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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희 Jun 24. 2017

할.쓸.신.명

할수록 쓸모 있는 신비의 명약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어 봄부터 6월 중순이 되기까지 삼일에 한번 병원에서 자는 생활을 하고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삼일에 한 번은 집에 못 간다는 것은 생활을 헝클어뜨리기 충분하다. 

그런 중 병원에 앉아 TV를 보는데 여행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요새 반해버린 알쓸신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나? 


전 세계로 번역되어 팔리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와 낮은 눈높이에서 알아듣기 쉽게 뇌과학을 전파하는 천재 뇌과학자, 정치계 스타에서 전업 작가로 시사평론가로 급기야 예능에서도 팔리고 있는 에세이 작가, 까칠하고 박학다식한 푸드 칼럼니스트 그리고 아련하고 아름다운 발라드 히트곡의 작곡가이자 DJ 이자 방송인 이렇게 다섯 명이 통영도 가고 순천만을 넘어 강릉에 경주까지 가는 방송을 보고 있자니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침이 꼴딱 꼴딱 넘어간다. 가고 싶고 먹고 싶고 보고 싶고 누리고 싶은 그 모든 여행이 침샘을 쿡쿡 찔러대는 이유다.


     

살아온 인생에 대해 큰 후회가 없는 편이다. 어차피 다시 살아도 미래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크게 다르게 살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안타깝고 상대 없이 서운한 부분이 있다면 ‘여행’이다. 

누군가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여행의 재미를 제대로 알게 해줬다면 어땠을까?

여행이라는 행위가 소비하는 척 하지만 실은 무한 배수로 채워 넣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더라면 

기꺼이 더 많이 여행했을 것이다. 

누굴 탓하랴. 책 읽기 그렇게 좋아했던 내 손으로 여행 에세이 한 권 제대로 빼 읽지 못했는데.    

 

여행의 마음은 그렇다. 정지선이나 구획선 같은 표지를 무시한 채 덜 효율적으로 ‘효율’이라는 단어조차도 모를 때처럼 막 나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는 낮에 해가 뜨거울 때도 맥주를 마시고 컴컴한 밤에도 눈 맞추자마자 바다에 뛰어들기도 한다. 위험한 건 안다. 하지만 그 순간 여행의 마음을 참지 않고 그저 바보처럼 철부지처럼 해버리는 마음의 쾌락이 또한 짜릿하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낮술이나 밤수영 말고 크게 곤란한 행동은 해보지도 못 했다. 뭐라도 막 해보고 싶지만 낮에 길에 앉아 마시는 맥주 한 잔으로도 일탈의 욕구는 어느새 해소되어 버리는 그런 그냥 소시민이다.    


 


어렵사리 안 되는 시간과 없는 돈을 쪼개고 짜내 여행을 가서 낮 맥주나 마시고 오는 그런 시간을 나무라는 

어른들도 있겠지만 진짜 문제는 그런 여행, 그런 작은 일탈만으로도 해소되는 그 욕구를 안으로 꾹꾹 눌러 담고 삭히며 살아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동안 참고 살면 마음은 변비에 걸리고 나중에는 관장을 해도 시원한 

해방감을 느끼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산해진미도 맛이 없고 같이 먹는 사람들에게도 짜증이 나고 얼굴은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고 푸석푸석 못생겨진다. 그럼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괜스레 남들과 비교 해대고는 자기를 자책한다. 더 나쁜 것은 위로랍시고 자기를 비정상적으로 치켜세우고(스스로 말이다) 잘 살고 있는 남들을 공정하지 못한 기준에 맞춰 비하하는 찌질하고 아픈 인간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열대야의 납량특집이 따로 없다.  


   

그러니 갈 수 있을 때 쪼개고 쥐어짜 내서라도 갈 수 있다면 어디라도, 옆 동네 뒷산이라도 오르자. 

내 마음이 잠깐 귀여운 탈선을 하게 내버려 두는 건 소비는커녕 낭비가 절대 아니다.  치유다. 

그 여행을 통해 얼마를 쓰고 며칠을 쓰던 살아있는 남은 시간 동안 마음의 건강을 위한 예방접종이고 치료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얼마인들 아까울 수가 없다.


 여행은 내 마음, 내 영혼을 달래는 짓이다. 근사해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여행을 미루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행은 해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명약인 것이다. 

가장 저렴한 숙소에서 자고 산해진미는 먹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좋은 청바지를 사느라, 백을 사느라, 차를 바꾸기 위해 여행을 미루지 말고 

여행을 하기 위해 청바지, 백, 차를 포기하는 게 좋겠다. 

틈틈이 여행을 하는 삶을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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