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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느긋 Jul 10. 2023

어느 정도의 햇볕이 필요할까?

6월의 사슴탐사

얼마 전 한의원에 갔다. 기운이 없는 것 같은데 이렇다 할 증상이 없을 때 혹은 목어깨에 통증이 있을 때 자주 찾게 되는 곳이다. 한의사는 내 맥을 짚어보더니 밤에 잠은 잘 자는지, 아침에 잘 깨는지 물었다. 나는 "너무 잘 자는데요, 너무 잘 깨고요" 하고 대답했다. 실제로 나는 침대에 머리를 대면 잠이 들고 날이 밝으면 바로 눈을 뜨는 편이기 때문에 내가 잘 자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의사는 내 몸이 계속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이니 충분한 수면을 취해주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잠을 잘 자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동안 우리 몸은 비로소 회복할 수 있다고.


나는 전문가의 의견을 신뢰하는 편이다. 때문에 스스로 진단한 나와 전문가의 진단을 받은 내가 다를 때 크게 당황한다.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평소 나는 햇빛을 받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편인데, 여름이 다가오면서 그 시간이 점차 빨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엔 눈을 뜨면 신기할 정도로 늘 여섯시 삼십분이었다. 그건 내가 잠드는 시간과 관계없이 그랬다. 기분상으로는 잘 자고 잘 깨는데, 절대적인 수면시간은 (평균을 7-8시간이라 생각했을 때) 긴 편이 아니다. 반대로 여행을 갔을 땐 오히려 늦잠을 잔다. 깨어나보면 여덟시 혹은 그 이후. 그러고도 침대에서 한참 늑장을 부리다 몸을 일으킨다. 여행을 가면 많이 돌아다니는 탓에 몸이 피곤해지니까, 늦게 나가서 늦게 돌아오곤 하니까 그럴 수 있다 생각했는데 그것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날이 밝았을 때 잠에서 깨는 느낌이 좋아서 침실을 밝게 유지하는 편인데, 좀 어둡게 하는 편이 좋을까요?"


여행지에서는 모호한 기분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몇 시인지 모른 채 잠에서 깨고, 깨고 나서도 어수선했다. 그후 시계를 보고야 벌써 여덟시구나 깨닫는다. 그러나 그 여덟시가 아침 여덟시인지 저녁 여덟시인지는 체감하지 못한 채로 느적느적 일어나 커튼을 걷고서야 뒤늦게 알게 된다. 아침이 되었구나 하고. 


아마 암막커튼 때문일 것이다. 우리집에는 암막커튼이 없으니까.


"아침엔 햇볕 드는 게 좋아서 밝게 유지하는 편이긴 해요. 창도 크고요."


많이 밝은 편이냐고 묻길래 그렇게 답했더니, 침실은 조금 어두운 편이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얼마나 어두워야 깊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까? 그후 나는 커튼을 교체하거나 블라인드를 찾아보며 침실의 조도를 낮추는 중이다. 암막커튼을 치면 간단하겠지만 아주 어둡게는 못하겠다. 햇볕이 완전히 차단되는 느낌은 영 싫다. 아침이 되었다는 감각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채 깨는 것도. 이제껏 살아온 집들은 모두 햇볕이 잘 들었기 때문에 암막커튼을 치고 살았는데 이사 오기 바로 전에 살던 집이 층고가 낮고 옆 건물들이 꽤 가까이 붙어 있어 햇볕이 안 들어 불쾌했다. 그때부터 암막커튼을 모두 없앴다. 그 집에서 살았던 시간 때문인지 햇볕이 충분히 들지 않는 아침은 두렵다. 일어났을 때 지금이 몇 시쯤 되었는지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시계를 보고서야 알게 되는 것도. 햇볕이 안 드는 건 싫은데, 햇볕을 피해 푹 잠들면 좋겠다 싶고. 때문에 적당한 조도를 찾는 중이다. 나도 숙면을 취할 수 있고 빛도 적당히 들어오는 조도. 날씨가 좋은 날에 인테리어숍을 방문해서 샘플로 설치된 커튼들을 뒤적이면서. 


가끔은 내가 나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고 사는지 깨닫곤 놀란다. 수시로 변하는 입맛 같은 것을 제외하고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또 뭘 싫어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면 아득하다.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다 보면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고, 싫어하는 것들을 나열하다 보면 또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겁이 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그러다보니 자연히 '아무래도 좋은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그건 일견 아무것도 아닌 사람과도 같아 보인다. 굳이 내가 아니라 다른 아무나여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 너 OOO 좋아하잖아, 하는 타인의 말에 나의 취향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아무거나" "괜찮아" 하는 말을 조금씩 덜 하려고 노력중이다. 아무거나 괜찮아, 하지 말고 무엇이든 하나는 선택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선택한 후에 좋았는지 싫었는지 아니면 다른 감정을 느꼈는지를 제대로 살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무엇이든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슴'은 그런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다. 어릴 때부터 사슴이 가진 정서를 좋아했다. 그래서 사슴 모양 인형이나 사진을 꽤 모은 적도 있다. 좋아하게 된 최초의 기억은 잊었지만, 어느 때고 깊은 산 혹은 숲 속에 목이 긴 초식동물 하나가 홀로 서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금세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마음이 어수선하거나 뒤숭숭할 때는 산책하면서 그런 장면을 상상하곤 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자리에 사슴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는 상상. 우리는 서로를 향해 서서 다가가지도 달아나지도 않은 채 멀찍한 간격을 유지하고만 있다.


물론 실제의 사슴은 그렇지 않고-사슴에게도 자아나 개성이 있을 것이고-, 모든 것은 내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이미지일 테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으면 어떤 날은 위로가 되고 어떤 날은 힘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도 각자 다른 모습과 다른 형태로 이런 이미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매달 일어났던 일을 짧게나마 기록하고 거기에 사슴 탐사라고 이름 붙인 것도 그 이유에서다. 지난 한 달 동안 만난 나의 '사슴'들. 그것을 기록해두면 또 어디선가 이러한 이미지들과 만나곤 하겠지. 6월에 만난 나의 사슴은 주머니에 수북이 쌓인 '아무거나' '괜찮아'를 하나하나 버려가고 있는 나. 내가 사랑하는 조도를 찾고 있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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