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쉬는솜사탕 Aug 10. 2023

김 원장과 서 원장

출근하는 아침


아침 10시 10분. 정확하게 병원 자동문을 통과한다. 화사한 대기실을 통과해 환자들은 다니지 않는 통로로 들어간다. 왼쪽에서 두 번째 문으로 들어가면 작은방이 있다. 창문은 없지만 혼자서 지내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음료가 채워진 작은 냉장고도 있다. 이곳이 내가 일하는 곳, 00교정치과의 페이닥터 방이다.


출근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컴퓨터를 켜고, 옷을 갈아입는다. 양치질을 하며(늦지 않기 위해 양치를 생략하고 출근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치과 의사 맞나;;;) 병원 예약 프로그램과 씨씨티비, xray 뷰어 등을 차례로 켠다. 입을 헹궈낸 다음 옆에 걸린 수건으로 입을 톡톡 닦자마자 옆방으로 향한다. 똑똑. 두드리고 문을 연다. 얼굴을 쏙 내민 다음 활기차게 인사를 건넨다.


“하이~~~”

나를 보고 컴퓨터 모니터 뒤로 말간 얼굴이 웃는다.

“어서 와요~~”

반갑게 맞이하는 이 사람은 이 병원의 주인인 김 원장님이다.


*


치과 대학을 졸업한 직후, 나는 작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1년쯤 일을 해보니, 조금 더 멀리 보아서 전공 과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병원에 들어가서 제대로 배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때 한 선배가 ‘오래 페이로 일하기에는 교정이 괜찮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오호 교정이라... 내 성적으로 대학병원은 어려웠고, xx 치과병원에서 교정 수련의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시험을 보았고 곧 출근 날짜가 잡혔다.


수련의들이 머무는 곳을 ‘의국’이라고 한다. 보통은 환자들이 다니지 않는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의사들이 모여있는 교무실 같은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삼엄한 위계질서로 꽉 조여진 공간이다. 비교하자면…군대 내무반과 비슷하다. 연차에 따라서 엄격하게 서열이 매겨져 있고, 해야 할 일이 분배되어 있다. 그에 따라 지켜야 할 행동 양식도 정해져 있다. 물론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그곳의 공기 속에서 감지할 수 있다. 이곳의 암묵적인 룰을 지키지 않는다면 삶이 매우 매우 녹록지 않을 거라는 뉘앙스를.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보기 힘든 집단이다.


나는 그곳에서 김 원장님을 처음 만났다. 나이는 동갑이었지만 2년 먼저 의국에 들어온 선배였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꼬꼬마 신입과, 직접 자기 환자를 진료하는 3년 차의 서열은 하늘과 땅 차이다. 치과는 도재식으로 배우는 곳이라, 선배의 진료를 어깨너머로 지켜보며 하나하나 익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깍듯이 예우를 다해 그를 대했다. 그때는 김 원장님이 아니라 김주연(가명) 선생님이었지만.


신분의 차이가 차이니만큼 개인적인 친분을 나눌 일은 별로 없었다. 고년차들은 자기들끼리 편하게 어울렸고, 막내인 나는 비슷한 처지의 동기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할 일을 하기 바빴다. 그런데 우리가 친해질 계기가 있었으니, 당시 대유행하던 ‘클린’이라는 책 덕분이었다.


“나랑 같이 클린 할 사~람!!”

“…”


하루는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던 김 선생님이 함께 식단 프로그램을 할 버디를 구했다. 역시나 누구도 반응이 없었다. 우리는 아침을 ‘짜장 범벅’으로 열고, 하루를 ’튀김 우동‘으로 마무리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러나 나는 종잇장과 같이 팔랑이는 귀를 가진 인간이었다. 김 선생님에게 책을 빌려 읽고는 완전히 혹해버렸다. 각종 인스턴트로 찌든 내 몸을 당장이라도 구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우리의 클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의국원 모두가 구내식당에 올라가면, 김 선생님과 나는 직접 싸온 도시락을 꺼냈다. 동물성 식품은 포함되지 않고, 채소와 고구마, 단호박 등 식물성으로만 채워진 청정한 식단이었다. 당이 떨어질 때마다 잼을 듬뿍 발라 먹던 '그대로 토스트'도, 야식으로 시켜 먹던 떡볶이도 모두 외면했다. 평소 같았으면 하루도 버텨내지 못할 도전이었다. 그러나 김 선생님의 하이텐션과 ’클린‘의 마법으로 1주, 2주를 채워갔다.


