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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희 Jun 18. 2020

진짜 인연은 타이밍

곁에 있어도 놓치고 놓쳤다가도 이어지는 인연이란 것

전 세계 어디서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연애의 법칙 중 하나,

연애는 타이밍 이란 거다.     


느긋하게 쉬는 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뒹굴뒹굴하면서 생각을 해본다.

결혼을 하고 남친이었던 남자가 남편이 되고

큰 아들이 되고 애물단지가 되는 과정을 겪어보니 나를 스쳐 지나간 숱한 남자들 중 지금 나의 이뻐 죽겠어서 미쳐버리겠는 남편보다 못난 놈들이 별로 없다. 키가 훨씬 큰 놈도 있었고 얼굴이 잘 생긴 놈도 있었고 똑똑하거나 돈 많은 놈,

돈 잘 벌 길이 정해진 놈들은

물론이고 자상하거나 다정한 놈들이 널려있다.

나는 어쩌다가 나는 이 남자랑 결혼까지

하게 되었을까?


    

그녀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솔, 라톤의 목소리에 그 보다 더 높은 웃음소리는 가끔 요란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키 크고 통통한 체격 때문인지 손뼉 치면서 웃기만 해도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그런 신부였다.

상담을 왔을 때부터 질문도 많았지만 대답을 하는 나만큼이나 자기 얘기도 많이 하는 신부였고

드레스 볼 때 웨딩촬영할 때 떠나갈 듯이 웃고

까불고 농담하는 그녀는 시끄러웠지만

사랑스러웠다.


밝고 발랄한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행복해하고 있어서 더 그랬다.

그녀의 좋아 죽겠어, 신난다 하는 마음이 전달되어다 같이 어느 정도 들뜨는 기분이 되곤 했다.


결혼식 날, 정말 공주 같은 드레스를 입고

상기된 그녀의 볼 빛 같은 옅은 분홍색의 부케를 들고

신혼여행 다녀와서 꼭 연락하겠다면서

메이크업샵에서 나갈 때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후 수상소감이라도 하듯이

원장님께 고맙고 헤어 선생님께 고맙고 나한테 고맙고

또 암튼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면서

수상?소감을 남기고

행복한 신부의 모습으로 웨딩홀로 향했다.


     

조금은 통통한 신부에 비해 마르고 왜소한 체격의 신랑은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신부가 아무리 까불면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도 그 끼를 다 발산하도록 곁에서

계속 웃어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일식당의 셰프였다고 했는데 조용하고 섬세한 모습이 직업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곧이어 결혼하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엄지를 치켜세워주면서 나를 소개했고 한 1년쯤

그 친구들까지 여러 명 인연이 닿아 결혼 준비를 도왔다.

그때마다 그녀의 안부를 물었고 형식적이었는지 몰라도 잘 지낸다는 답을 듣기도 했다.      




3~4년쯤 지났을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사무실로 놀러 오겠다고.

그 발랄하고 친근한 신부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라 정말 지나는 길에 들르나 보다 했다.

차를 내어드리며 앉자마자 그녀는 내게 잘 지냈냐고 물었고

항상 똑같죠 뭐, 라면서 신혼재미를 물어보려는 찰나


“전 잘 못 지냈어요”


라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     

이 직업을 통해 생긴 나의 촉으로 나는 불안해졌다.     

불안은 적중했다. 그녀는 이혼을 했다고 했다.

맘 카페 회장님이라도 되어서 신나게 살고 있을 것 같았던 그녀가 이혼을 했다니 충격적이었다.     


3~40분 동안이나 웃음기 없이 얘기를 하는 그녀가 낯설고 안쓰러웠다.

연애도 결혼생활도 양 쪽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거지만

두 사람은 연애 말고 생활에서는 지독히 안 맞았던 모양이다.

많이 싸웠고 서로를 상처 입혔고 자꾸 엇나갔다고 했다.

게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신나게 살다가 일찍 자는 그녀와

느지막이 일어나서 출근하고 거의 새벽에 퇴근해서 게임을 하거나 반주를 하며 식사를 하는

남자의 생활패턴이 너무 다르니 그 갈등이 거의 매일 싸움의 소재가 되었다고 했다.     


