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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느긋 Aug 02. 2023

7월에 본 것들

7월의 사슴탐사


한 점 하늘 김환기 A Dot A Sky Kim whanki

@경기도 용인시 호암미술관


다들 직접 가서 보면 좋겠다. 초반의 요요한 그림작업들을 지나 후반의 점화 작업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멋지다. 캔버스에 그리던 작업물들을 보다가 신문지에 채색한 작품들을 연이어 나올 때, 작가의 고민이 드러나는 분기점에서 마음이 고되었다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나왔을 때는 벅찬 기분이었다.


“봄내 신문지에 그리던 일 중에서 나는 나를 발견하다. 내 재산은 오직 ‘자신’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이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 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그 길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무너지고 진실로 희망에 가득차다. (1967년 10월 13일)

선인가? 점인가? 선보다는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 (1968년 1월 2일)

날으는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걸 계속해보자. (1968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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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뉴욕일기』, 환기미술관, 2019



가능성은 스스로 만든다 - 안도 타다오 강연

@서울시 이화여대 대강당


7월은 안도 타다오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예전부터 뮤지엄 산에 한 번쯤 가봐야지 생각했었는데 미루다가 그의 강연을 들으면 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신청한 강연. 강당에 사람들이 정말 꽉 차 있었고 관련 전공을 하는 학생들이 열심히 메모하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그가 한 문장을 말하면 통역사가 한 문장을 번역하는 식으로 진행된 더딘 강연이었는데, 그럼에도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힘있게 들렸다.


뮤지엄 산에서 7월 말까지 열리는 그의 전시 'YOUTH'는 기간이 연장되어 10월 말까지 한다고 한다.


안도 타다오, 청춘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7월이 지나도 전시가 이어진다길래 좀 천천히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일정이 맞아서 마지막 주말에 갈 수 있었다. 청춘에 대해 말하며 그가 강조했던 푸른 사과 조형물이 입구에 있었다. 사과 한켠에는 永遠の青春へ(영원한 청춘에)라는 글귀가 그의 서명과 함께 적혀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뮤지엄 산은 대중교통으로 가기에 먼 곳이지만, 한 번쯤 가고 싶은 그런 곳이 되었다. 지난 강연의 초반에 그는 '저는 학력도 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목표만은 확실히 있습니다. 사회와 함께하며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서두를 연 게 생각났다. 그런 굴곡을 겪었기에 그가 말하는 '청춘'의 의미와 무게가 더 확실히 와닿는 것 같기도.

미술관 입구에 다다랐을 때, 우리를 맞이하는 푸른색 사과가 청량했다.


사실 최근 안도 타다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즈음 구독하던 롱블랙을 통해서였다. 지난 4월 뮤지엄 산 개관 10주년을 맞아 그가 한국에 왔고, 그즈음 이 전시를 준비한 큐레이터가 안도 타다오에 대해서 설명해 준 내용이 인상 깊어서 한번 가봐야지 생각해 두었던 것.

 

https://www.longblack.co/note/652


지난해 11월 오사카에 갔을 때 봤던 나카노시마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고 해서 다시금 여행 사진을 펼쳐보기도 했다. 정갈하게 잘 정비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그곳 도서관이나 근처의 도로 등에 차가 다니지 않게 하기 위해 시청에 꾸준하게 건의를 넣었다고 한다. 그 사례를 말하며 안도 타다오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는데 실제로 그가 해낸 사례와 함께 이야기하니 더 와닿기도 했다.


뮤지엄 산에 다녀와서는 책을 한 권 빌렸다.

안그라픽스에서 출간된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강연도, 전시도, 인터뷰도, 책도 그의 건축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콘텐츠들을 보면 다 비슷한 흐름과 맥락에서 이야기한다는 걸 볼 수 있는데 어떤 매체로 보느냐에 따라 새롭다. 특히, 전시의 경우 도면 같은 것과 함께 보니 새롭기도 했고 강연이란 당연하게도 말하는 사람의 기운이 그대로 전달되어 좋다. 책은 그보다 더, 구성과 문장이 정리되어 있고 사진자료도 독서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니 마지막에 보기에 좋을 것 같다. 한 사람의 궤적을 이렇게 다방면으로 살펴본 건 오랜만이라서 7월 동안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 빠져 산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종이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산 - 페이퍼갤러리


뮤지엄 산은 한솔제지에서 운영하는 오크밸리 내에 있고, 뮤지엄 산을 운영하는 곳이 한솔문화재단이라서 그런지 내부에 종이박물관이 있다. 상설전시라, 다른 전시를 보며 함께 관람할 수 있는데 공간도 꽤 넓은 편이었다. 종이의 역사를 비롯해 활용법, 만드는 법, 글자를 기록하는 용도로서의 종이뿐 아니라 다른 용도로 사용된 것에 대해서도 차례차례 보여주니 한번 들여다볼 법하다.

