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해 둔 병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아침에는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창밖을 내다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싹 그쳐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작은 우산 하나를 챙긴다.
아파트 단지 안을 가로질러 갈 때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를 두른 산책로로 들어서니
후둑후둑 굵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나무가 머금고 있던 물기가 떨어지는가 보다.
그 정도는 그냥 맞아도 좋지.
맨살에 닿는 차가운 감각이
경쾌하게 느껴진 것도 잠시,
앗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진다.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퍼붓는다.
얼른 우산을 폈다.
종종걸음으로 건널목으로 내려가니,
한 여성이 우산도 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초조하게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고 잠시만 맞아도 쫄딱 젖어버리겠다.
곁으로 가 우산을 기울였다.
"저랑 같이 쓰세요."
"아! 감사합니다!!"
잠시 빗소리.
"저기 앞 건물 주차장에 차가 있는데
그새 비가 오네요. 감사합니다!"
신호가 바뀌고 함께 건널목을 건넜다.
서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걸으니 작은 우산 바깥으로 몸 반쪽이 다 나온다.
한 쪽 어깨가 점점 젖어간다.
머리만 겨우 가렸다.
내 옆에 있는 이도 그럴 것이다.
건물 앞까지 쓰고 가다가
"이제 뛰어갈게요"
"얼른 가세요~"
"감사합니다!"
헤어지고 보니 뒤로 묶은 머리가 축축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도 아니다.
이랬다저랬다 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기의 모자를 제대로 씌워주기도 하고,
바쁘거나 속이 뒤틀릴 때는
뒤에 사람이 오는 걸 알면서도
'닫힘' 버튼을 재빠르게 눌러버리기도 한다.
오늘의 나는
좀 괜찮은 사람이었나 보다.
이렇게 글까지 써서
나 이랬어요오~~~
소문을 내고 싶은 걸 보면.ㅎㅎ
그러나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내일의 내가 어떨지는 모르니까.
아니, 잠시 후에 어떨지 조차
전혀 알 수 없으니까.
뭐.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 이기적이고 가끔 친절하고
가끔 사려깊고 가끔 속이 좁고,
대부분은 그냥 어중간한... 그런 나.
그럼 뭐 어떤가.
착한 사람이란,
배려 깊은 사람이란,
좋은 사람이란 틀에 맞추기 위해
나를, 우리를 이루는 선과 면을
억지로 접거나 구부리지 않아도 괜찮다.
...
벌써 비가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