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기억한다.
글 - 관우림
그림 - 정아 (인스타그램 - lint3113)
어렸을 적 버려지는 꿈을 퍽 꿨다.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 보이스카우트를 했다. 보이스카우트에선 한 달에 한 번 꼴로 야영을 갔다. 야영에서 밤을 보낼 때마다 다음날 사람들이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을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시달렸다. 어떤 밤에는 그 공포가 극에 달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워버리기까지 했다. 그런 탓에 버려지는 쓰레기에 감정을 쏟았다. 적어도 내가 만든 쓰레기는 모두 모아 집에 와서 버리곤 했다. 그들이 여행지에 남아있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들 역시 집에 돌아가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해버렸다. 더 이상 쓸모가 사라져버린 물건들 역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거라 믿었다. 집에 대한 기억. 그들의 집은 내가 물건을 구입한 가게라고 여겼다. 그 가게로부터 내가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나의 집에서 그들을 버려야만 했다. 멀리 있어도 내 힘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을 때야 버려짐에 대한 공포감이 사라졌다.
기억은 뇌에 새겨진 문신이다. 희미해지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문질러도 소용없다. 기억상실이라는 말은 기억의 완전한 상실이라기보다 그 기억의 존재를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등에 문신을 새겨놓고 그 존재를 잊어버린 것이다!
물건들에 남은 흔적은 뇌에 새겨진 문신과 같다. 기억이다. 사람과 물건 사이의 기억. 종종 사람들은 물건을 잃어버린다. 길바닥에 떨어뜨리거나 집 구석 어딘가에 넣어두었다가 찾지 못하기도 한다. 어쩔 때는 물건의 쓸모가 사라졌다며 팔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물건을 버릴 때 그 기억을 함께 내다 버린다. 기억의 상실이다.
손수건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남자 손수건은 아니다. 핑크 빛이 돌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손수건은 대개 체크무늬처럼 직선들이 교차하며 어떤 규칙성을 보이는 그림들로 장식돼있다. 하지만 이건 꽃무늬다. 유기 견들이 한 때는 누군가의 반려 견이었던 것처럼 저 손수건 역시 필연적으로 주인이 있었을 것이다. 역시 모를 일이지만, 반려 견이 유기 견이 될 때와는 다르게 손수건의 주인은 그녀를 일부러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손수건과 반려 견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 들을 버리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쓰레기 봉지에 담아 꼭지를 묶어 정해진 곳에 내버려두면 다음날 쓰레기 수거 차가 와서 가져간다. 작은 물건을 버리는 일은 그리 품이 들지 않는다. 길바닥에 모른 척 굳이 두고 가지 않아도 된다. 주인이 깨닫지도 못한 어떤 순간에 손수건은 주머니를 벗어나 바닥에 떨어졌음이 비교적 확실하다. 그리고 손수건의 주인은 생각하겠지.
‘분명 있었는데 어느 날 아무리 뒤져봐도 없는 거야……’
잃어버린 물건을 운이 좋게 찾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되찾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저 손수건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사람의 것 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직업이 뭘까? 그 사람과 손수건에는 어떤 기억이 있을까? 선물을 받은 것일까? 땅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어쩌면 손수건은 제 주인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그 곳에 있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주인의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 영화를 보다 울고 있는 상대를 발견하고 건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손수건은 주인에게 돌아가고 있는 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 손수건을 신경 쓰지 않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뺀 누군가 때문에 그녀는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돼 버렸다. 손수건을 잃어버린 이는 손수건을 새로 사 주인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잃어버리고, 잊혀져 버린 물건을 새로운 손수건이 대체하게 될 것이다.
종일 한 줄을 쓰지 못했다.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저명한 작가들은 글쓰기를 기억에 비유했다.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쓴다. 오늘 따라 사과할 일이 많았다. 오전엔 집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경비 아저씨가 올라왔다. 그간의 소음에 관한 민원을 얼마나 점잖게 한 건 한 건 밝혀주시던지 내 송구함과 민망함이 커져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오후에는 3주 전 어떤 일을 제안 받았는데 그 마음에도 없던 일을 제안자에게 돌려주며 포기 선언을 했고 면목 없음의 말을 함께 전해야만 했다. 그리고 저녁엔 친구 M으로부터 어제 받은 메시지에 하루하고도 반나절 늦은 답장을 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전부 본인의 잘못임에도 괜스레 떠오르는 황망함이 산란하게 마음을 흔들어 도무지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크지 않은 기억을 끌어올리는 일은 다른 강한 자극에 취약하다. 사람의 몸은 두 개 이상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어졌다. 한 여름과 한 겨울에 공기의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이유도 그래서다. 강한 자극이 가해지면 우리 몸은 그 보다 작은 자극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내일까지가 기한이지만 마감효과를 항상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바탕 샤워를 하고 문 밖을 나설 준비를 했다. 따뜻한 물에 하는 목욕은 글쓰기가 되지 않을 때 하는 요식행위이다. 종종 큰 내림을 받을 때도 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끙끙대고 앉아있는 상황을 M에게 말했더니 한 가지 방법을 M이 제안한 것이다.
