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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림 Mar 15. 2016

#1 - 그곳에 너

많은 사람 중 너를 만나

글 - 관우림

그림 - 정아 (인스타그램 - lint3113)


고양이는 정이 없다. 어떤 여자가 고양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바람은 아직 겨울을 식혀내지 못했지만 태양이 바른 곳만큼은 따뜻했다. 고양이는 봄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배를 깔고 있었다. 여자는 그 앞에 앉아 고양이를 들여다봤다. 고양이는 그녀를 개의치 않았다. 꼬리 끝만 살랑살랑 움직였다. 책에서 봤는데 고양이는 꼬리로 대답을 한단다. 자고 있을 때 꼬리를 가볍게 흔드는 것은 자신을 부르는 건 알지만 일어나는 게 성가시다는 뜻이라고 했다. 어제저녁 집 앞에서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골목 어두운 곳으로 사라졌던 고양이가 떠올랐다. 낮 고양이는 밤 고양이에  범하지만 사람을 귀찮아 하기는 마찬가지다. 낮 고양이는 혼자 있고 싶어서, 밤 고양이는 생존을 위해서 사람을 멀리한다. 프랑스의 시인 테오필 고티에가 그랬다. “고양이의 우정을 얻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무모하게 우정을 나누지 않는 철학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실용적인 관계론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예찬하기도 하겠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정이 가질 않는다. 사람이 번거롭다니.

 

여자는 자신의 코트 자락이 땅에 끌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했다. 도둑고양이들의 이름을 모르듯 여자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다른 호칭을 사용하고 싶지만 나로선 그녀를 그녀 혹은 여자라고 부르는 것이 최선이다. 모르는 이에게 다가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만큼 나는 여유롭지 못하다. 여자를 본 최초의 순간을 나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 세상에 태어나 가진 첫 번째 기억이 무엇인지 콕 집어낼 수 없듯이 나는 내가 그녀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녀가 어떤 옷을 입었었는지, 그 날의 날씨는 어땠었는지, 그곳이 어디였었는지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녀를 몇 번이나 마주쳤었는지도 물론 알 수 없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위에서 아니면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동네 카페에서 멍하고 앉아 있다, 혹은 카페 안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거나,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 그리고 계산하다, 극장에서, 식당에서, 어떤 날은 그녀의 바로 뒤를 따라가기도 하고, 앞으로 나서기도 하며, 때론 그녀를 발견하기도 했고 그렇지 못하기도 했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관계를 맺었지만 그 관계는 짙어지지 않았고 어떤 색으로도 칠해지지 않았다. 그녀를 귀찮아하는 저 고양이처럼, 어젯밤 나를 발견하고 동네 어디론가 숨어버린 그 고양이처럼 나는 사람들을 번거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곁에 있었지만 또한 없었다.


지난여름 그녀의 어떤 모습을 기억한다. 그 날 오후 동네 골목 – 골목마다 이름이 있긴 하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 에서 앞서가던 그녀가 눈길을 끌었다. 여자는 하얀색 바탕에 검정 줄무늬로 장식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베이지색 양말을 신었으며 그 위로 두 다리가 솟아있었다. 다리가 예쁜가 안 예쁜 가로 따지자면 그렇게 예쁜 다리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다. 다리는 골반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쁜 다리가 되기 위해선 골반이 커야 한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얇게 좁아져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내 기준이다. 아무튼 이 여자의 다리는 내 미의 기준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여자의 두 다리는 정직한 십일 자였다. 곤 색 짧은 치마를 입었고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얼핏, 내가 입고 있었던 차림새와 짝이 맞았다. 하지만 신발이 맞지 않았다. 아쉬웠다고 말해야 하나. 하얀색 티셔츠는 매우 얇아 보였다. 맹렬하게는 아니지만 속이 비쳤다. 그녀가 앞으로 걸어가면서 상체를 앞으로 움직이는 찰나가 오면 검은색 속옷이 희미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머리칼은 목 아래로 쭉 내려와 어깨 아래까지 뻗어있었다. 건강한 머리 결은 아니었다. 머리끝은 규칙성 없이 들쭉날쭉했다. 여자는 팔을 뒤로 하여 머리칼을 쥐고 자신의 오른쪽 어깨로 넘겼다. 하지만 충분히 길지 않은 탓에 완전히 넘어가지 못하고 이내 제자리로 돌아와 버렸다. 여자의 목선이 아주 잠깐 빛을 봤다. 그리고 빛이 났다. 마음이 동했다. 한 번쯤 말을 걸어볼까. 그렇게 한 블록쯤 갔을 때까지도 속도를 내지 못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 그녀의 어깨를 한 번 퉁 치고 ‘저기요’라고 말을 걸었어야 하지만 발가락에 숨어있던 번거로움이 머리에 가 종을 쳤다.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발가락과 타협했다. 여자를 지나칠 때쯤 비로소 그녀의 좌측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자는 표정이 없었다. 표정이 없는 건 혼자라는 뜻이다.


