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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Mar 20. 2016

#2 - 나에게 머무르는 것

사이 좋게 지내자, 꼭 약속해.

좁은 취업문을 넘어 정기적인 수입원이 생겼다. 지방에 근무를 하면서 별다른 취미를 가지기 힘들었던 나는 휴대폰에 쇼핑 어플을 많이 설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TV 쇼핑몰은 오늘이 정말 마지막 폭탄 세일일 것 만 같아 전화기를 들고 몇 번을 고민했었지만, 입성 3주 만에 모든 상술을 파악 할 수 있었다. 그래도 TV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여행 패키지 상품 퀄리티를 뛰어넘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한 개 두 개 사다보니 갖고 싶은 것이 더 많아진다. ‘언제 나한테 투자해 보겠어’라는 합리화를 하고 할부 결제로 비싼 가방을 몇 개 구입했다. 처음엔 무이자 2개월 할부도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세 번째부터는 이자 따위 개의치 않는 나의 대담함 때문에 콩닥거렸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액세서리는 매일 구매해도 내일 또 신상이 나온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 맞지만 엄마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는 왠지 모르게 촌스러워서 하나 더 구입하는 게 내 구두랑 어울린다.  


그리고 난 몇 해 전부터 감사한 주변인들에게 차례차례 선물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사업이 여러차례 위기를 겪는 동안 우리 가족들은 주변 친인척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큰 선물은 아니지만 그저 어렸을 적 내가 느꼈던 감사함이 전해지길 바라보는 정도의 선물을 드렸다. 그리고 올 해는 동생들에게 선물해 주려고 마음 먹는다. 작년에 부모님, 할머니께 선물 하는 걸 보고는 본인들의 차례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사실 더 빨리 해주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나의 조급함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카카오톡 단체방에 문자를 보냈다. ‘갖고 싶은 거 있어?’    



한참 일에 집중하고 있는 여동생은 직장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전화한다. 오늘은 또 어떤 하소연을 늘어놓을지 각오하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무자비한 상사들, 후배와의 경쟁과 성장 사이에서 발생하는 회의감, 이직을 고민하게 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 겨우 2년 빠른 나에게도 진행중인 고민들이지만 정답을 알고 있는 척 해본다. 비교적 옳은 길을 알고 있어도 섣부르게 일러 주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말에 공감해주고 들어줄 뿐이다. 그러다 보면 다행히도, 지혜롭게 그녀는 그녀의 길을 찾아서 또 걸어간다. 직장이 서울에 있어 자취를 하는 그녀의 집은 내 민박집이기도 하다. 가끔 친구들과 놀다 시간이 늦어져 대중교통이 끊기면 그녀의 자취방에 예고 없이 쳐들어간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야식 주문에 배게까지 내어 주는 그녀는 나보다 훨씬 너그러운 게 역시나 확실했다.  

바로 아랫동생과는 운명적으로 애증의 관계가 된다. 내가 독차지 하던 사랑을 나눠주어야 하는 첫 번째 대상. 부모님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더 관심을 끌 수 있는 개인기를 불꽃 튀게 연마해본다. 그리고 자잘한 전쟁을 거쳐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동맹관계가 되었다. 사랑, 가족, 우정, 혹시 모를 치정까지, 장르 불문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그녀뿐이다. 무료 통화인 사람이 다시 전화하는 건 자매간의 예의이다.    



막내 남동생은 요즘 부쩍 어른인 척 행동한다. 누나들의 욕심이 그렇듯 내 이상형으로 키우고 싶었는데 나를 더 닮아 버린다. 내 이상형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보다 더 잘 자라주었다. 다섯 살 많답시고 엄마인 것 마냥 잔소리하는 큰누나와 언니한테서 받은 스트레스를 자기한테 해소하는 둘째 누나 틈에서 제법 남자인척 앞가림을 하는 것 보면 안심도 된다. ‘아직 잘 모르니까 가만히 있어.’ 이 말을 제일 싫어했다. 다툴 때도 큰소리를 내는 법이 없던 녀석이 이 말만 들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곤 했다. ‘내가 아직도 애인 줄 알아?!’라고 소리지르면 나는 ‘그럼 아니야?’라고 속으로 반문했었다. 아마 실제로 입 밖에 냈으면, 그 다음은 엄마가 달려왔을 것이다.  

보통 남동생들과는 다른 면도 있다. 요즘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곳 음식들이 꽤나 먹고 싶었다고 했다. 접시를 가지러 간다는 핑계로 주방장 형에게 이것저것 물어 요리들을 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하나 둘 재료도 사오더니 일요일 아침에는 본인이 요리를 해서 가족들에게 먹어보라고 한다. 프라이팬 위치도 모르는 동생들도 있다는데 이 정도면 애인에게 사랑 받을 정도는 될 것 같아서 사진도 몇 개 찍는 척 했다.  


    

뜬금없이 여동생은 손수건이 갖고 싶단다. 본인이 구매하기엔 돈이 아까우나 갖고 싶은 명품 손수건 링크를 보내왔다. 이 정도면 알맞은 가격대다. 비싼 구두나 가방을 말할까봐 소비를 줄여가던 참이었는데 다행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가 손수건을 갖고 다니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었지만 요즘엔 물티슈나 종이수건이 많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소품이어서 의아했다. 그러나 이내 고심해서 선택했을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유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곧 알게 될 것 이었다.  

“언니 가방에 묶인 손수건 어느 브랜드 거야?”  

