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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Jul 25. 2023

오늘은 치과의사 아닌 걸로

아들의 첫 충치 치료



세상에서 가장 자기 건강을 챙기지 않는 불량 환자는, 다름 아닌 ‘의사’다. (정확한 근거는... 없다. 그저 나의 뇌피셜이다.) 자기 건강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신하기도 하고, 언제든지  마음먹으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건강에 대해 자신이 있다기보다는… 귀찮다. 병원에 가는 게 무섭기도 하고^^;;; 이쯤 되면 의사라서가 아니라 일단 버티고 보는 게으른 인간이라 병을 만든다고 보는 게 맞겠다. (치과의사지만 입안에 임플란트를 키운다. 버티고 버틴 죗값으로…)



내 아이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라서, 병원에 데리고 가는 걸 무척 귀찮아한다. 아이들의 경우 국가에서 운영하는 ‘영유아 구강검진’이라는 제도가 있다.  18개월부터 시작하게 되어있는데, 단 한 번도 데리고 간 적은 없다. 내가 슬쩍 봤을 때 크게 문제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봐서는 결코 알 수 없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충치들도 많다.) 그래서 아들은 초등 2학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치과 문턱을 밟아본 일이 없었다. (이러면 안 된다!!)



영구치 어금니가 났으니 홈메우기를 해줘야지 해줘야지 생각은 했었는데... ‘생각’만 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의지는 별로 없었던 거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보니 소즁한 영구치가 살짝 의심스러웠다. 앗. 더 버티면 정말 큰 진료로 넘어가겠구나 싶어 예약을 걸었다. (직접 치료해 주면 되지 않냐고 궁금해 하실 수도 있겠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교정 치과라 충치 치료를 하지 않아서 다른 곳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나의 직장과 같은 건물에 있는 어린이 치과였다. 그렇게 아이는 태어나고 8년 만에 처음으로 치과를 밟아 보았다.



나에게는 치과에 방문하는 게 낯선 일이 아니다. 여러 군데의 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종종 친구들 선배들 병원에도 놀러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시절 대학병원을 제외하고 소아치과에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오호~  내부가 밝고 아기자기하다. 대기실 한 편에 놀이방도 있고 장난감들도 있다. 티브이에는 ‘브레드 이발소’(우유와 식빵이 주인공인 만화)가 나온다.'소아치과는 소아과의 치과 버전이구나.' 새삼 실감했다. 너무 당연한 깨달음인가.




뭣도 모르는 아들은 안내에 따라 순순히 초진실로 들어갔다. 의자에 눕더니, 바로 천장에 달려있는 모니터에 나오는 ‘라바’에 시선이 꽂혔다. 잠시 후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 OO아!!” 흡사 유치원 선생님 같은 하이톤의 목소리다. 오호 소치 원장님들은 저런 텐션을 보유하는구나…. 그 와중에 나는 철저히 신분을 숨겼다. 치과의사가 돼서 지금까지 애 검진도 한 번 제대로 안 했냐고 하면 부끄러우니까… 물론 그렇게 말하진 않겠지만, 스스로 찔렸다고나 할까...



원장님은 아이의 혼을 쏙 빼놓을 손놀림과 칭찬세례로 아이의 구강을 빠르게 스캔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호. 원장님 잘하시네~~’라는 감탄을 속으로만 삼켰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그는 친절히 아이의 상태를 설명해 준다.


“어머니, 요거 요거 요거는 영구치라 평생 가져갈 이고요. 이것들은 유치라 3,4,5 학년 때 빠질 치아예요~ ”


나는 순수한 눈빛을 장착하고 잘 알겠다는 듯, 원장님의 말에 끄덕끄덕 반응을 보였다.


“요거 요거 요거는 이미 충치가 진행되고 있어서 치료를 해야 하고요~~ 요 치아는 괜찮아서 치아의 홈을 메우는 코팅만 하면 되겠어요~~”


원장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듯 열심히 대답을 하고 초진실을 나섰다. 흠... 예상보다 치료할 게 하나 더 있네...



