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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희 Aug 05. 2016

결코 작지 않은 스몰웨딩

오렌지와 블루로 꾸민 6월까페 마당에서의 처음하는 두번째 결혼.



막장드라마처럼 악당이 있다면 문제해결은 쉽다. 악당을 미워하고 설득하고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면 된다. 심플하게. 하지만 일상다반사 평범한 우리의 삶 속에서는 왠만하면 악당이 없다. 그래서 문제 해결은 막장드라마보다는 좀 더 복잡하다.     


그녀의 결혼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갈등을 겪고 풍랑을 지나 결국 무사히 닻을 내렸지만 그 숱한 갈등에도 악당은 없었다. 그랬기때문에 더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형식적인 결혼식, 하객들은 신랑 신부에 집중한다기 보다는 적당히 보고 적당히 축하하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불평하거나 칭찬하는 걸로 후기를 대신하고 최대 2시간 정도 머무르는 그런 적당한 결혼식이 죽어도 하기 싫은 신랑, 신부와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너무 튀게 그러지 말고 손님도 많으니 또 친척이 지방에서 예식장도 하는데 적당하게 결혼식을 하기를 바랬던 부모님간의 갈등이었던 것이다.    

  

신랑이 뉴질랜드에 있을 때 브라질 친구들의 결혼식을 보고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축의금도 없이 그저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서 신랑 신부에게 충분히 집중하고 충분히 축하하고 충분히 좋은 음악을 선별해 들으며 충분히 즐기는 결혼식을. 그때 난 꼭 이런 결혼식을 해야 겠다고 결심했었다고 한다.     


신부는 친오빠의 결혼식을 직접 기획하고 장소도 직접 찾아 줄 정도로 결혼식에 대한 취향이 확실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현재 꽃을 배우고 있는데 어쩌면 그녀는 앞으로 예비 신랑,신부들의 결혼식을 만들어주기위해 애쓰는 직업을 갖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그녀가 정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평생을 함께 할 결혼식을 하는데 적당히?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이쯤되면 조금 특이한건 오히려 신랑, 신부이다. 부모님은 우리 엄마 아빠랑, 당신의 엄마 아빠랑 그다지 다르지 않은 평범하고 평범한 분들이셨던 것이다. 그동안 서로 서로 왕래한 지인들이 잔뜩 있어 누구는 부르고 누구는 안부르고 할 수 도 없었고 게다가 가족 중에 예식장을 하고 있는 사람까지 있는데 첫 아들이 결혼 할 때 그 예식장을 이용하지 않고 타지에서 하객도 줄여서 초대해야 한다고 하면 부모님에게는 너무 가혹할 수 도 있지 않은가?     


각자의 의견이 강하게 충돌했고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도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이 하고 싶은 작은 결혼식은 부모님이 이해를 할 수 가 없었다. 결국은 신랑이 포기를 하고 신부를 설득하려고도 했다고 한다. 그냥 어른들 생각도 있으니 지방에서 가서 몇 시간만 결혼식을 하고 올라와서 친구들과 우리끼리 웨딩파티를 하자고. 하지만 신부는 적당히 하는 결혼식을 평생 간직할 나의 결혼식이라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렇게 결혼식을 하고 나서 웨딩파티를 한다해도 그건 결혼식인가? 뒷풀이인가? 피로연인가? 그리고 그럼 정말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척들은 초대해도 되는 것인가? 그럼 지방 결혼식과 웨딩파티 두 번을 다 초대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부모님까지만 모두 두 번씩 초대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친정 어른들만 두 번 초대해야 하는 것인가?    

  

간단하게 생각해봤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싸우고 싸우다가 신랑은 두 사람의 결혼식이니 두 사람의 뜻대로 세부적인 것은 신부가 준비하고 그 것에 전적으로 따라주기로 입장을 정했다. 그 과정까지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결혼 준비 중 스트레스를 아는 내 입장에서는 신랑, 신부가 안스럽기 그지 없었다. 어쨌든 신랑의 입장정리로 두 사람은 스몰웨딩을 두 사람이 꾸며서 하는 쪽으로 정리를 했고 준비를 시작했다.          

헤이리에 있는 “작은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예약했고 결혼식 준비를 해나갔다. 하지만 긴 갈등 후 각자의 상처는 아물지 않아 있었고 하나 하나 쏟아지는 선택들 속에서 신부는 숨이 막혀 가기만 했다.      

