 다른 세계였다. 아무리 보아도 드레스가 비슷비슷해 보이고 다 거기에서 거기인 것 같고 잘 모르겠는 것이다. 게다가 200만 원에 예산을 맞추고 검색하니 방금 통화했던 그 플래너의 말대로 드레스의 퀄리티가 생각보다 많이 떨어졌다. 조금 괜찮다 싶어서 브랜드를 알아보면 초고가의 프리미엄 드레스였다.



어쩌다 프리미엄 웨딩샵 드레스 투어

고민하던 찰나에 아버지 지인이 웨딩 사업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했고 아버지께서 바로 지인께 전화를 걸어주셨다. 하늘의 도우심인지 아버지의 지인께서 운영하는 드레스샵은 웨딩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업체였다. 드레스에 대해 무지한 나도 들어본 업체이니 말 다한 것이다. 워낙 고가의 드레스여서 이곳의 드레스를 입어본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업체에 심지어 대표님과 바로 미팅을 단번에 잡다니 엄청난 행운이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예비 신랑과 함께 웨딩드레스샵에 방문했던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난생처음 웨딩드레스를 입어본다는 설렘과 동시에 내게 드레스가 안 어울리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청담동 노른자위 자리에 위치한 드레스 샵은 입구부터 고급스러워서 그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순백색으로 꾸며져 있는 내부 인테리어와 영롱한 드레스들이 사방에 걸려있는데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 같았다. ‘저 드레스를 진정 내가 입게 되는 걸까? 안 어울리면 어떡하지? 남자친구 앞에 보여주기 창피하면 어떡하지?’ 여러 생각들로 무척 긴장됐다.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아 첫 드레스를 입어보았다. ‘신부님 나오십니다’라는 구호와 함께 커튼이 활짝 열리는데 무방비 상태로 신랑 앞에 섰을 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정말 못생겨 보였다. 진심으로 탈의실 밖으로 나오기 싫었다. 신랑은 내 모습을 보고 너무 예쁘다고 놀라면서 사진을 찍어줬지만, 내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리액션을 과하게 해주는 것 같아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드레스를 입는다고 나름 열심히 화장을 해서 갔는데 내가 한 화장은 드레스와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화장법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드레스를 입고 있던 도중 웨딩드레스 샵 대표님이 들어오셨다. 매우 친절하셨는데 상당한 포스에 기가 눌렸다. 상담을 할 때 드레스를 총 3벌 입어보았다. 내가 드레스를 입고 나올 때마다 대표님은 해당 드레스들이 얼마나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대단한 작품 들인 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안타깝게도 그 귀한 설명들은 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한마디로 구렸다.


어쩌다가 프리미엄 웨딩 업체들과 줄줄이 계약

미팅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드레스 투어 당일날 계약을 하면 현장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 소개 덕분에 국내 최고 프리미엄 웨딩드레스샵에서 바로 미팅을 잡고 드레스를 입어본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그렇지만 현장 할인을 받더라도 내가 생각한 예산을 훌쩍 뛰어넘어버렸고 그 고가의 드레스들이 나에게 어울리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혼돈에 빠졌다.

남자친구는 대표님께서 신경을 많이 써주시고 아버지 지인이니 믿고 계약을 하자고 했다. 비용이 부담된다면 본인이 대부분의 비용을 지불할 테니 이왕 방문한 김에 당일 계약을 하자고 나를 설득했다. 마음이 동하지 않았지만 남자친구에게 또 한 번 감동하며 그의 말대로 계약을 하기로 했다.


아직 웨딩 플래너와 계약 전이라는 우리의 말에 대표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촬영 스튜디오, 헤어메이크업 샵, 플라워, 그리고 신랑 턱시도 대여 샵등 각 업체별 대표님들과 이사님들께 전화를 거셨다. 모두 프리미엄 업체들이기도 했고 예약이 힘든 곳들이었는데 대표님 찬스로 바로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로 스케줄을 예약해 주셨다. 드레스 샵 대표님께서 웨딩 플래너 역할을 직접 해 주신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첫 드레스 투어에서 스드메 업체가 순식간에 모두 정해졌다. 감사했지만 어쩌다가 계획에도 없던 프리미엄 웨딩 업체들과 줄줄이 계약을 하고 있었다.


산더미 같이 불어나버린 결혼식 예산

이 모든 게 영빈관에서 시작되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식을 올리는 장소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비용은 아끼려고 했지만 막상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장소가 좋으니 거기에 걸맞게 모든 업체들을 프리미엄으로 해야 되는 것이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지?

침대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드레스 투어를 다녀온 날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전에 나는 분명 결혼하는 상대가 중요하지 그 외의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예식 장소부터 드레스까지 모두 프리미엄으로 계약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신랑에게 상당히 고마우면서 동시에 무척 미안했다. 예비신랑은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며 아버님 소개로 최고 좋은 업체들을 연결받고 원하는 날짜에 모두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말해주었다. 드레스는 이왕 계약한 거 예쁜 거 많이 입어보고 공주놀이 제대로 하라고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예비 신랑 말이 맞았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대한민국 최고의 웨딩 업체들에서 결혼을 진행하게 되어 영광이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일이 잘 풀렸던 적이 있을 정도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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