이혼한 지 1년 좀 넘었다고 지난 얘기를 마친 

그녀는 그제야 이제 괜찮다는 듯 다시 활짝 웃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안절부절인 나에게 그녀는 다시 또 놀랍게 한마디 했다.


이제  괜찮아요.

그리고  이제 진짜로 행복해요


네? 방금 전까지 이혼 얘기하고 있었는데 행복하다고요? 그녀는 새로운 남자 친구와

지금 결혼 계획을 세우고 있고 결혼 준비를 다시 나에게 맡기기 위해 왔던 것이었다.

다시 결혼을 해도 결혼 준비는 나와 함께 하고 싶은데 남자 친구랑 왔을 땐 모른 척해달라고 당부하려고  미리 찾아온 거였다.     





그 당시 나는 내 맘 같지 않은 연애들 때문에 30대의 친구들과 30대가 가고 있는 걸 두려워했던

누구나였고 아무나인, 연애 루저였다.

그렇게 오락가락 방황하면서 도대체 나만 사랑해주는 그런 잘 생기고 다정하고 능력 있는 데다가

나랑 코드(까지 철썩)가 맞는 그런 남자는 어디 있는 거냐고 징징대던 찌질한 나이 먹어 가는 직딩였는데

그렇게 다시 또 행복하다는 그녀의 두 번째 결혼 소식은 뭐랄까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행복은 사람을 보고 찾아가는 걸까?

그 행복한 그녀는 왜 다시 행복한 걸까? 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냥 행복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을까?라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그 얼굴을 못 봐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행복한 얼굴은 바로 이런 얼굴!로 얘기했으니까.

아, 그리고 이 이야기는 지금부터 10년도 훨씬 전 얘기라 그녀가 현재 아들 딸 낳고 얼마나 신나게

진짜로 맘 카페 회장님 같은 걸 하면서 얼마나 요란하게 많이 웃으며 살고 있는지

이미 증명되어 버렸다. 그러니 의심은 넣어두시길.     


그날 동료들과 아마도 삼겹살에 소주라거나 감자탕에 소주라거나 치킨에 맥주 같은 걸 먹으며

게걸스럽게 얘기했던 거 같다. 우리의 계속 쌓여가는 실패의 연애,

그리고 그녀의 다시 시작된 그 넘치는 행복에 대해서.

뭐랄까 남자들이 당구에서 대패하고 나서 반성 당구 치듯이

연애 반성 당구 같은 맘으로 넌 이래서 안되는 거야, 넌 이거 때문에 자꾸 실패하는 거야 라며


  



결혼 준비를 해가는 과정에서 그녀와 수다도 많이 떨게 되고 더 깊은 얘기도 듣게 되었는데

그 두 번째 결혼하는 남자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었던 첫 남자 친구이라고 했다.

세상에 둘 도 없는 잉꼬 커플였고 한 동네 친구였다 사귄 거라 주변 친구들과도 모두 친구이고

서로 소식을 다 아는 그런 사이, 부모님들도 다 아는 그런 사이,  그러다가 사귄 사이 말이다.   

   

그 남자와 있을 때 그녀는 똑같이 텐션이 높은 사람이긴 했지만 뭔가 달랐다.

들떠있다는 느낌은 없이 그냥 행복하고 또 편안해 보였다.

어쩐지 좀 더 어른처럼 느껴졌고 억지스러운 느낌이 없었다.     

 

"원래 제 인연은 이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아마도. 근데 너무 어릴 때 만나고 다른 사람은 만나본적이 없으니

어느 순간 시시해 보였던 거 같아요. 그리고 내 인생에 남자는 이 남자뿐이다 라는 게 너무 바보 같이 보였고

뭔가 지루한 거 같고 그럴 때 전 남편을 만났던 거죠. 매사 모든 게 달랐던 그 사람에게 그때 빠졌던 건

새로움에 대한 갈망 같은 것도 있었던 거죠. 제가 실수한 거죠. 괜찮아요. 이제 행복하니까"

     

그녀가 아이 같지 않게 사랑받아서, 또 사랑해서 생긴 여유로 웃으며 얘기하는 걸 보면서

그건 실수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 첫 남친, 운명의 그 남자가 지루해지기 시작했을 때 만난

첫 남편과 연애만 대충 하다가 말았다면 어땠을까?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모두 해소되지 않은 채로 다른 사람, 다른 인연을 찾아다녔을지 모른다.

