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플래너를 만나는 사람들이 많이 건네는 말이다. 물론 아주 다른 말은 아니다.
설레면서 결혼 준비하는 예비부부를 만나고 그 설렘을 전달받아 종일 괜스레 기분이 좋은 날이 물론 있다.
그렇지만 의외로 우리처럼 파혼의 민낯을 많이 보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행복할 기대만 하기도 벅찰 것 같지만 사실, 두 가족의 합을 맞춘다는 것이
또 각자의 결혼의 로망을 맞춘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웨딩플래너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니까 2000년대 초반이었다.
만나는 신랑 신부님들은 너무 달달하고 웨딩드레스도 예쁘고 헤어 메이크업에 의한 변화는 신기하기까지 했던 그 시절
홈쇼핑 쇼호스트를 하던 연예인 못지않은 미모의 신부님과 수더분한 인상의 신랑님은 결혼 준비 내내 가는 숍마다
업체 분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예비신부는 시종일관 애교가 넘쳤고(사실 그렇게 애교 넘치는 러블리한 태도로 좀 더 좋은 거 좀 더 비싼 것을 하자고 했고, 신랑은 그래그래 자기 더 좋은 거 하자고 했다.) 그렇게 막냇동생 같은 신부에게 예비신랑은
자상함의 끝판왕이었다. 신라호텔이 예식 장소였고 한복도 드레스도 헤어 메이크업도 당시로는 최고급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드레스 보러 갈 때와 한복을 보러 갈 때 항상 친정어머님이 함께였는데 신랑은 예비 장모님까지 끔찍하게 챙겼다.
나도 동료들과 수다 떨 기회가 생기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 커플의 다정함을 자랑??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랑님한테 전화가 왔다. 그 당시 보통 신랑님들과 다르게 결혼 준비에 직접 많은 신경을 쓰시는 분이긴 했지만
보통 연락은 신부와 해왔기 때문에 응? 무슨 일이지?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고 통화 이후 멘붕에 빠졌는데 파혼 소식 때문이었다.
오마이 갓.
세상 일 정말 알 수가 없었구나 싶었다. 근데 그다음 더 놀랐던 것은 그래도 둘이 너무 사랑해서 결혼까지 생각한 거였을 텐데
예식장 신라호텔 계약금에 위약금, 한복집 잔금(이미 옷이 나와있었다.)까지 모두 신랑 측에서 결제를 하라고 신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랑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웨딩 쪽 잔금(그때 이미 웨딩도 상당 부분 실행이 되어있었다.)은
신부 쪽에 청구해줄 수 있겠냐고 했다. 처음 겪는 파혼이라 놀라기도 했고 그 당사자들의 반전에 더 당황했지만
신랑님이 지불하고 있는 금액이 또 너무 큰지라 용기를 내어 신부에게 전화를 걸어 안타까운 소식은 들었다고
그런데 이미 촬영 등 진행이 된 잔금처리를 조심스레 말씀드렸는데 정말 그 애교 넘치던 신부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결혼을 안 한다고 한 것이 신랑이니까 나한테는 얘기도 꺼내지 말라고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결국 신랑이 모든 비용처리를 했더랬다.
몇 년 전 파혼한 신랑 신부는 두 사람 모두 푸근한 인상의 유난한 구석이 없는 차분한 커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부가 전화를 걸어와서 파혼을 하게 되었다면서 하소연을 했다. 드레스 투어 할 당시 특별히 자상하지는 않았어도
신부의 드레스를 하나하나 스케치하던 신랑이었는데 결국 파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시어머님이 예단을 무리하게 요구해서
였다고 했다. 현금 외에도 밍크에 명품 백에 그 외 고가품들을 계속 요구하시는데
이미 신혼 집도 신부 측에서 반 이상 보탠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단지 예단을 많이 요구하는 것뿐 아니고
시어머님의 태도가 다소 강압적이고 우리 귀한 아들....에 대한 자부심과 간섭이 지나쳤었다고 한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미련이 있었는지 파혼을 하는 게 맞겠죠?라고 묻는 신부에게
이미 나이도 많이 먹었고 결혼도 한 나는
“그 얘기들이 사실이라면 신부님이 하려는 결정이 맞을 것 같아요.
