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업에서의 UX디자인업무
안녕하세요, 현업에서 UX디자이너의 직함을 달고 일하고 있는 zanzan입니다.
#1.
사람들은 UX에 대해 모호하지만, 거창하고, 화려하고, 멋있게 이야기합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UX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아니, 아마도 있긴 했겠지만, 제가 보는 채용공고에는 잘 없었습니다.
디자이너를 뽑습니다.
웹디자이너를 뽑습니다.
디자이너, 웹기획자, 웹디렉터, 인터렉티브 디자이너라는 직함으로 해외에서 일하다 한국에 돌아올 때 즈음 UI/UX디자이너라는 말이 채용공고에 많아지더니 요즘은 오히려 웹디자이너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웹디자이너는 광고나 마케팅팀의 웹배너나 뉴스레터, 사이트운영을 위한 디자이너인 듯한 느낌이 들고,
UI디자이너는 그림을 그리는 GUI디자인업무자를 말하는 것 같고,
UX디자이너는 서비스나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안그리기도 하고 그냥 회사에 따라 업무가 다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웹디자이너나 UI디자이너에 비해 UX디자이너는 뭘하는 사람인지 확 와닿는게 덜합니다.
UX디자이너라는 직함을 달고나서부터는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뭐하는 사람인지 계속해서 설명하고 다녔습니다. 최대한 쉽게 설명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쉽게 한마디로 정의내려지지 않아 그들이 내가 하는 일이 뭔지 잘 이해했을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으로 세상을 평정한 후 좀 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쉬워져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스티브잡스가 UX를 그렇게 중요시 했대! 쓰기 편하고,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가져다 줬대!! UX디자이너는 그런일을 하나봐!!"
그런일... 이라는거, 이해가 잘 되시나요?
#2.
제가 하는 업무는 이렇습니다.
현재 있는 서비스에 대해 조사하고 이해한 후,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거나 쫓아다니면서 관찰하고,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이나 이해관계자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보고
그 중 도출된 몇 가지를 적용해본 후,
반응을 살펴보다가
또다시 개선점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것을 적용해보는 업무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꽤나 거창하고 멋진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사실 당장 회사에 앉아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은 기계적으로 화면설계를 치고 있다던지, 개발자가 후다닥 만들어달라는걸 시간에 쫓기며 만들어준다던지, 결정에 대한 사용자리서치가 고작 2,3개의 샘플밖에 수집하지 못하다던지 하는 것들입니다. 당장의 개발산출물이 급한 곳에서는 실사용자만나는 과정을 건너뛰고 그저 내부이해관계자의 지시에 따라 간단한 조사와 벤치마킹으로 빨리 화면설계를 그려야 했습니다. 좀더 고민해볼 시간이 주어졌던 신규사업을 할 때는 워크샵을 통해 아이디어를 모아보고, 프로토타입을 통한 사용성테스트를 단계별로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화면설계를 찍어내는 사람 같기도 하고, 스토리보드에 따라 서비스나 기능을 정의하는 기획자같기도 하고, 행동이나 데이터를 분석하다보면 분석가이자 마케터같기도 하고, 프로토타이퍼같기도 하고, 퍼실리테이터같기도 하고, 화면디자인을 하는 비주얼디자이너같기도 합니다.
정확히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정말 UX디자인을 하고 있는게 맞는지?
나는 어떤 UX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건지? 어떤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은건지?
#3.
제 주변의 UX디자이너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일합니다.
대체로 디자인분야 출신이 많았지만, 개발 또는 기획분야 출신의 UX디자이너들과도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UX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각각 할 수 있는 분야는 조금씩 다릅니다. 각각 사고하고, UX결과를 도출해내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UX의 여러 단계 중에서 각자 좀더 잘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누구는 UX앞단의 리서치와 사용자에게 의미있는 데이터를 뽑아내서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것을 잘하고, 누구는 그것을 이해관계자에게 사내 전략과 더불어 설득하기를 잘하고, 누구는 도메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결과물의 폭이 넓기도 하고, 누구는 인사이트를 실제 화면에 표현하는 업무를 잘하기도 합니다.
그런것으로 인해 가끔 충돌이 있기도 합니다.
각기 잘하는 분야가 UX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각기 잘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보완이 되고, 서로를 보면서 배우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 또 하나만 잘해서는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서로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겁니다.
#4.
그렇다면 나는 어떤 UX디자이너일까요?
감각좋고, 비주얼적으로 월등히 뛰어난 UX디자이너들을 보면, 그들과 차별점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 '나는 앞단의 리서치와 분석을 잘하는 UX디자이너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용자의 숨겨진 포인트나 관찰을 잘하고 이를 잘 뽑아내는 UX디자이너들을 보면, '나는 퍼실리테이션과 모더레이팅이 강점인 UX디자이너가 되어야지'라는 생각도 하고요,
한창 빠른 프로토타이핑이 효과를 발휘했을 때는, '남들이 말로 하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비주얼라이즈하여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UX디자이너가 되어야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학사때 전반적으로 배우던 것을 석사때 좀더 좁은 영역의 연구를 하고, 박사때는 나만의 특정 분야가 생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각각의 다짐이 있었을 때마다 그 분야에 대해 실무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경험해왔습니다. 디자인전공자로서 아직은 직관과 비주얼적인 부분도 포기하기 싫고, 데이터분석가, 행동분석가로서의 UX디자인도 더 배우고, 경험해나가고 싶습니다. 또 UX디자인프로세스안에서만이 아닌 좀더 큰 범위로 UX와 개발, 경영전략, 기술방향을 바라볼 줄 아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점점더 내가 어떤 UX디자이너인지 스스로 더 잘 알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