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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Jul 26. 2016

그녀의 '덫' #32

사랑의 무게

그 무엇도 무경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가 온몸으로 내뿜는 독한 '살기'때문에...


나 역시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무경에게 다가갔다.


"무경씨... 그만해.."


그가 날 바라보았다. 초점을 잃은 그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어둡고 차가웠다.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등을 껴안았다.


"그만. 이제 충분해."


그런 날,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무경.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경찰관이 바닥에 쓰러진 동진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코 뼈가 부러진 듯 코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동진의 아내가 뛰어가며 비명을 질러댔고, 하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경이 경찰서 한가운데에 서서 날 바라보았다.

아무 말이 없는 그의 고요함에 나 역시 그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며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마주 보고 있었다.








잠시 후, 경찰서 앞으로 응급차가 도착하였고, 구조대원이 안으로 들어와 동진을 데리고 갔다.

이어, 기별을 듣고 시창과 승주, 그리고 강변호사가 찾아왔다.


"왜 그래? 대체 무슨 일이야?"


강변호사가 경찰관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 평소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무경에게 다가간 시창. 그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승주.

대꾸가 없는 무경 대신 날 쳐다보는 시창.


"예랑씨, 무슨 일이에요? 설명 좀 해줘요."

"그게......"


그때, 승주가 앉아있는 무경에게 다가갔고,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무경아, 너 손 좀 봐."


자세히 보니, 무경의 오른쪽 주먹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동진을 때릴 때 다친 게 분명했다.

승주가 그의 손을 잡아 유심히 보려는데, 그런 그녀의 손을 무경이 뿌려친다.


"그냥, 내버려둬. 머리가 아파."


그의 낮은 목소리에 승주가 천천히 일어섰고, 곧바로 나에게 다가왔다.


"예랑씨, 인사는 생략할게요. 지금 무경이 상태가 안 좋아요. 손 말고."

"네?"

"요새 증세가 안 좋았어요.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나 좀 도와줄래요?"


그녀의 눈 짓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무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단단하게 굳어있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어 만졌다.


"무경씨."


꼼짝하지 않는 무경. 난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자기야, 나 좀 봐봐."


잠시 후, 그가 얼굴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날 바라보았다.

초점을 잃어 희미한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주었다.


"괜찮아?"

"그냥 혼을 내주려 했던 건데, 멈출 수가 없었어."


그의 이마에 천천히 이마를 갖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별 일 없을 거야. 그럴 때가 있어. 괜찮아."


한참을 그에게 속삭이며 달래주었는데, 잠시 후 그가, 호흡이 편안해지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옆으로 미끄러지듯 쓰러졌다.

그의 곁으로 승주가 다가와 체크를 했다. 그러더니 뒤돌아보며


"진정이 된 것 같아요. 응급차 좀 불러주세요. 병원으로 이동할 거예요."







또다시 응급차가 경찰서 앞에 도착하였고, 무경은 승주와 함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같이 가겠다는 내 말에, 승주가 고개를 저으며


"상황이 좋지 않아요. 지금은 검사가 우선이에요. 먼저 움직일게요."


그를 태운 응급차가 점점 멀어지자, 그 모습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시창이 하나를 챙기며 다가왔다.


"예랑씨, 누나랑 같이 집에 가요. 데려다 줄게요. 승주 누나가 알아서 할 거예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난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하나가 짤막하게 시창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었고, 얘기를 듣던 시창이 날 흘끔 쳐다보며


"형이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이렇게 이성을 잃은 모습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의 위로에도 난 경직된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있었다.

몸에 한기가 올랐다.

나 때문인가......








집에 도착하자 시창이 하나와 날 집 안으로 데려다주며


"내가 병원에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요."


그를 보내고, 난 침대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방 한쪽에 멀뚱히 서 있던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해. 나 때문에."


그런 그녀의 모습에도,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옆으로 누워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래, 괜찮을 거야. 내일이면 모든 게 돌아올 거야. 그래, 그럴 거야.'


눈을 감으니, 자꾸 무경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를 말리던 날 보던 그의 눈은 차가웠지만, 슬퍼 보였다. 그리고 그의 눈 빛은 마치 날 처음 보는 사람과 같이 낯설었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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