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두 눈을 가려본다.
“어디 갔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분명 주머니 속에 넣어둔 것 같은데 없어졌다. 아주 소중한 물건이다. 어디서 잃어버린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왔던 길을 세 번이나 살피며 돌아봤다. 집안도 구석구석 찾아보았지만 밖에서 잃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돌아 올 때 근사한 거 잔뜩 사가지고 올게 기다리고 있어.’
눈을 마주하고 저음의 목소리로 내 귀를 울린 건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해외 인턴은 그의 목표 중 하나였고 좋은 기회가 분명했기에 조금의 망설임 없이 합격을 축하해 주었다. 1년 뒤엔 돌아오겠다는 계획이 확고 했기에 별 걱정 없이 보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이별의 순간은 무던할 수 없었다. 공항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를 보고는 그는 예상했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손목에 있는 시계와 똑같은 시계를 꺼내 나의 손목에 채워 주었다. 색깔만 다르고 디자인은 같은 시계였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출국장에 들어갈 때까지 그와 함께 하는 찰나의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시계를 채워주려 내 손목 위에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들을 전부 다 기억하기로 마음먹었다. 태연한 척 하던 둔탁한 그의 손 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슬프지 않게 그를 보내 주었고, 잠든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엔 항상 연락을 끊지 않았다. 따뜻한 품이 그리울 때면 어김없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째깍째깍, 하루 이틀,, 돌아오기로 한 1년 후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그렇게 그는 영영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꼭 찾아야 하는데… 아잇 깜짝이야!”
걸어온 골목길 여기저기를 찾아보는데 집중하다가 길고양이 꼬리를 밟을 뻔했다. 몇 년 째 우리집 앞을 어슬렁 거리는 녀석이다. 나를 보면 항상 도망가더니 오늘은 멀뚱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 건지 온 몸이 많이 부어 있다. 처음 집 문 앞에 있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이제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될 만큼 정이 들었다. 길고양이 답지 않게 항상 털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 누군가 보살펴 주는거라고 생각했지만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단번에 아니라고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길고양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털의 문양이나 윤기가 여느 떠돌이 고양이들과는 다르게 품종이 있는 것 같았고,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았다. 또 어딘지 모르겠지만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아 깔끔한 모습을 유지했다. 자기는 길고양이와는 다르다는 자부심도 있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은 주인에게 버림 받았거나 탈출해 온, 떠돌이 고양이라는 것이다.
몇 분 동안 앉아서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이 고양이도 그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5년 간 어김없이 집까지 나를 바래다주며 같이 고양이를 만났다. 처음엔 둘 다 놀라서 그가 발로 쫓아버린 적도 있었지만, 이내 반가워졌다. 정이 많았던 그는 영양이 듬뿍 들어있는 간식 캔을 사와 멀찍이 놓아주기도 했다. 병균이 옮을지도 모르니 만지지 말라고 했지만 기어코 몇 번씩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자기가 없을 때면 고양이가 나를 지켜줄지도 모르니 잘해줘야 한다는 말이 너무 예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보다 그의 향기를 더 잘 알고 있을 고양이었다.
‘어디 있을까.. 너는 알고 있니?’
몇 달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며칠 째 그와 연락이 닿질 않아 걱정을 하고 있었기에 좋지않은 느낌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불길한 예상은 대부분 맞아 떨어진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외국에서의 사고는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망사고의 경우 그에 비해 간단하다. 사고 현장은 보호자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정리되어 있어 확인 할 수 없다. 때문에 국내에서 소송을 진행한다 해도 현장 조사가 어려워 가해자의 유죄 입증은 불가능하다. 보호자가 도착하기 전 자국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미 판결이 나 있으며 이미 그들끼리 사건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다짜고짜 시신의 처리 방법만을 물을 뿐이었다. 사고에 대한 보험 관련 서류도 현지 언어로 작성되다 보니 그것을 해석하고 해결하는데 또 얼만큼의 시간을 흘려 보내게 된다. 그동안 그는 점점 더 차가워져 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어떤 방법으로든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했으나, 그것을 위해 시신이 병원에 머무는 비용은 기하급수 적으로 늘어났다. 모두의 설득으로 그의 부모님은 하루빨리 시신을 한국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꽤 많은 비용을 들여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비행기로 그를 옮겨 왔고, 따뜻했던 손은 아주 아주 차갑고 까맣게 변해있었다. 기다리고 있으라던 그의 목소리는 가슴에 묻었지만, 돌아올거라던 그의 말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왠일인지 도망가지 않는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털이 한 움큼 빠진다. 털갈이를 하는 걸 보니 어느새 봄이 왔나 보다. 어제 내린 눈송이가 나뭇가지 위에 여전히 남아있는데, 새싹들은 용케도 때를 알아 차리고는 올라온다. 칼바람 사이에서도 어김이 없다.
다시 찾아보기로 한다. 며칠째 보이지 않지만 아직 체념할 수 없는 물건이다. 부서져서 일부만이라도 좋으니 돌아왔으면 좋겠다.
“후- 찾았다”
꼭꼭 숨겨두었다. 일부러 꺼내보지 않거나 내 기억 속에서 없어져 자연스레 찾지 않고 싶은 것이었는데 그새 열어보고 만다. 역시 내 몸은 머리가 온전히 지배하는 건 아닌가 보다.
