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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댓츠올 Aug 29. 2023

도장 깨기를 시작하지

세상에! 안 가본 곳이 이렇게 많다니!

여수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국내여행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간다. 여수에 간 건 남해 바다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져 있고,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남해는 모두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어 보인다. 같은 동해라도 강원도의 동해와 경상도의 동해가 다르듯, 같은 남해라도 서남쪽과 동남쪽이 다르다. 나는 어린 시절에는 동해 가까이에 살았고, 커서는 서해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니 남쪽의 바다는 여행지로 삼기에 적격이었다. 낯설고 이상할수록 여행하는 기분을 더 잘 느낄 수 있으니까.


여수에서 보낸 1박 2일은 짧았지만 재밌었다. 동백섬으로 가는 기다란 길을 하염없이 걷는 것도, 그렇게 걸어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돌아가는 길도, 향일암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셔본 일도. 처음 먹어본 고들빼기김치에서 와사비 맛이 나서 신기했던 일도, 어디를 가나 <여수 밤바다>가 들려오는 것도. 


가장 재미있었던 건, 그 지역의 사투리였다. 같은 언어를 써도 그곳 사람들이 모두가 쓰는 말투가 나의 말투와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온 느낌이 들었다. (경상도를 여행할 때는 오히려 이런 기분이 덜 느껴진다.) 그 후로 종종 국내여행을 떠났다. 떠날 때는 '국내여행'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생각하지 않고 어디 놀러 갔다 왔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냥 놀러 갔다 왔다로 생각하기엔 아쉬운 알찬 여행의 순간들이 많았다. 


원고를 읽다가 낯선 지명이 나오면 포털에 검색해서 그 지역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곤 했다. 굳이 여행서가 아니더라도 지명이 등장하는 경우는 꽤 된다. 예를 들어 A지역에 갔다가 **강을 봤다는 문장이 있다면 **강이 정말 그 지역에 있는지 혹은 줄기가 그 지역을 지나는지 같은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B지역에서 그 지역 특산물인 &&막걸리를 먹었다고 하면, 그 막걸리가 정말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이 맞는지, 아니라면 인접지역이라 유통되는 것이 맞는지, 그렇다면 맥락상 오해할 부분이 있는 건 아닌지 같은 것도 한번 확인해 본다. 그럼에도 누락되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여하튼 우리가 사용하는 문장 속에는 의외로 재확인해야 할 정보값이 꽤 된다. 어쩌면 내가 웹상에 무심히 써 올리는 문장 속에도 그런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원고를 읽다가 샛길로 새서 그 지역 탐방을 한 일도 조금 있었다. 이런 곳에서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그 정서를 짐작해 봤다고 하면 좀 더 그럴싸한 변명이 되려나. 그러다 보면 몇 군데 가고 싶어지는 곳들이 생겼고 그렇게 다녀온 곳들도 몇 있다.


문득 내가 다녀온 국내의 도시가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이전의 여행들을 모두 '놀러 갔다 왔다'라고 표현한 것은 내가 그걸 여행이라고 느끼지 않아서일 것이다. 내게 '국내여행'이란 단어는 어쩐지 학창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어린 시절 주말이면 부모님이 억지로 깨워 가물가물한 눈을 홉뜨며 떠났던 국내의 여러 명소들. 학교에서 떠나는 소풍이나 수학여행. 그런 것이야말로 정말 국내여행처럼 느껴졌던 탓이다. 생각해 보면 머릿속에서 여행의 개념을 주체적이냐 주체적이지 않냐로 갈라둔 것 같다. 주체적으로 떠난 거면 '놀러 갔다 온' 것이고, 수동적으로 다녀온 것이면 국내여행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알 수 없는 분류법은 뒤로 하고 다시 내가 다녀온 국내의 도시들이 몇 군데나 될지, 또 안 가본 곳이 얼마나 많을지 한눈에 살펴보고 싶었다. 직관적으로 파악해 보기 위해 인터넷에서 대한민국 지도를 다운로드하여 '여행'이든 '놀러 갔다 온' 것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곳에 내려서 차라도 한 잔 마신 적이 있다면 무조건 색칠을 해보았다. 갔었다고 하긴 애매한데? 싶은 곳도 있었지만 무시하고 일단 최대한 많이 체크해 보기로 했다. (아 물론 여주휴게소에 들렀다고 해서 여주를 색칠하는 건 금지.) 그러나 웬걸. 이런 느슨한 기준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한 번도 안 가본 국내의 도시들이 많았다. 이런 곳이 있었어? 하는 지명도 꽤 됐다. 나는 하얀 여백을 들여다보며 잠시 침묵했다.


안 가본 곳이 이렇게 많다니.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이곳들을 보러 가는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안 갔을까 싶은 보석 같은 곳을 발견해보고 싶기도 했다. 마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처럼 생소한 지명의 도시를 찾아가 문을 두드려 보기로 한 것이다. 초대한 이는 아무도 없지만.


개인적으로 제약을 걸어두면 급격하게 하기 싫어지고 도망치고 싶어지는 병이 있기 때문에 기간은 정해두지 않기로 했다. 살면서 가급적 많은 도시들을 가 보자. 무조건 빨리 해치우려 하기보다는 '갔었다고 하긴 애매한데?' 싶은 곳도 추가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나라의 도시들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지난 여행의 기록도 틈틈이 기록할 예정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만의 대한민국 지도가 완성돼 있겠지, 하는 기대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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