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 어플 사건
5년 전쯤, 처음 네덜란드에 와서 학교 생활을 시작했을 때 데이팅 어플이 폭넓게 사용된다는 사실 자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미팅, 소개팅에 익숙했던 세대였던 내게 어플하나로 누군가를 쉽게 만난다는 건 상당히 새롭고, 한편으로는 낯설었다 : 아니, 어떤 사람이 나올 줄 알고?
그런 고로,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 나 스스로 데이팅어플을 통한 만남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과하게 보장되는 데이팅 어플의 익명성에 거부감을 느끼는 나와 반대로, 내 주변 친구들은 데이팅 어플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다. 쉬는 시간마다 검지손가락을 위로 치켜든 채, 사진이 마음에 안 들면 왼쪽으로, 혹은 마음에 들면 오른쪽으로 화면을 넘기는 그들의 모습은 자못 진지하기까지 하다.
틴더에 과하게 빠져있던 친구 A가 있다. 그녀는 꿈에서조차 틴더를 켜놓고, 스와이핑(틴더에서 맘에 드는 사진을 넘기는 행위)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
나 : 지겹지도 않니?
A : 새로운 사람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잖아. 귀여운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너랑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와중에도 내 운명의 상대가 지나갔을지도 몰라. 너도 해! 너무 재밌어!!
주변 지인을 넘어, 본인의 형제자매들도 모두 데이팅 어플을 통해 운명의 상대를 찾았다는 이 친구는, 본인의 운명의 상대 또한 데이팅 어플에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저런 헤맴을 거듭하던 그 친구는 소원대로 데이팅 어플에서 (운명의 상대인지는 모르겠으나) 끝끝내 본인의 연애상대를 찾아냈다.
그 사실이 너무 스스로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던 그녀는 수업 하루 전 날, 학급에 있는 모두에게 자신의 남자친구를 소개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때까지 그와의 만남은 한 번의 데이트가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두 번째 데이트에서 그 연애상대를 교수님도 계신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초대해, 교수님과 동급생 모두에게 소개하는 일을 강행했다. 겉보기에 그는 평범한 20대 남성이었다. 다시 마주친다 해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표준의 인상을 가진 사람. 다만 그가 교실에 들어선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꼬름한 치즈냄새가 났던 것만은 기억에 남는다.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던 건지, 옆에서 동기한명이 조용히 우릴 향해 소곤거렸다.
‘와우…이 친구는 도대체 아침에 치즈를 몇 킬로나 먹은 거래?’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간단히 인사를 한 뒤, 통성명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계속해서 미소를 짓던 그가 왜인지 흥분한 어조로 먼저 입을 열었다.
"넌 김 감자고, 이당근이고, 그리고 넌 오 양파지? (실명을 밝힐 수 없음과 내 작명센스에 양해를 바란다) 이미 너네 다 알아."
A가 벌써 우리에 대해 언급을 했나 싶어 그러려니 했다. 반대로 A는 그에게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얘네들 이름을 어떻게 알아? 너한테 내 친구들에 대해 언급한 적도 없는데?”
그는 짐짓 자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인스타는 늘 우리 기대보다 많은 것을 얘기해 주지.”
몇 번의 질문을 통해 우리는 그가 A의 SNS를 (정말 말 그대로 아주 '탈탈') 털어보았고, 그 과정에서 A가 언급한 적도 없는 주변인에 대한 정보를 모두 수집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사람이 SNS를 추적해 내 얼굴을 알고, 친근하게 이름까지 부른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친 건 나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 이게 그렇게까지 부지런히 정보수집을 할 일인가?)
순간 화기애애했던 교실 분위기는 청문회자리가 되었다. A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신을 스토킹 한 거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할 분위기가 아니었고, 그는 도망치듯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밖으로 향했다. 그를 쫓아 나갔다가 돌아온 그녀는 그대로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녀의 빠른 결단력에 우리 모두 박수를 쳤음은 당연하다.)
그날 밤, 익명의 사람에게 페이스북과 인스타로 동시에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구구절절 쓰지 않고 간단하게 추리자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다.
"안녕, Zamun. 나는 오늘 만났던 A의 데이팅상대야. 사실 A보다는 네가 더 내 타입인데, 나랑 데이트할래? 즐거운 시간을 약속할게."
내가 잘 모르는 상대가 내 정보를 알고, 또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메시지창에서 알람이 울렸다. 같은 과 동급생들끼리 만든 채팅창에 다른 동급생 B가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얘들아 ㅋㅋㅋ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까?"
그녀의 말풍선 아래로 방금 내가 받은 내용과 동일한 내용(이름 빼고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의 메시지가 보였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A의 데이팅 상대. 우리 과의 모든 여자(내가 다니는 학과에는 총 3명의 여학생이 있었다)가 자신의 타입이었던 그는 똑똑하게도, A를 제외한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의 명석함에 박수를!)
우리는 의논 끝에 함께 완성한 (한 번만 더 이런 식의 메시지를 보낸다면 신고하겠다는 다소 과격한 표현의 경고성) 메시지를 동시에 각자 그에게 전송하기로 했다. 신고, 영구차단을 해버렸음은 물론이다.
본의 아니게 이상한 놈에게 어장을 제공해 준 입장이 된 A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고, B와 나는 지금까지도 가끔 심심하면 그때 이야기를 하며 A를 잘 놀려대고 있다. (A는 결국 몇 번의 데이팅 어플의 실패 끝에 현재는 오프라인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함께 잘 살고 있다.)
유럽이나 미주 등의 국가들에서는 누군가를 만날 때 소개팅이나 미팅보다는 대표적으로 틴더(Tinder)나 범블(Bumble) 등과 같은, 다양한 데이팅 어플이 폭넓게 사용된다. 그 범위는 점점 확장되어, 이제 단순히 데이팅 상대를 만나기 위한 장이 아닌 캐주얼한 친구, 혹은 일자리 제의도 데이팅 어플 하나로 해결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 있다. 나 또한 재미 삼아 데이팅 어플을 시도해 본 경험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위에서 있었던 일과 같이, 마음만 먹으면 프로필에 있는 약간의 정보만으로도 개인 SNS망으로 접속이 가능하다는 점과 어플에 있는 불특정 다수사이에서 내 얼굴과 프로필이 떠다닌다는 사실이 못내 찝찝해 완전히 그만두기는 했지만.
데이팅 어플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모두 부정적인 상황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요즘 젊은 커플들 대다수가 데이팅 어플을 통해 만난다는 사실을 한 번 정도는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데이팅 어플을 통해 결혼까지 해서 잘 살고 있는 커플들이 꽤 있다.
하지만 나는 궁금하다. 제한된 프로필의 영역 내에서 내 매력을 최대한으로 방출해,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은 어디까지 진실할 수 있을까? 프로필사진과 실물이 달라서, 관계 내에서 기대하는 바가 달라서, 프로필에서 보이지 않던 성격이 내가 생각하던 이미지와 달라서 등등의 이유로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로 쉽게 그들을 손절한다. 데이팅 어플에서 통해 만난 남자가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던 친구도 있었고, 첫 만남에 강간을 당할 뻔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 속에서 누가 그들을 보호하고,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진실해진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진실하지 않다면 그 관계에서 오는 허탈감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