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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un Apr 07. 2023

<프롤로그>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하지 않은 현재를 걱정해요

"아, 떠나고 싶다." 


서른을 앞둔 나이, 더 이상 뭔가 하고 싶다는 열망은 없었고, 매일의 낙은 한 달 동안 일해 번 월급으로 '이번엔 뭘 또 살까'를 고민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대학 졸업 후, 취직준비를 시작하기 직전에 떠났던 유럽배낭여행에서 성당 친구의 추천으로 프랑스에 위치한 '떼제 공동체'라는 곳에 머문 적이 있다. '떼제 공동체'는 교회일치운동을 주장하는 프랑스 수도회인데, 신앙적인 이유보단,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에서 향한 것이 컸다. 식사제공을 포함한 하루 숙박비가 당시 7.50유로 정도였으니, 한 푼이 아쉬운 배낭여행객 신분에 이보다 좋은 선택지가 있으랴. 


시골에 있는 조용한 수도회라고 들었으니, 쉬면서 평화로운 프랑스의 공기를 만끽하려했던 내 계획은 뜻밖의 룸메이트가 들어오며 산산조각이 났다. 공동체에서 진행되는 일주일간의 침묵 주간을 보내고 온 체코인 룸메이트는 그동안 말 못 한 설움을 전부 풀어낼 기세로 밤이 새도록 자신에 대해 과할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남자친구가 연락이 안 돼서 걱정할 것, 자신은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애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등등의 초면에 과도한 개인사를 늘어놓던 그녀에게 점점 정신적인 피로감을 느껴갈 때쯤, 길 가던 수사님을 붙잡고 룸메이트 때문에 쉴 수가 없다고 고해성사를 빙자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방을 바꾸는 걸 도와주겠다고 하셨지만, 혹여라도 내가 나가고 나서 룸메이트가 상처라도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지금 생각하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으며 막상 방을 바꾸는 걸 주저했다. 솔직히, 방을 바꾸고 난 이후에 룸메이트와 마주쳤을시에 느껴질 예상가능한 어색함이 싫었을 뿐이었다. 다시금 생각해봐도, 벌어지지 않은 일에 그 때의 나는 왜 그렇게 겁을 먹었었는지. 선한 인상의 수사님은 그런 태도를 탓하지 않고, 친절한 미소를 띠며 이런 말씀을 해주셨었다.

   

"벌어지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마세요. 다만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하지 않은 현재를 걱정해 보는 게 어떨까요." 


왜였을까. 갑자기 내 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미래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현재의 행복을 늘 미뤄왔던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성향 때문이었을까. 난, 정말로, 회사생활이 안 맞았다. (아, 물론 회사도 나랑 안 맞았으리라.)

늘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며, 그 대가로 내 소중한 현재를 팔아넘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평적인 척 하지만 결국 수직적인 조직관계, 개인보다는 조직, 조직조직조직.. 주중 내내 목이 조여 있다가, 주말에 잠깐 그 목줄을 풀고, 다시 주중이 되면 스스로 목줄을 차는 기분이었다. 회사생활의 가장 큰 이점이라면 '회사를 다님으로써 난 내 밥벌이를 한다'는 안정감일진대, 매일매일 반복된 일상이 주는 안정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기대도 설렘도 없는 삶이 지루했다. 지루한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고문하는 데 점점 지쳐갈 때쯤, 빨리 돈을 모아 유학을 떠나는 목표를 세웠다.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 정도의 여행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겉핥기식의 로망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의 생존을 원했다. 아름다운 겉모습이 아닌, 그 나라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어린시절부터의 꿈이었다. 한국에서 30년정도를 살았으니, 적어도 십년 정도는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이대로 산다면 죽을 때가 돼어 '아, 그때 용기 내서 한 번 떠나볼걸.' 하는 후회를 남길 지 몰랐다. 그런 미련은 추호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예정보다 이른 퇴사를 하게되었다. 월급을 모아 유학을 가겠다는 계획에 살짝 차질이 생겼지만, 자투리 돈이라도 벌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급은 월급에 비해 하찮았다. 그렇다고 회사로 다시 돌아갈 용기도, 미련도 없었다. 그렇게 3년간 차곡차곡 돈을 모아 2018년,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드디어 꿈꾸던 유학을 떠났다. 


그날의 결정을 단 0.001%도 후회하지 않는다. 유학 4년째에 접어든 지금, 취미였던 맛집탐방은 커녕 외식 자체가 한 달에 한 번정도도 겨우 하는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고, 학생식당에서 파는 학생할인으로 마실 수 있는 커피 한 잔이 너무 달콤하기 그지없는 삶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내가 목표로 했던 것을 해냈다는 달성감. 그리고 돈을 쓰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소박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즐거움을 알게 된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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