출출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때는 서로의 입에 아몬드를 쑤셔 넣어주었다. 내가 사람인가 다람쥐인가 헷갈렸다. 다 살자고 먹는 건데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프로젝트에 동참하겠다고 나섰던 내 입을 꼬매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결국은 3주간의 클린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대망의 마지막 날 우리에게 남은 것은 2킬로쯤 가벼워진 몸과 뜨거운 동지애였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를 ‘버디’라고 불렀다.



팍팍한 의국 생활을 끝내고도 우리는 종종 연락을 하고 지냈다. 그는 내가 개인적으로 안부를 나누는 유일한 의국 선배였다. 각자 결혼을 하고 막 돌을 넘긴 아이를 키우기 바쁠 무렵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인천에 개업해요~~ 한 번 놀러 와~~”


얼굴을 본 지 오래되었기도 하고, 병원을 어떻게 꾸몄을까 궁금하기도 하여 개업 선물을 들고 인천으로 향했다. 널찍하고 깔끔한 공간에,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이 빼꼼 빼꼼 숨어있었다. 병원을 둘러보다가 그에게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와~~ 병원 좋다~~ 얼른 키워서 저 좀 써주세요!!”

“아 진짜?? 여기까지 올 거야???"

“그럼요~~~ 버디가 부르면 와야죠~~”

“알았어. 내가 열심히 해볼게!!”

농담으로 건넨 말이 현실이 될 줄을 그때는 몰랐다.




그로부터 7년 후,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간 버디의 병원은 꽤 성장한 모습이었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oo교정치과가 지역 사람들에게 꽤 알려졌다고들 했다. 경쟁이 치열한 동네임에도 수익보다는 원칙과 소신을 지켜가며 운영을 한 덕분인 듯했다. 반면에 나는 동쪽 끝 강릉에 있었다. 다시는 치과의사를 하지 않겠다며 베짱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호기롭게 작가의 꿈을 키워갈 무렵이었다. 어느 정도 강릉 생활에 익숙해졌을 즈음, 버디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버디 거기까지 가서 뭐해~~ 와서 일할래요??”


별 기대 없이 건넨 물음이었다. 강릉에 간지 얼마 안 되었으니 인천으로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거다. 그러나 그 제안을 들은 베짱이는… 솔직히 반가웠다. 일, 하고 싶었다. 애초에 베짱이도 아니었던 거다. 전원에 파묻혀있긴 했지만 사실 나는 뼛속까지 개미였다. 몇 개월 편하게 있다 보니, ‘이렇게 놀아도 되나?’하고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던 참이었다. 개미는 고민하는 척을 조금 하다가 제안을 덥석 물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만에 정반대 편 서쪽으로 왔다.


그렇게 나는 oo 교정치과의 된장도 쌈장도 아니고 서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김 원장님으로부터 급여를 받은 지도 벌써 세 달이 지났다. 의국에서 도시락을 까먹던 우리가 10년이 훌쩍 지나 이렇게 한 병원에서 일하게 되다니. 그 버디가 나의 사장님이 되다니… 사람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같이 일을 하면서 좋았던 사이가 틀어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서로 입장이 다르니,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남의 병원에 일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조심스럽기도 하다. 얼마나 성의를 다해 임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매일 퇴근길에는 오늘 밥값을 했는지 헤아려보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지만…


내가 조금 바쁜 날에는 김 원장님이 우스갯소리로 묻는다.

“이러다 내일 강릉 가버리는 거 아니야??”

그러면 나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한다.

“흐흐흐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는 알고 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이미 이 생활을 꽤나 즐기고 있으니까.


떠나보아야 머물던 자리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던가. 그만두겠다던 일을 다시 시작하니 모든 것이 예전과 다르다. 출근 준비를 하느라 부산스러운 아침도 새삼스럽고, 집 아닌 어딘가에 ‘내 책상’이노라고 앉을 자리가 있는 것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내가 누구’라고 설명할 말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내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일‘에서 찾는 사람이라는 걸 백수가 되고서야 깨달았으니… 나의 쓸모와 일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버디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


인사를 하며 원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김 원장님이 묻는다.

"주말에 뭐하고 놀았어??"

"아후 너어무 더워서 집에서 뒹굴뒹굴 했어요. 아 참, 버디가 추천해준 계란 넘 맛있던데요??"


똑똑.

마침 계란 얘기를 풀어놓으려는 찰나에, 노크 소리가 들린다. 오늘의 첫 환자가 왔나보다. 에잇, 못다한 얘기는 한가한 시간에 이어서 해야겠다. 하리보 젤리를 하나씩 까먹으면서. 


내 방으로 돌아가 가운을 입는다. 오늘의 진료를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치과의사 아닌 걸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