“동네 한 바퀴 돌고 들어와. 그거면 해결될 거야.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고.”
M의 말마따나 동네를 한 바퀴 휘 돌아보는 것도 방법일 듯싶었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져있는 손수건을 만났다.
아파트 단지는 쉴 틈 없이 조용하다. 아파트 단지는 사람들이 살기 좋다고 느끼는 만큼의 소리 크기와 양을 알고 있다. 어떤 사건 사고도 들어있지 않는 소리들. 아이가 엄마와 캐치볼을 하는 소리, 그리고 그 옆에서 동생을 돌보는 아빠의 소리, 태권도 학원 봉고차에서 아이들이 내리고 그들의 사범에게 “태권”하며 인사하는 소리, 요구르트 아주머니와 어떤 할머니의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내용의 대화 소리, 8번 마을버스가 단지를 통과하다 도로를 건너는 사람을 코앞에서 발견하고 급정차 하는 소리, 방문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경비원의 소리, 현관에서 택배 배달원이 배달 지의 호수를 누르고 인터폰에 상대를 확인하는 소리 등. 낮 시간에는 제법 다양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지만, 지금은 저녁인 관계로 낮에 들을 수 있었던 대부분의 소리는 사라지고 더 이상 없다.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어떤 아파트 단지에서 하루 종일 만들어지는 소리들은 역사를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쉬이 잊혀진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쓸모가 없는 소리랄까.
사람들이 만드는 크고 작은 소음들, 혹은 누군가 흘리고 가버린 손수건. 그렇게 쉽게 잊혀지거나 잃어버리는 것들 중 하나. 겨울 철 꼭 그렇게 되는 장갑의 한 짝처럼, 여름 날 어딘가 두고 오는 우산처럼. 그 따위 것들을 누가 주어나 가겠어. 남이 쓰던걸. 값이 나가 내다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쓰레기나 되겠지. 지나다니는 사람들 발에 밟히지나 않으면 다행일 테지.
여전히 마음이 쓰여 손수건을 보고만 있었다.
거실 책장 가장 윗자리에는 실 핀 두 개가 있다. 어떤 편의점에서든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검정 실 핀. H의 것이었다. 남겨진 실 핀은 기억이다. H와의 기억을 잊고 있다가도 실 핀을 보면 H가 떠오른다. H는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하는데 실 핀을 썼다. 언젠가 집에 놀러 온 H는 욕실 수납장에 실 핀 두 개를 두고 돌아갔다.
“핀 두고 갔어”
“그래? 몰랐네. 괜찮아. 다시 사면 되니까”
실 핀은 H가 내게 준 선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쓸모가 다해 버려진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는 다시 사용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그래서 남겨두었다. H가 집에 올 때 마다 그 들의 존재를 알려줬다. 하지만 H는 다음 번에도, 그 다음 번에도 자신의 실 핀을 찾지 않았다.
“청소 좀 해. 버려도 돼”
그대로 시간이 흘렀다. H와 나는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됐다. 그러다 실 핀을 다시 발견했다. 검은 색을 띠던 실 핀은 주황색이 돼 있었다. H는 지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버려버린다고 했다.
“생각나잖아”
실 핀은 녹이 슬었다. 그들의 표면은 욕실의 습기 때문이었는지 매끈했던 것이 거칠어 졌다. 버리지 못했다. 그걸 이사하면서도 챙겨왔다. 그리곤 책장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이다. 어디 서랍에 넣어두면 그대로 잊힐 일이다. 그럴 바엔 버려야지 싶다가 마음을 다시 고친다. 남겨진 실 핀은 H와의 기억이다.
누군가 지나가다 바닥에 완전히 달라붙지 못하고 돌부리처럼 솟아있는 손수건을 발로 찬다. 손수건은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손수건 주인이 야속하기만 하다. 제 주머니에 있어야 할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