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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un Apr 07. 2023

32살, 유학을 떠났다

네덜란드, 그 복잡 미묘한 세계 

"다녀올게요." 


유학을 떠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게 어느덧 3년째였다. 

예상했던 대로, 가족들은 눈물콧물을 흘리는 애절한 신파 대신, 서른이 넘어 만학도의 길을 떠나는 과년한(!) 딸(또는 언니, 누나)에게 걱정스러운 표정만 내보였을 뿐이었다. 나 또한 마지막 치느님이라며 전날 양껏 먹은 치킨이 속에서 여전히 부대꼈던지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스활명수나 시원하게 들이켜고 비행기에 올라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도착하면 카톡 해라." 


가족 간의 헤어짐이 이렇게나 무미건조할 수가. 국제전화 통화료가 부담스럽던 옛날 같은 시절이었다면 이보다는 좀 더 애틋한 헤어짐을 할 수 있었을 것을. 내가 바다 건너 짊어지고 가야 할 부담스러운 짐더미가 내 시야를 가리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난 내가 유학을 떠나는 게 아닌, 지방 출장이라도 가는 거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비행기가 지상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그제야 당분간 가족들과 안녕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생뚱맞게 다가온 사실에 살짝 서러움이 올라와 눈물이 찔끔 났지만, 오래간만에 맛보는 기내식에 대한 설렘과 흥분에, 그 모든 감정은 금세 훌훌 사라져 버렸다. 기내식 비빔밥은 포기할 수 없지.  


내 최종 종착지는 다름 아닌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스키폴 공항. 풍차와 튤립의 도시, 네덜란드다. 


다음 글에서 더 디테일하게 풀어나갈 계획이지만, 지금 살짝만이라도 '왜 나는 네덜란드로 왔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하다. 보통 이쯤에서 학생들은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분위기', ' 진보적인 트렌드와 유럽도시로써의 이점' 등등을 이야기할 것이다. 전부 사실이라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네덜란드로 유학지를 정한 이유는 좀 더 현실적이다. '학비와 생활비등을 포함한 기타 등등의 체류비'. 즉, 돈이었다. 


32세, 한국 기준으로 자신의 앞가림을 해야 할 나이라고 사회적으로 규정된 나이에 유학을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수는 없었다. 유학을 결심한 순간부터, 내가 1년은 버틸 수 있을만한 최소금액을 모았고, 그 모든 경우의 수를 내 주관적인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최적의 나라는 네덜란드였다. 

학비와 생활비만으로 따지자면, 독일이나 프랑스 등지의 나라가 더 저렴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학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을 때 어학연수를 지내는 기간만큼의 체류비도 결코 무시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서른이 넘은 나이에 떠나는 유학인지라, 하루빨리 학업을 시작해서 빨리 마쳐야 한다는 조급함, 부담감도 있었다. 


영국이나 미국 등의 선택지도 있지 않냐는 질문도 있을 듯하다. 영국의 높은 환율과 물가의 압박과 안 그래도 팍팍할 나의 유학생활을 더 건조해지는 것을 감수할 만큼 영국으로 꼭 가고 싶다는 목적의식도 딱히 없었다. 게다가 유학 기간 중 브렉시트 문제가 결국 현실이 되면서, 이때의 내 결정은 결과적으로 꽤 괜찮은 결정이 되었다.(브렉시트가 내 유학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는 미지수지만.) 

미국은 선택하는 주에 따라 물가의 압박이 덜할 수는 있었겠지만, 넓은 땅 면적만큼이나 운전을 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과, 그 상황 아래 차를 유지, 보수해야 되는 금액과 노력등이 상상만 해도 너무나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세운 이 모든 기준에서, 네덜란드는 정확히 중간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기준대비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체감물가와 학비, 제1 언어로 더치어를 사용하긴 하나, 내가 눈여겨본 학교는 수업이 100% 영어로 제공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좁은 땅면적만큼이나 제한된 이동거리, 그에 따른 자전거 도로의 발달 등이 당시에 나에겐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곳도 타지이기에 모든 것이 전부 다 너무 이상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편안하다 한들 30년 넘게 산 내 나라만큼 편안할 리 없고,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할 뿐 네덜란드 또한 인종차별의 문제에서 100% 자유로운 나라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학을 떠나기 전, 나는 이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각오를 다지고 왔기 때문에 크게 예상을 벗어난 상황을 아직은 맞닥뜨리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정보가 힘이라고, 무엇이든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충분한 준비를 하고 온다면 어디서든 살아남는 데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언제, 어디서든, 설령 그게 고국이라 할지라도 발생할 수 있는 거고, 사람 사는 곳엔 작든 크든, 예상치 못한 트러블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만큼 예상치 못한 행복한 일 또한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사람 사는 재미라고 생각하므로, 인생은 즐길 줄 아는 만큼 행복하고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은 유학생활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네덜란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이 '대마초와 성매매'일 것이다. 이 두 가지 키워드만 놓고 본다면, 네덜란드는 둘도 없는 범죄의 온상이 되는 국가다. 하지만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길거리를 이리저리 헤매고, 한 편에서는 최소한의 천으로 몸을 가린 섹시한 언니들이 행인들을 유혹하는 등의 모습을 기대하고 네덜란드에 온다면, 네덜란드의 생각보다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모습에 어쩌면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네덜란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산업 중 하나가 농업과 축산업이다. 그에 걸맞게, 기차를 타고 도심만 벗어나게 되면 끝없이 펼쳐지는 새파란 들판과 그곳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소와 양 떼들을 보는 것은 네덜란드 내에선 구경거리도 되지 않는다. 내가 본 것들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본 대마초 흡연자들의 대부분은 대마초를 피기 위해 관광객을 가장해(뭐 관광도 하고 겸사겸사) 네덜란드를 방문한 유럽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정작 네덜란드인들은 대마초에 대해 냉담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아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대부분이 대마초를 담배보다도 중독성이 낮은 비싼 '기호식품'정도로 치부하고 있었으며, 다른 기호식품도 많은데 굳이 비싼 대마초를 왜 해야 되는 건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내 주변엔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마초를 즐기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 언젠가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의 검소함(다시 말해 구두쇠 기질)은 유럽 내에서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싼 대마초에 지갑을 단단히 붙들고자 모습은 네덜란드 생활 5년 차에 접어는 내게는 새삼 당연하게 보일 정도다. 대마초가 불법인 한국에서 온 내게는 이 모든 모습들이 여전히 낯설고 어색한 동시에 신기한 것도 사실이며, 직접적으로 대마초를 접해본 적도 없지만,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네덜란드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러한 것들을 교육하고 대처하는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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