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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림 Sep 30. 2015

냄새

 얼마나 급하게 걸었던지 지하철 역사에 멈춰서 자 이마에서 무언가가 흐른다. 땀방울이다. 열이 확하고 타오른다. 몸은 땀구멍을 통해 열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중이다. 시원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시선을 따라 몇 발자국 걸었더니 머리위에서 바람이 쏟아져 내린다. 시원하다. 지하철역 천장의 바람은 에어컨 등에서 나오는 깨끗한 것이 아니라 정화되지 않고 먼지가 뒤 섞인 정체모를 공기라 그리 좋지 않다고 누군가 그랬다. 그래서 쐬면 안 된다고 했다. 오늘 같이 더운 날이라면 그 정도의 지저분함은 몇 번을 뒤집어써도 상관없다. 시원하기만 하다면. 

 바람아래서 몸을 식히고 한 숨 돌린다. 정면 유리에 흐릿하게 복사된 얼굴을 보니 땀을 쏟아낸 전과 후의 표정 차이가 없다. 열은 보이지 않는다. 킁킁댄다. 열이 사라진 자리에 냄새가 남는다. 냄새는 그 자리에 쭉 있었지만 열 때문에 느껴지질 않았다. 사람은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장 강한 자극만 살아남는다. 하루 종일 온 몸에 묻어난 냄새가 이 맘 때면 최고조가 된다. 오늘 종일 흘린 땀의 양 만큼 냄새는 진하다. 이 냄새는 하루라는 시간이 몸에 남기고 간 발자국이다. 집에 들어가 어서 옷을 벗어버리고 흐르는 물에 씻어버리고 싶지만 이 냄새들은 다시 나를 찾아 올 것이다. 몸에서 나는 이 땀 냄새가 싫다. 바로 옆에 누군가 있다면 이 냄새의 발원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냄새가 사라지면 그 향기를 찾기 위해 나는 사방으로 코를 들이민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차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고개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리며 노린내를 찾아댄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다 냄새가 그쳐버리면 코는 자신이 목적지로 삼고 있는 곳에 대한 실마리를 잃고 황망해한다. 그리곤 입맛을 다신다. 

 마침 자리가 난다. 칸은 적당히 차있다. 출퇴근길의 그 것보단 한가하고 차고에서 나온 직후의 그 것보단 붐빈다. 자리가 비어있는 곳으로 걸어가 앉는다. 그 사이 지하철은 한 바탕 사람들을 뱉어내고 다시 얼마만큼의 양을 안으로 넘겼다. 냄새가 밀려온다. 좀 전까지 코가 킁킁 대며 열심히 찾았던 것보다 그 농도가 짙다. 찌든 담배 냄새까지 묻어났다. 땀 냄새는 2박자, 쉼표, 그리고 담배 냄새 1박자. 주위 사람들이 두리번거린다. 냄새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내 앞에 멈춰 선다. 미간을 찌푸려보지만 상대에게 들키지는 않는다. 냄새의 주인은 내 왼편으로 와 앉는다. 고개는 돌리지 않고 눈알만 굴려 그를 본다. 몇 번이나 빨아 댔을지 모를 운동화, 옅은 색의 청바지, 목이 늘어난 티셔츠, 반 곱슬 짧은 머리. 피부는 검게 그을렸다. 제 때 깎지 않은 손톱 끝은 휘어있었고 그 밑으로 검은 때가 잔뜩 이다. 남자의 왼편에 있는 여자는 자기 할 일이 더 바쁘다. 아니 바쁘다기 보단 관심이 없는 쪽에 가깝다. 그와 그녀 사이에선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의 얼굴을 힐끗 본다. 이상함을 감지한 듯 얼굴을 찌푸리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가. 아닌가. 알 길은 없다.

 오른쪽으로 엉덩이를 살짝 밀었다. 옷깃이 그의 몸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는 작은 움직임을 가한다. 행여나 그의 먼지 냄새와, 땀 냄새와, 담배 냄새가 이쪽으로 옮겨 붙을까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누군가에게 들켰을까 고개를 들고 눈을 돌린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좀 전까지 옅은 비린내를 찾아대던 코는 강한 자극 앞에서 극도의 거부감을 표시한다. 그가 보낸 오늘 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 없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흔들어댔는지 알고 싶지 않다. 그는 종일 먼지를 뒤집어썼고 땀을 흘렸고 담배를 피워댔다. 그의 하루는 냄새의 농도처럼 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코는 그의 하루를 거부하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로부터 도망간다. 가능한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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