내 가방에 묶여 있는 스카프가 내심 부러웠던 것이다. 어렸을 때, 우리 자매는 패션 취향이 완전히 달랐다. 그 덕분에 옷 배 전쟁은 다른 집보다 덜 일어 났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가방에 메어 있는 손수건에 눈길이 가고, 진주 귀걸이가 마음에 들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내가 먼저 엄마를 쫓고 동생이 따라왔다. 20대 여자아이의 취향은 어떤 걸까. 고르다 보니 예쁜 손수건이 많아 내 것도 하나 구매하려고 마음 먹는다.  

그리고 실 핀도 몇 개 샀다. 우리도 청소년기엔 발톱세운 동물마냥 적지 않은 영역다툼을 했었다. 한번은 내가 뭉치로 사다 놓은 실 핀이 매일 조금씩 없어지고 있는걸 발견했다. 감히 실 핀을 허락도 없이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그렇게 발발한 전쟁은 역대 가장 스케일이 컸다. 다툼을 하다 보니 실 핀이 이유인 것이 우스워서 어제 잘못도 들춰보고 괜히 심한 말도 하다가 겉잡을 수 없는 감정싸움으로 번져있었다. 쾅! 쾅! 내가 더 세게 방문을 닫고 싶었는데 진 것 같아 억울해하기도 전에 둘 다 벽보고 손 들고 있는 걸로 전쟁은 마무리 됐다. 요즘도 가끔 저녁 밥상에서 그 싸움을 이야기하곤 한다.      



남동생은 역시 내가 보내는 카카오톡 메시지에 대답을 하는 법이 없다. 그래도 얼마만에 내 방에 찾아와 한 마디 툭 던지고 간다.  

“나는 노트북 사줘. 큰 거 말고 작은 걸로, 캐나다에 갖고 갈거야.”  

곧 유학을 떠나는 그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 발생할 것 같지만, 장바구니에 저장해둔 가방을 내년으로 미루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전자기기는 값이 더 나가더라도 좋은걸 구입하자는 게 나의 신념이기 때문에 기왕 최고 성능으로 알아본다.  

그동안 누나들에게 많은 기회를 양보해왔다. 외식 메뉴, 좋은 물건, 어학연수 등. 욕심이 났을 법도 한데 한마디 불평 없이 지금까지 잘 따라 주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의 맞벌이로 종종 그의 식사나 학교 숙제를 나에게 맡기셨다. 엄마가 해놓은 밥에 반찬 몇 가지만 꺼내어 주면 되는 미션이었는데 요리사가 대접하는 것 마냥 생색을 냈었다. 그렇지만 키가 작아 팔꿈치로 떨어지는 물을 감수하며 설거지까지 했으니 그럴 만큼의 자격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알림장에 숙제가 있는 날은 선생님이 되었다. 엄격한 관리감독 하에 숙제와 준비물을 챙기게 했다. 그리고 그때 이후 더 이상 엄마는 나에게 그를 맡기지 않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형제에게 어느 정도 이상의 부모의 역할을 지우는 것은 서로의 정서에 좋지 않다는 걸 책에서 보셨다고 했다. 부모인척 엄격하게 하려는 나를 보고는 덜컥 그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이렇듯 늘 내 뒤에 자그맣게 선채 쫓아오던 귀여운 막내 동생이었고, 평생 아이일 줄 알았던 그가 이제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발벗고 나서서 도와줄 의무는 없지만 소중한 명품 가방을 몇 년쯤 뒤로 미룰 정도는 되었다. 영영 못 사게 된다고 해도 상관 없는 걸로 치면 너무 멋진 누나가 되려나.      


생각보다 동생들의 취향을 잘 모른다. 내 옷을 물려 입던 동생들의 취향을 알게 뭐였을까. 새삼 내가 너무 많은 기회를 빼앗은 건 아닌지 착한 시늉하며 이기적인 맏이는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동생1로는 불가능한 얼음땡 술래 잡기, 진놀이(와리가리), 단체 줄넘기의 희열만으로도 나에겐 소중한 너희들이었는데, 그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지 궁금하다. 혹시 나쁜 첫째였다면 이 선물로 세탁해 보려 한다. 요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자녀를 많이 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서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는 사건, 사고를 그저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을 만큼의 절대적 힘을 다른 곳에서 얻게 해야 한다는 것이, 미래의 자녀에게 미안해질 때가 있다.  


오늘도 엄마는 이모와 1시간째 통화 중이다. 분명 문을 닫았는데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내 방에서도 들린다. 이어폰을 꽂고 동생들에게 물건을 골라서 링크를 보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오후에 산 편지지를 꺼내 몇 자 적어본다. 나름 편지를 자주 써주는 언니였는데 이번엔 좀 더 진지하게 쓰려고 마음 먹었다. 이후에 언제 선물할 수 있을지 모르니 제대로 각인시켜야 하는 게 목표이기도 하다. ‘성적표 숨겨 놓은 거 엄마한테 일러서 미안해’, ‘어렸을 때 할머니가 손주 새끼만 불러 용돈 준다고 꼬집어서 미안해’, ‘나 대신 빨래를 널어주는 네가 참 고맙다’, ‘샤워할 땐 변기 커버 올려 주면 좋겠어’. 그리고 덧붙여 진지한 문장을 몇 개 더 적어본다. 건강하게 그리고 사이 좋게 지내자.


글 - kyo
그림 - 정아 (인스타그램 - lint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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