언젠가 H – 이제는 더 이상 만나지 않는 – 의 가슴에 귀를 묻고 누워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때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어?”

내가 가리킨 ‘그때’는 그녀가 나를, 나도 그녀를 알지 못하던 때다. H와 내가 만나기 1년 전 크리스마스. H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서다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졌다. 한 달을 넘게 깁스를 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녀는 집으로 내려오라는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가 불편함에도 H는 혼자 하는 생활을 지속했다. H는 깁스를 풀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그때 나에게 전화를 했었더라면 심심하거나 외롭거나 하지 않았을 텐데!”

H가 답했다.

“그러게 왜 안 했을까? 그런데 너는 왜 전화 안 했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내뱉고 공중으로 흩어져버린 시답지 않은 수많은 말들 중 일부에 불과했지만 그녀와 내가 언제 어디서 무심코 지나치며 관계를 맺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이름 모를 여자와 골목에서 마주쳤지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또한 고양이들처럼 말이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번거로움을 걷어내 버렸다면 그녀를 좀 더 일찍 만나 도와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녀를 어떤 수업에서 만났다. 두 달이 넘도록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그녀와 내가 처음 말을 섞은 것은 마지막 수업 이후였다.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그녀의 옆자리에 가 앉아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글쎄 예전에 나는 너를 왜 몰랐을까?”

과거의 너와 현재의 너는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그리고 그녀의 심장소리는 그녀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조금 전까지 여자는 내 옆에 앉아있었다. 둘의 거리는 가깝다고 말해도 되는 거리였다. 친한 친구에게 허락되는 거리가 약 50센티미터라는데 그것보다 가까웠다. 여자는 티라미수 케이크와 커피를 들고 내 옆에 와 앉았다. 그녀의 메뉴는 내 쪽으로 흘러 들어온 영수증을 보고 알았다. 그녀가 커피가 든 컵을 들 때는 팔꿈치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포크로 케이크를 떠 입으로 가져가 때는 팔꿈치가 몸에서부터 멀어졌다. 그녀에게선 딸기 향이 났다. 딸기 향은 그녀의 주위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었다. 향은 옅었다. 화장을 한 것 치고는 분 냄새나 향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게 눈을 굴렸다. 행여 들켜도 상대는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쪽에서 바라본 그녀는 옆모습만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의 얼굴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차라리 그녀의 얼굴을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녀였다.

창으로 들어오는 봄빛이 강해져 더는 자리에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자리를 옮기기 위해 카페 안을 둘러봤더니 마땅한 곳이 없었다. 오늘따라 카페 안 사람들은 모두 혼자였다. 두 명 이상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사람들은 모두 혼자 차지하고 있었다. 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카페를 나섰다. 옆에 앉아 있던 여자는 나보다 먼저 자리를 떴다. 그리곤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또 마주치겠지.’


그렇게 동네를 돌다 지금 이 곳에서 그녀를 다시 발견했다.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봄볕에 잠들어있는 고양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코트가 땅에 끌린다는 말을 해줄까 하다 그녀와 한 발자국씩 가까워짐에 따라 그 생각이 차츰 사라졌다.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해 줄 말은 아닌 듯싶다. 번거로움이 올라왔다. “얘 너는 혼자니?” 그녀가 고양이에게 묻는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고양이는 앞다리를 세우고 기지개를 한 번 켰다. 그리곤 어깨를 실룩거리며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버렸다.


그러다 바람이 불었다. 봄바람에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있다. 코를 빼 바람에서 나는 냄새를 조금씩 맡는다.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에게서나던 냄새가 난다 싶으면 하는 습관이다. 그리곤 그들을 떠올린다. 방금 코에 뭍은 향은 여자 친구가 집에서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어 옷이 마르면서 나던 향기다. 특별한 게 없는 내다. 사람들에게서 나는 향기 치고 특별한 건 없다. 다른 사람에게서 맡을 수 있는 냄새는 또 다른 사람에게서도 맡을 수 있는 법이다. 걸어가는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녀를 지나쳐 빠르게 걷는다. 나는 공기에 남은 발자국을 계속해서 뒤쫓는다. 고양이도 풀숲 사이로 사라졌다. 이번엔 그녀 대신 내가 사람들 틈새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흘러간다. 그들은 부딪히지도 않고 자기 갈 길을 잘도 간다.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가운데 어떤 이유로 그들이 부딪히지 않는 가에 대해 설명한 과학자도 있다지.

‘어제 주말은 잘 보내셨어요? 그럼 오늘은?’

‘저요? 저한테 물으시는 거예요?’

주위를 둘러본다.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이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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