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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Apr 11. 2023

치과로 돌아갑니다.

’이번‘ 은퇴는 실패일까

4월의 강릉은 참 예쁘다. 두고 가기 아까울 정도로. ‘이곳은 천국인가요?!’를 외치고 싶을 때도 있다. 이 좋은 계절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은 마음에, 이사 준비는 뒤로 미뤄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시간이 넉넉할 줄 알고 ‘언젠가 가봐야지~’ 했던 곳들도 많았었는데… 강릉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두 달 전쯤 친한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배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병원에 와서 일하겠냐’라고 물었다. 그 제안을 듣고, 솔직히 고사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사까지 감행해야 하는 문제를 쉽게 결정할 수도 없었다. 많은 고민 끝에 OK.  가기로 결정했다. 2주 후면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간다.  



가겠다고 결정을 하긴 했는데, 동네방네 ‘치과의사 그만두겠습니다’, ‘은퇴했습니다’라고 떠벌려놓은 게 걸렸다. 돌아갈 다리를 불태워버린 것 마냥 비장하게 글을 올려놓고는 겨우 1년 만에 돌아간다니…. 비빌 언덕이 있는 전문직의 배부른 행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브런치 문을 닫아야 하나. 글들을 내려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혹독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매 순간 진지하게 내린 결정이었고, 그런 선택들을 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삶의 길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다가오는 파도를 이리저리 타고 가는 것 또한 삶의 과정이므로... 독자들이 필자의 변덕(?)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모두 이번 생이 처음인 아마추어이니까^^


부끄럽지만, 이 글에 다시 일터로 돌아가겠노라고 마음을 굳히게 된 솔직한 ‘변’을 남겨보려고 한다. 이직과 퇴사는 많은 이들의 꿈이자 목표이기도 하니까. ‘조기은퇴’라는 꿈을 이루고, 왜 다시 일터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은퇴,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어랏. 나, 사회적인 인간이었구나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치과 때려치우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말이 씨가 된다고, 끝내 그만두고 강릉으로 왔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며.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밥벌이 외에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했다.


하다보니 글을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작가의 꿈을 꾸게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면 책을 쓰고, 수익화도 하면서 금방금방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나도 늦게 시작한 만큼 얼른 성과를 내고 싶었다. 급한 마음에 열심히 쓰고 읽었다.


칭찬 댓글에 당장 뭐라도 될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조회수를 보고 푸쉬시 바람이 빠졌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보잘것없는 내 상태에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나’ 좌절하기도 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일희 일비 하고 있지?’ 의아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제법 글이 쌓였다. ‘어... 이 정도쯤 됐으면 모래알만 한 성과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싶었지만, ‘기회’라고 부를만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깨달으면서, 호기롭게 세웠던 목표가 쪼그라들었다. 쪼그라들다 사라졌다.


그렇게 애쓰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내가 사회적인 자아를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일을 할 때는 돈을 버니까 나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백수가 되니 그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필사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렸던 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또 다른 ‘일’을 만들어 자신을 쪼아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 꼭 돈이 되지 않더라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값어치가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


평소 물질이나 사회적인 명예, 성공 등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는 편이라서 그런 나의 모습이 의외스럽기도 했다. 조용한 곳에서 소박하게 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천국 같은 강릉에서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게 살아가면서도 마음 한쪽이 허전했었다. 그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이래서야 언제 닭이 되겠나

그런 나의 욕구와는 상관없이, 글은 쓰면 쓸수록 쉽지 않았다. 아직 멀었을 뿐 아니라, 작가로서 어엿한 ‘일 인분’을 하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물론 오래 쓴다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이 세계에서는 ‘햇병아리’도 아니고 ‘유정란’ 수준이었다. 긴 시간에 걸쳐 꾸준히 글을 써 온 사람들의 내공을 단시간에 따라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과욕이었다. 깊어지기 위해서는 세월이 몸에 배어야 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쓸수록 겸손해졌다. 당장이라도 출간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던 담대한 포부는 꽁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치과의사만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그 길에서 빠져나와 돌아보니, 20년간 쌓인 시간의 퇴적물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어떤 일을 해도 그 수준에 오르려면 10년 이상은 걸릴터였다. 늘 벗어나고 싶다고 발버둥을 쳤던 그 일이 지금 나에게는 가장 손쉬운 일이라는 것. 그건 꽤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다시, 치과로

그렇게 스스로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가면서, 역설적으로 ’다시 일을 하면 어떨까 ‘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추호도 ‘개업’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앞으로 다시 치과에 나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예상치 못하게 파트타임 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예전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겁이 나면서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선배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데는 강릉에서 보낸 시간의 영향이 컸다. 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꽤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내다 버린(?) 이 기술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끊임없이 구시렁거렸을지언정  20년 가까운 시간을 치과라는 공간에서 차곡차곡 쌓아왔다는 것. 다른 일을 해보고서야  시간과 노력의 가치를 깨달았다.


늘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일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도망갈 궁리만 했지, 제대로 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이곳에서 나는 훨씬 단단해졌으니, 마무리 짓지 못한 매듭을 제대로 지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겼다. 그동안 남편에게만 경제적인 짐을 지우는 것이 못내 미안하기도 했고... 결론은 내려졌다.치과로 돌아가자. 이번 은퇴는 실패. 


그러나 강릉까지 오갔던 삽질(?)이 무의미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나’의 다른 면을, 생각보다 육중했던 ‘일의 의미’를, 그리고 ’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깨닫는 시간이었으므로. 머무르던 곳에서 멀리 빠져나와야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은퇴는 '실패'라기 보다는 '절반의 성공' 쯤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은퇴를 꿈꾼다. 치과라는 좁은 공간이 아닌, 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때를 기다리며 당분간은 ‘치과의사’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한다. ‘치과’라는 공간에 양다리를 걸치고 시간을 쌓아보려고 한다.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일로 ‘일 인분’을 하고, ‘닭’이 되는 날이 오면, 그땐 뒤도 돌아보지 않을 거다.


강릉을 떠나며, 본격적으로 ’ 진짜 은퇴‘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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