그때쯤이었다. 이 결혼식을 멈춰야겠다고 두 사람이 결론 내린 때는. 밤에 차 안에서 시작된 토론은 싸움이 되어 동이 터오를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준비하던 결혼준비를 원점으로 돌리기로 했다. 예식장등 모든 것을 취소하기로 했다. 인터뷰 중 두 사람은 그때 얘기를 하면서 아직도 힘든 기색이 남아 있었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신랑, 신부가 입장할 때 잠깐 보는 듯 하다가 하객들끼리 서로 안부를 묻고 결혼식은 보지도 않은 채 빨리 밥 먹으러 가자, 하는게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지 않나? 웨딩플래너라는 나도 그렇게 결혼식을 대충 본 적이 있다. 나쁘다는 자각도 없이 말이다. 두 사람은 그런 결혼식이 자신들의 결혼식이 되는 것이 정말 싫었다고 한다. 신부가 원하는 것은 화려하고 블링블링 신부가 돋보이는 그런 결혼식이 아니었다.  큰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직접 준비하고 직적 결정해서 우리의 색을 드러낼 수 있는 가족,친구 모두가 눈 맞추고 행복할 수 있는 결혼식이었다. 그렇게 평생 두고 두고 추억해도 웃음이 번지는 작지만 의미있는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제대로 이해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결혼준비를 완전히 멈춘 채 일 년 반쯤 지나는 동안 신랑, 신부와 가족은 천천히 살아가며 결혼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그 갈등들에 대한 상처를 치유했다. 양가 어른들께 인사도 다 드린 상황이었고 결혼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에 제대로 하고 싶은 결혼식이 그 길을  잘못들어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결혼준비를 완전히 멈춘다는 것은 자신들의 결혼식에 대해 완전히 진지하게 또 간절히 생각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몇 시간 결혼식이 뭐 그렇게 중요해? 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또 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결혼식을 하면 되는 것이다. 누구나 결혼식을 공들여 준비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의 삶 중 큰 한 점인 결혼식에 대해 나는 이 이야기 속 두 사람처럼 진지했을까? 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내 가슴 속에서 두근대는 화두가 되었다.     

문득 이제 결혼을 해도 되겠다, 하고싶다는 신호는 어느 날 번뜩 그렇게 그들에게 왔고 한번의 상처 이후였기 때문에 차분히 그리고 소박하지만 하나 하나 두 사람이 직접 알아보고 직접 결정하고 하면서 다시 결혼 준비를 시작하였다. 무려 일년 반이나 지나고지만.  

    

사실 시부모님 입장에서야 지지해줬다기 보다는 “졌다 졌어” 하는 맘으로 따라줬을 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일년 반이 지나고 치룬 결혼식은 이태원의 마당이 있는 작은 까페에서 이뤄졌고 컬러 컨셉부터 드레스 코드 그리고 사회자며 결혼식 축사 식순에 이르기까지 하나 하나 두 사람이, 아니 신부가 기획한대로 진행되었다. 적당히 해치우는 결혼식이 싫었던 신랑 신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결혼식은 오렌지와 블루로 꾸몄다. 오렌지로 꽃장식을 하고 스테이셔너리는 여름에 어울리는 블루를 썼다. 하객들에겐 드레스코드도 블루로 정해주었다. 흥겹고 좋은 음악을 계속 틀어두었고 들러리들은 하객들에게 자잘한 안내를 하면서 도왔다. 공들여 고르고 고른 사회자는 그날의 식을 너무 가볍지 않게 만들어줬고 직접 방문 상담해가며 예약한 동영상업체는 그날의 기록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하이라이트는 성혼선언이었다. 어른이고 아이고 친구고 친척이고 할 것 없이 함께 해 준 하객 모두가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한 목소리로 선언해 준 것이다.   


  

청첩장에 이미 성혼선언을 하객 모두에게 시킬 작전이 표기되어 있었다.

               

인터뷰 중 그 때 얘기를 하면서 나도 신부도 다시금 소름이 돋았다. 자잘한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행복한 결혼식이 아닐 수 없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시부모님께서도 너무나 흡족해 하셨기 때문이다. 식이 끝나고 신부에게 너무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고 그냥 멋부리고 하는 결혼식을 하고 싶은 건가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고 이렇게까지 가족이 진심으로 식에 집중할 수 있는 따뜻하고 즐거운 결혼식을 하고 싶은 건지 몰랐다고 하셨다고 한다.


시부모님의 친구분들께서도 평생 초대받았던 결혼식 중에 가장 좋았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셨고 말이다. 시부모님들의 그런 극찬을 듣고는 맘고생이 컸던 신부는 그동안의 마음 속 응어리가 봄눈 녹듯이 녹아버렸다고 했다. 이 얘기에는 단 한 사람도 나쁜 사람이 없다. 다만, 한국사회에서는 생소한 진지하고 가족과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의미있는 결혼식이 너무 낯설다는 점이 모두를 힘들게 만든 것 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듣는 축하의 말은 그냥 그렇게 축복이다.
성의를 다해준 두 사람은 이렇게 맞춰서 빼입고 와서  베스트드레서 상을 수여했다.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신랑의 축가 시간.



나는 신부에게 얘기했다. 두 분의 적당히 형식을 취하는 결혼식말고 충분히 만끽하는 결혼식에 대한 뚝심이, 그렇게 해서 만들어 낸 이 따뜻하고 훌륭한 결혼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준 감동이 우리 나라 결혼식 문화를 많이 바꾸게 하는 데 일조할 것 이라고, 정말 고생하셨다고 말이다. 갈등이 극에 달하는 전개과정이 있었지만 더할 나위없는 해피엔딩이었다. 딱 이 결혼식만큼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대요...하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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