다만, 개선의 여지가 있을지 신랑님과 마지막이다 생각하시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는 해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조심스레 건넸다. 그런데 결국 그분들은 파혼하는 게 맞는다는 판단을 얼마 지나지 않아 하게 되었는데 신부가 신랑에게 최고급 원단으로 슈트와 코트를 해줬는데 그 옷들 때문에 신랑 측의 본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 당시 그 맞춤 슈트 숍은
계약할 당시 총 금액의 50%, 완성 때 잔금 나머지를 결제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미 신부가 50% 결제를 해놓은 상태에서 옷은 완성이 되었는데
파혼이 결정 난 거라 신부 입장에서는 신랑 몸(다소 뚱뚱하셨다.) 에 맞춘 옷 들이니까 남은 금액을 신랑 측으로부터 받으라고 했다. 그런데 그 신랑의 어머님이 내가 언제 옷 해달라고 했냐며 입지 않겠다고 정색을 하시더라는 것이다.
맞춤 슈트 숍에서는 이미 공임을 들이고 옷감을 들여 옷을 만들어놓았는데 잔금은 치르지 않겠다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상태에서 신부에게 받기도 그러니 옷의 주인에게 잔금을 청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어머님이 나중에는 험악한 욕설까지 하면서 결제를 거부했다고 했다.
그 일로 마무리 통화하면서 신부님께 분명히 좋은 인연을 만나 지금 겪는 이런 일들이 기억도 안 나는 때가 올 거라고,
결혼 전에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너무 맘 쓰지 마시라고 얘기해드렸다. 진짜 언니 같은 마음으로 안타까웠던 기억이다.
언젠가 한 번은 결혼을 한 신부가 3년 만에 연락이 와서는 그동안 그 사람과는 헤어졌고 다시 결혼을 한다며
다시 또 도와달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요리사였던 신랑님이 술 문제와 폭력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재혼해서 아주 잘 살고 계신다.
언젠가는 정말 드라마틱하게 결혼식 2주를 남기고 신랑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서 파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파혼하고 몇 년에 걸쳐 두 사람 각자 다른 이들과 결혼하여 현재는 아주 잘 살고 있다.
그때는 힘들었겠지만 결국 운명의 사람을 조금 돌아서 만난 것은 아닌가 싶다.
웨딩촬영 며칠 전, 결혼식 전 날 전화 와서 모든 일정을 취소해달라고 했던 분들도 많이 있다.
카카오톡 덕택에 가끔씩 프로필 사진에 보면 그런 분들이 토끼 같은 아이들을 낳고 알콩달콩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또 그 모습이 얼마나 흐뭇한지 모른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것처럼 꽃길만 걷는 것은 분명 아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를 믿고 지켜낼 수 있는 확신이 있다면 이겨내지 못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다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한두 사람도 아니고 한두 세대도 아닌 두 가족이 만나 그 안에 또 다른 가족을 이뤄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나의 반쪽에게 그 어려운 일을 나와 함께 하려고 애쓰는
나의 반쪽에게 더 깊은 애정과 신뢰를 쏟아야 할 것이다. 위 파혼을 한 불행한 커플의 이야기는 남 얘기일 뿐이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당신들이
행복한 남 얘기, 부러운 남 얘기, 남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어쩌면 기운이 빠져 있을지 모를 웨딩성수기인 5월 6월이지만
당신이 부러워하고 있는 그 친구에겐 사실 또 어떤 힘든 사연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 글을 보는 예비신랑신부들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꽁냥꽁냥한 내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더 사랑하는 결혼 준비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