그 당시 나와 내 동료들처럼 매일 퇴근 후 자기 연애를 반성하면서

방황하는(물론 더할 나위 없이 낭만이 가득했고 곧장 성공하지 않은 찌질한 숱한 연애들 때문에 아름다운 추억이 넘치는 바, 절대 후회는 없다) 싱글 시절을 길게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덜컥 결혼을 해버려서 성향과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과 세계관이 다른 남자랑은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발견을 하게 되어서 내 옷처럼 내 몸에 잘 맞던, 손 내밀면 항상 거기 있던 그 동네 첫사랑과 다시 사랑하고 다시 시작하고 더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나이 먹고 오래 겪으면서 현명해지거나 깨닫는 거 말고 짧은 기간 매운맛으로 하드코어 하게 겪고 자신의 운명의 상대를 알아보게 된 거라고 말이다.




인생은 길다, 힘들고 아팠지만 그 뒤에 다시 딛고 일어나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는데 그녀의 첫 결혼이 정말 실수 이기만 할까? 물론 실수이지만 부끄러워하거나 도려내야 할 인생의 흠은 아니다. 그 실수가 그녀의 꽃을 피우게 했고 그 시간들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하게 한 거다.


긴 그녀의 인생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는데 첫 결혼이 없었다면 상처 입은 그녀가 익숙하고 편안한 연인에게 위로받고자 하는 상황도 없었을 것이고 어쩌면

동네 첫사랑과의 인연은 그냥 잊힌 어린 시절 첫사랑으로 빗겨버렸을 수도 있을 거다.



그즈음 다시 30대 연애 루저들끼리 퇴근 후 모여

서로의 연애를 지적하고 충고하던 어느 밤


“그냥 해, 무슨 연애라도 해. 일단 열정적으로 연애를 해라고오...
어떤 방식으로든 분명히 니게 훈장이 될 거야.”


라고 목청껏 외쳤던 거 같다.


“진짜 인연을 알아볼 수 있도록

타이밍이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너를 아니 그래 나를 현명하게 만들어줄

훈장이 될 거야

(라고 열변을 토하며 )

여기 500 하나 더 주세요

우리 지난 연애를 애도하고

연애 최적화될 토양을 위하여 건배!”


그렇게 우리는 또 연애 쭈구리로서의 밤을 보냈고

그녀는 훨씬 잘 어울리고 잘 맞는

진짜 짝꿍과 행복한 부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3년 만에 나타나 진짜 힘들었을

얘기를 나에게 믿고 얘기해준 그녀는

그때 이미 어느 정도 성장을 했던 상태였다.

진짜 박터지는 부부싸움은 연애하면서 하는 커플 다툼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힘들다. 남자 친구랑 여자 친구랑 끔찍하게 싸우더라도 끝나면 돌아갈

홈 스위트홈이 있어서 엄마 밥 먹으면서 휴식을 할 수 있는 게 커플싸움이라면

부부싸움은 갈 곳이 없다. 결혼하고 가는 친정은 내 집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녀는 아마 그녀의 해맑고 신나는 인생 중 어쩌면 처음으로 자기를 정말 치열하게 돌아보는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바닥을 칠만큼 힘들게 다투고 이혼을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자기가 언제 행복할지 언제 불행할지, 스스로 어떤 걸 원하는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러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사실 평생 동안 결국 자신이 진짜 언제 행복한지를 언제 불행한지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러므로 자신의 보석을 찾게 되는 여정이라면 아픔이 없을 리 만무하다.     

센 어퍼컷 한 방으로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그녀처럼.

숱한 쨉들과의 실패한 연애들을 흘려보내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겠지.

나를 성장시켜준 나의 쨉들은 어디서 모두 잘들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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