‘맞아. 이렇게 생긴 거 였지.’
그가 가장 안쪽 구멍에 고리를 끼워 내 손목에 채워준 시계. 색깔만 다르고 디자인은 같았던, 까다로운 내 취향 때문에 그가 한참을 가게 앞을 서성이며 고민해서 골랐을 나의 것. 그가 내 앞에 다시는 나타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고, 하나씩 정리하기가 힘들어 한번에 그의 흔적들을 나와 분리시켰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열어 볼 수 있는 곳에. 이별을 한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메모리에 있는 수 천 장의 사진들을 삭제하고 SNS를 끊어버리고, 그가 선물해준 물건들을 모두 버렸다. 그래도 너무 매정하지 않게 시계만큼은 남겨두기로 했다. 그의 운명이 나 또한 잔인하게 만든 것이 미치도록 미웠지만, 그도 선택할 수 없었던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떠올랐던 게 나였을 지도 모를, 만약의 슬픔을 위하여.
숨겨둔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으나 혹시 모를 기억의 삭제를 바라보며 두 번째 옷장 서랍 분홍색 바구니 안에 다시 넣어둔다.
룸메이트와 홈스테이 집 주인이 대충 정리해서 보내준 그의 짐은 배를 타고 한 달하고도 보름 뒤쯤 한국에 도착했다. 짐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회사에 반차를 쓰고 달려갔다. 비행기에 실려 돌아온 그의 손목에는 시계가 없었다. 잃어버렸다는 말이 없었으니 분명 그의 짐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매일 차고 다닌다던 시계를 왜 그날따라 풀어 놓았을까. 갑자기 서운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다행이었다. 사고 당시 시계를 차고 있었으면 응급처치를 위해 일찌감치 버려졌을 것이다. 한참을 샅샅이 찾았다. 몰랐던 그의 지난 시간을 알게 될수록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꾸만 저릿해져 왔다. 단조롭고 조용한 생활 속에서도 본인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던 그의 역사는 역시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울 만 했다. 내가 만들어준 선물들은 무심한 척 하더니, 왜 이리도 많이 챙겨 간 건지 시계를 찾는데 시간이 두 배로 든 것 같다.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줄거리를 이야기 해주던 수많은 책들, 우리가 함께 나눠가진 물건들, 얼리어답터도 아니면서 은근히 많은 전자기기들, 스타일에 무심하지만 어떤걸 입어도 잘 어울리던 무채색 단벌들을 보며 아끼던 말들이 생각나 머리가 지끈거린다. 자꾸만 눈 앞이 흐릿해지고 손과 무릎이 떨려와 중단하기를 몇 번, 내가 좋아하는 냄새가 묻어 있는 자켓 주머니에서 발견했다. 손목에 차려 했지만 너무 헐거워 잃어 버릴 것 같아 주머니에 넣고서는 그의 방에서 서둘러 나왔다.
“저 이만 가볼게요. 시계 찾았어요 어머니.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조심히 가렴”
얼마전에 나를 따로 불러서는 그동안 수고했다며, 나를 보면 아들이 떠오르니 더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오늘은 별 이야기가 없으시다. 내 몰골이 영 안 좋아 보여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한다. 너무 예민해져 스미는 바람에도 베일 것 같았다. 그렇게 몽롱하게 돌아오는 길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다.
일이 잔뜩 밀렸다. 이번 달 말까지 완성된 편집본을 넘겨주어야 하는데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꼬박 밤을 새도 다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신입으로 들어온 후배는 귀여운 표정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질문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티타임을 빙자한 회의시간에 잔뜩 적은 질문을 쏟아낸다. 짜증이 나다가도 또라이 팀장한테 한바탕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없던 친절도 샘솟아 모두 알려주기로 맘 먹게 된다. 그래도 그렇지 내 이미지 관리를 위해 이번 달 호를 펑크 낼 수는 없어 직접 마우스를 들었다. 프레임에 사진을 배열하고 원고를 다시 한 번 읽어 본다. 교정 담당자의 일처리가 정확하지 못해 내가 한 번 더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겨우 초안이 완성되었지만 안심할 수 없다. 아마도 곧 원고 내용이 바뀌어 글자 크기나 문단 배치를 다시 해야 한다는 메일이 올 것이다. 변덕쟁이 작가의 메일이 오기 전까지 새 손목시계를 사려고 인터넷 쇼핑을 할 참이다. 친구가 추천해준 브랜드 시계가 저렴하고 디자인도 예뻤는데 기억이 안 난다. 시계를 차고 다니는 습관이 배어버려 이제 없으면 허전해서 여러 개 사볼까 한다. 새로 주문한 시계가 기대만큼 나에게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 10시가 넘은 시간까지도 메일이 오지 않아 오늘은 이만 퇴근을 해야겠다. 볼 때 마다 놀랄만큼 부어 오른 눈은 아직도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그래도 오늘은 너무 고단해서 눈을 감자 마자 잠이 쏟아 질 것 같다.
글 - kyo
그림 - 정아 (인스타그램 - lint3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