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은 억울합니다
내가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 내가 겪어온 시대의 영향도 있을 것이므로, 이를 먼저 밝히고 글을 시작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짧게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1981년과 1996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이라 정의당한 세대이며, 현재 MZ라 정의당한 세대의 친구들과 함께 학업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나는 한국의 교육산업 카테고리 내에서 일을 했었고, 네덜란드로 유학 온 지금도 (의도치 않게) 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알바일 또한 병행 중이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하는 일은 담임 선생님들이 점심을 먹는 한 시간 동안 아이들이 점심을 잘 먹는지 확인하고, 식사예절등을 가르치는, 일명 점심시간 감독관(Lunch superviser)이라 칭하는 일이다. 매주 담당하는 학년은 조금씩 달라지는데, 가장 어린 만 4~5세 반을 꽤 오랫동안 담당하는 중이다. 17명이라는 꽤나 적지 않은 숫자를 혼자 컨트롤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이 세상 애교 같지 않은 아이들의 귀여움에 출근길은 꽤나 즐겁다. 담당 교실에 들어서면, 입구를 넘기도 전에 내 이름을 부르며 '도도도'거리며 뛰어와 내 품에 쏙 안기는 이 귀염둥이들 덕분에, 세상 온갖 시름이 다 잊히는 기분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국제초등학교로, 교직원과 학생들의 국적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내가 맡은 반의 담임선생님은 인도네시아 국적을 가지신 분으로,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내 시각으로 바라봐도 아이들에게 엄격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물론 네덜란드 내에서 체벌이 국가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회초리는 들지 않는다. 다만, '이게 4~5세들을 훈육하는 게 맞다'싶을 정도로 훈육의 정도가 꽤나 센 편이다.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말 한마디 나눌 수 없고, 도움을 요청할 때는 반드시 손을 들고 기다려야만 한다. (말로 부르는 것 또한 금지!) 하지만 도움요청을 해도,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바라봐(정말 하염없이 바라만 보는) 주실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진 않는다. (나도 한 번 아이 옷 입는 것 몰래 도와주다가 들켜서 혼난 적이 있다 ㅠ)
한창 모든 것이 신기하고, 호기심을 입 밖으로 내뱉어야만 할 나이인 만 4~5세 아이들에게(물론 내게도) 이 인도네시아 담임선생님은 확실히 쉬운 분은 아니다. 특히 점심시간엔, 오로지 밥 먹는 데만 집중하도록 자신의 팔과 입 이외의 신체사용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데(말하기 금지, 일어서기 금지 등등), 학부모들이 이렇게 아이들이 밥 먹는 동안 말 한마디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게 훈육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 내심 궁금해질 정도로 이 규칙은 아주 엄격하게 적용된다.
때는 바야흐로 담임 선생님의 생일날. 드디어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날이 찾아왔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학부모 대표였다. 그녀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모두 몰래 담임 선생님의 생일을 준비하고 있다며 내게 비밀스럽게 협조를 부탁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교실 한쪽에 분리되어 있는 방에서 몰래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간이생일상을 차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알겠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사실 학부모들이 교육의 현장을 목격하고 뒷목을 잡는 건 아닐지 내심 걱정과 호기심이 몰려왔다.
드디어 예정됐던 생일파티 날. 담임 선생님은 여전한 엄격함을 시전 했고, 하필이면 해당 학부모대표의 아이가 이날 유독 혼이 많이 난 날이었다.
‘아이 엄마가 선생님이랑 싸우면 어떡하나’라는 내 최악의 시나리오와는 달리, 학부모는 '어떻게 우리 아이를 이렇게 대할 수 있어?'공격 시전은 커녕(실제 속마음은 알 수 없으나) 오히려 자신의 아이가 집에서도 얌전해졌다며, 선생님의 노고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감사했다.
다소 허무한 결말이었지만, 문득,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해 가며 사회적인 아이로 만들어 주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일은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학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고객님 대하듯 해야 하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 너무 이미 익숙해진 나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하면서 새롭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체벌금지가 실시되기 전에 필수교육과정을 마친 세대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체벌을 받으며 사회화가 무언지를 몸소(!) 깨달아야만 했다. 이후 당시 선생님 세대들의 과대처벌이 사회적으로 문제화되기 시작하면서, 그에 따른 체벌금지가 실시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체벌을 받고 자라온 우리 세대가 사회에 진출했을 때, 반대로 우리는 사회인으로서 체벌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훈육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체벌을 받으며 자라온 우리 세대에게는 다소 혼란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도 나는 교과서 한 개를 빼먹고 온 이유로 선생님에게 두꺼운 나무로 된 '사랑의 매'로 엎드려 뻗힌 상태에서 엉덩이를 맞아야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지금의 한국 학생들은 교과서를 통째로 들고 오지 않아도 매 맞을 걱정은 안 해도 될 테니..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한편으로는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세대마다 자신만의 고충이 있겠지만, 오늘은 왠지 ‘1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