데스크로 가니 오늘은 검진 예약만 되어있지만, 당일 치료까지 가능하다며 하고 가시겠냐고 물었다. 나야 하고 가면 좋지! 다시 안 와도 되니까!! 근데 이 녀석이 괜찮을까??


“아들. 오늘 온 김에 치료까지 하고 갈래? 그럼 다시 안 와도 돼”

“치료하는 거 아파?”

“아니~~ 안 아파~~~”


나는 치과의사들이 맨날 하는 거짓말을 아들에게도 눈 깜짝하지 않고 되풀이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안심을 시키니 아이는 또 한 번 순순히 진료실로 따라 들어간다. 호오... 괜찮을까??



막상 아이를 진료실로 들여보내고 나니 내가 긴장이 된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만화에 눈길을 줘 보았지만,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질세라 조마조마 마음을 졸였다. 보기보다 겁이 많은 녀석인데… 분명히 충치 제거할 때 아플 텐데…


‘왜 아직 소리가 안 나지? 지금쯤 아픈 거 할 타이밍인데….’

‘아… 진작 데려올 걸… 아프기 전에 치료해 줄걸…’


나는 소아치과 대기실에 앉아서 또 후회를 하고 있었다. 어째 치과에만 가면 지난날을 반성하게 되는 걸까. 늘 치과 진료받기를 미루고 미루는 나는, 커다란 환자용 의자에 앉아 기다릴 때마다 자신을 탓하곤 했다.  놔두면 일이 커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사태를 여기까지 이르게 했으니까... 그런데 아들의 치아마저 방치하고 말았다. 셀프로 욕을 먹어도 쌌다.



그렇게 치과의사가 아닌 보호자의 입장이 되어 아이의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치과라는 공간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사실 치과란 사람 냄새나는 공간은 아니다. 만만치 않은 진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곳이요, 혹시나 과잉진료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을 거두기 힘든 곳이다. 치과의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운영 비용을 셈해야 하는 '사업장'이며, 때로는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환자들에게도 감정을 누른 채 친절히 응대해야 하는 '직장'이다. 진심 어린 교류가 오가기에는 삭막한 곳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앉아있고 보니 알겠다. 사람들이 이곳에 오기까지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걸. 긴 시간 고민하고 벼르다가, 결심 끝에 찾아온다는 걸.



 평생 품고 살아온 ‘입이 튀어나왔다’는 콤플렉스를 해결하고 싶어서 늦은 나이에도 교정 치과를 찾은 중년 여성도 있고, 나를 똑 닮은 아이가 내 주걱턱까지 닮은 게 미안해서 치과를 찾는 아빠도 있다. 물론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버티고 버티다가 이곳을 찾은 나 같은 엄마도 있고…



병원에 환자들이 오가는 건 나에게는 흔한 일상이다. 그러나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치과 방문이 결코 가볍지 않은, 짧지만 굵은 마디인 것이다. 혹시나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지 않을까 귀를 기울이며, 그제야 나는 늘 보아오던 보호자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일견 차가워보이는 이곳도 결국 사람이 오가는 공간이었다.




늘어진 듯한 시간을 타고 이런 상념들을 이어가는데…. 엇 아이가 걸어 나온다. 빨개진 눈에 눈물 한 방울을 달고 있다. 울음소리는 나지 않은 것 같은데??


“치료 잘 받았어?? 우와~~ 진짜 대단하다!!”

“아니~~ 양치한다고 해놓고~~ 위잉 소리가 나면서 막 충치를 갈아내는 거야!”

”아팠어??“

“응 좀 아팠어..”

“그런데도 끝까지 참고 받았네!! 아우 진짜 멋지다!!”


나도 하기 힘든 일을 꿋꿋이 해낸 아이에게 엄치 척을 날려준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쉰다. 휴우…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났다. 진작 올 걸. 이렇게 개운한 것을. 미뤄오던 숙제가 끝났다.



병원을 나와 고생한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쥐어준다. 고생한 나에게는(읭?) 와플을. 다음에는 충치 먹기 전에 제때제때 정기 검진을 가야지… 는 아니고. ㅎㅎㅎ


다음번에는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미루다가 가야지. 히힛 일단 치료했으니까 당분간은 괜찮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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