전시관을 다 둘러보면 사람들의 기록에 대한 욕구는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구나 새삼 놀란다. 점토판이나 조개껍데기 위에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그리다가 점점 종이와 비슷한 평면의 형태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다 보면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쓰는 A4 용지로 오기까지의 시간이 참 어마어마하구나 놀라게 될지도.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 류이치 사카모토 출간 기념 추모 전시

@서울시 피크닉


류이치 사카모토의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출간을 기념하여 출판사에서 추모전시를 열었다. 그의 부고를 듣고 음악을 들으며 책도 보고 있던 차에 전시가 열린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지하의 전시 공간은 입장 인원수를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에 번호표를 받고 잠시 대기했다. 일본 사람들이 꽤 많이 와 있어서 신선하기도 했다. 반대의 상황이라도 나도 전시장을 찾았을 법해서 수긍이 되기도 하고.


국립중앙박물관과 전쟁기념관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은 생각날 때마다 종종 찾는 곳인데 날씨도 좋고 한가하던 중에 부모님께서 올라오셔서 놀러 가봤다. 남산타워가 가까이 보여서 그런지, 특유의 넓은 공간 때문에 그런지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갈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별전시들이 흥미로운 것들로 잘 꾸려지기도 하지만, 박물관 내에 들어가서 선사시대의 유적들을 보고 있으면 저 돌멩이들을 주먹도끼인 줄 알아보고, 저 나뭇조각들을 나룻배라는 걸 발견해 낸 사람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래된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의 쓰임을 알아보는 눈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자꾸만 알아차리게 되는 시간이다.

전쟁기념관은 평소에 잘 가지 않지만 근처에 다른 곳에도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들렀다. 관람하는 중에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맞춤 티셔츠를 입고 목에 뭘 하나씩 두른 채로 관람해서 “외국인들이 궁금해할 만한 곳인가?” 하니, 엄마가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자주 보러 오더라,라고 했다. 또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 세계잼버리대회가 열리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맞춤 티셔츠에 목에 손수건을 두른 단체 관광객은 아무래도 그들이었던 것 같다.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서울시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7월엔 다른 영화도 봤지만 이 영화가 참 인상 깊었다. 영화를 통해 그의 삶의 궤적을 좇는 내내 내 귀에 너무 익숙한 음악들이 흘러나와 울컥 한다. 나에게도 정말 익숙한 음악들인데 근처에 앉은 어르신들은 더욱 그러했던 모양. 다 보고 나와서도 서로서로 너무 잘 봤다는 이야기를 나누셨다. 한 음 한 음에 진심이고, 영화를 더 잘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느껴진다는 면에서 정말 섬세한 음악가였구나 다시금 느꼈달까. 영화 후반에 엔니오 모리코네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도 다 기억하지는 못하는 점이 아쉬웠는데 찾아보니 『엔니오 모리코네의 말』이라는 책이 출간되어 있었다. 아래는 그 책의 인용.


“창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문제는 보통 앞에 놓인 백지, 즉 형태와 의미와 가슴을 줘야 하는 흰 종이입니다. 그건 작은 드라마입니다. 백지를 어떻게 채울까요? 거기에는 앞으로 생각나서 발전될, 가능하고 때로는 불가능한 모든 것을 찾아나가야 할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 생각, 그리고 한번 해보겠다는 갈망은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페푸초*, 절대 사라져서는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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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푸초: <시네마 천국>의 감독이자 이 영화를 만든 주세페 페르나토레.




7월은 한 달 내내 본 것들이 나의 생활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봤다. 영화 <바비>, <밀수> 도 개봉하자마자 봤었네. 두 작품 모두 재밌었다. 수영도 꾸준히 하고 책도 여러 권 읽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그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요즘 책은 잘 읽혀?”


책을 일로서 읽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 읽고 싶다는 것. 나를 포함한 지인들이 종종 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그의 말에 나는 아주 밝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완전요. 정말 향유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다. 나는 요즘 드물게 향유하는 독서를 하고 있다. 신간 위주로 살펴보거나 표지를 보고 구성을 살피고 제목을 분석하고 이 사람이 다른 책을 쓴다면 어떤 게 좋을까? 파악해 보는 것이 아니라 책을 책으로 읽는 즐거운 독서를 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산문집만 편식하고 있었구나 깨닫고는 인문서도 종종 읽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 시작한 독서모임이 4개월 차로 접어들어 이번 달에 끝났다. 말하는 사람 마다마다 말하는 습관이나 어투나 사고의 방향이나 자주 사용하는 말들이 내가 쓰는 것들과 완전히 달라서 재미있었다. 안 읽던 책을 읽으니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문장들이 낯설고 새롭다.


한 달이 다 지나고 나면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은데 그동안 한 것들을 기록해보면 꽤 알차게 시간을 보냈구나 스스로 만족하게 된다.


8월도 그러한 한 달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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