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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림 Sep 30. 2015

폭우

 책상 위 전자시계가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안간 힘을 쓰고 있다. 내 눈은 알람이 울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뜨였다. 평소보다 한 시간 가량 앞당겨 일어나야 했다. 침대 위에서 몸은 쉬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5시 30분부터 울리기 시작한 시계는 벌써 17분 동안이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간신히 두 다리를 침대 밑으로 내리고 바닥을 바라보니 어제 신었던 흙투성이 신발 한 켤레가 있다.    

 전날 퇴근 시간은 다른 날보다 조금 빨랐다. 주어진 6주라는 시간 중 2주가 흘렀고 퇴근 시간은 10시 기준 이쪽저쪽이었다. “오늘은 일찍들 들어가. 내일 아침에도 이렇게 비가 오면 바로 현장으로 가는 거야. 라디오를 들으면 도움이 될 테니까 참고하고.” 부장이 말했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점차 세를 불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뉴스에선 아나운서가 호우주의보라는 단어를 써가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인턴들은 선배들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정리 했다. 그리고 하나 둘 씩 퇴장하기 시작했다. 

 ‘한강은 물이 크게 불어났다고 했다. 지금 가면 괜찮은 사진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한강 물이 닿지 않는 곳에 모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꽂힌 곳에서는 물에 잠긴 차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사람들은 동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결코 어둡지 않다. 바닥에는 여기저기 진흙이 흩어져 있었다.

 다른 날 같은 시간이었다면 이곳의 교통은 보다 수월 했을 것이다. 사람 소리보단 차에서 나는 소음으로 가들 찼을 게 분명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흐르는 차들의 눈빛은 장관을 만들며 서울의 볼거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한 시간 전보다 가늘어진 빗방울에 사람들이 현장을 관전하기 수월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지붕만 보이는 차들을 힐끗 쳐다보며 자기 갈 길을 간다. 물속에 잠겨버린 것들이 자기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사람도 있다. 다들 자신의 일이 아닐 뿐이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몇 가지의 것 들을 알 수 있었지만 쓸모 있어보이진 않다. 물에 잠겨버린 한강 둔치야 지난밤에도 다녀왔고, 더 이상 그럴 듯한 그림도 나오지 않을게 분명했다. 지하철안 사람들의 간격은 좁다. 날 숨이 다른 사람의 얼굴에 가 부딪힐 수 있는 거리다.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움직일 수 없다.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버린 공간은 폐신문을 수거하러 이 칸 저 칸을 넘나드는 한 사람에 의해 녹을 수 있었다. 선반 깊숙하게 들어가 버린 신문은 이 사람을 까치발로 서게 만든다. 손톱 끝에 신문 모퉁이가 걸리지만 그냥 빠져나간다.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팔을 뻗어본다. 경쟁자보다 하나라도 더 수거하기 위해 서둘렀던 탓에 처음 번 자세가 좋질 못했다. 자신의 작은 키를 극복할 수 있을 만한 자세를 취할 수가 없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치고 반대편 선반을 쳐다보지만 그 곳엔 아무 것도 없다. 주변의 승객들은 그런 그의 행동에 신경을 쓰는 듯 했지만 곧 자신의 일로 돌아가 버린다. 미간에 주름을 만드는 사람도 없었다.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에서 산사태가 났다. 그리고 현장으로 향했다. 예술의 전당, 래미안 아파트, 남태령. 우면산이 흘러내렸다. 전기면도기로 잘못 밀어버린 머리처럼 산의 한 쪽 자락이 깨끗하다. 빨강과 초록은 서로를 밀어낸다. 빨간색에 가까운 황토는 좌우 풍성하게 형성돼 있는 초록색의 숲 때문에 더 극적으로 보인다. “우리 집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다” 누군가 말했다. 곱슬 거리는 머리와 집에서 편하자고 입고 있었을 법한 옷과 차림새다. 산 중턱에서부터 미끄러져 내린 나무와 흙은 8차선의 도로를 넘어 아파트 소음 방지 벽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몇 가구의 아파트 가정집을 덮쳤다. 이 동네 어디에선가부터 우산을 받치고 나와 현장을 관전 중인 그녀는 안도에 숨을 쉰다. 거실, 부엌, 안방, 작은방. 황토에 뒤 덮여 버린 공간들을 깨끗이 씻어내고 치우려면 얼마나 걸릴까. “구경났어요?” 집 주인은 기자들의 카메라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목소리를 높인다. 안도의 숨을 쉬었던 사람은 입 꼬리를 내리고 혀를 차면서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무엇이 생각났는지 속도를 높여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간다. ‘내 일만 아니면 된다. 내 일만 아니면 아무래도 좋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신발을 한 켤레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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