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닭 잡으러 갔나?

그시절의 인도여행

by 비주류여행자

바라나시(Varanasi), 지금도 그 이름만으로 많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조용히 흔드는 도시다. 어떤 이는 바라나시의 매력에 붙잡혀 그곳에서 몇 달째 떠나지 못하고, 또 어떤 이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인도를 찾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라나시는 여행자들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을 지닌 곳이다.


2005년, 내가 처음 마주한 바라나시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전력 사정은 엉망이었고, 정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다. 해가 지면 불이 꺼지고, 다시 켜지기를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냉장고는 있어도 (잦은 정전으로) 없는 것과 다름없었고, 그 시절 바라나시의 식당들은 모든 재료를 ‘그때그때’ 준비해야 했다. 음식은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이 아니라, 주문과 함께 시작되는 일이었다.


그 무렵 한국에서는 인도 여행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바라나시에도 유독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았고, 그들을 위해 몇몇 한식당이 문을 열었다. 그중에서도 이상하리만큼 인기를 끌던 음식은 바로 ‘닭도리탕’이었다. 왜 하필 닭도리탕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매콤한 국물과 푹 익은 감자, 부드럽게 풀어지는 닭고기는 낯선 향신료에 지친 한국인 여행자들의 속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묘한 힘을 지녔었다.


하지만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바라나시에서 닭도리탕은 기다림을 전제로 한 음식이었다. 주문을 하면, 그제서야 닭을 잡으러 갔다. 치킨을 주문한 뒤 음식이 늦게 나오면, 우리는 흔히 “어디 닭 잡으러 갔냐?”는 농담을 건넨다. 느린 음식에 대한 익살스러운 표현이지만, 그 시절 바라나시에서는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제서야 닭을 잡으러 갔고, 한 그릇의 음식이 상에 오르기까지는 보통 두세 시간, 손님이 많은 저녁 시간에는 네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긴 기다림조차, 바라나시에서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시간처럼 흘러갔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은 견딜 만했다. 단골이 되어 주인과 안면을 트면 ‘예약 주문’이라는 특권이 주어졌다. 두세 시간 전에 미리 가게에 들러 주문을 해두고, 시간을 맞춰 다시 찾아오면 따끈한 닭도리탕이 상 위에 올랐다. 물론 이 소박한 ‘예약 시스템’은 때때로 작은 소란을 낳기도 했다.


“우리가 먼저 와서 기다렸는데, 왜 저쪽 테이블에 먼저 줘요.”

두 시간이 넘도록 기다린 손님들의 음식은 아직인데, 막 들어온 손님에게 먼저 음식이 나가니 말다툼이 벌어질만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모두 진심이었다. 기다림마저 여행의 일부였던 시절,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먹고 있었다.


그 시절의 바라나시는 여행자들만의 도시는 아니었다. 인도의 시간과 정서가 고스란히 스며든 삶의 공간이었다. 가트 주변의 벽면에는 물소의 소똥을 벽에 붙여 말리는 풍경이 흔했다. 그것은 불결함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자 생활의 일부였다. 햇볕에 말린 소똥은 난방이 되었고, 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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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트 벾에 소똥을 말리는 모습과 2017년 같은 장소에 그려진 그래피티


지금은 그런 풍경을 거의 볼 수 없다. 인도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소똥은 더 이상 주요 연료로 쓰이지 않게 되었고, 바라나시의 얼굴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 도시가 달라질수록, 그 시절의 기억은 더 또렷해진다.


가끔은 그때의 바라나시가 그립다.
불편함 속에 사람이 있었고, 기다림 속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매운 닭도리탕 한 그릇은 매운맛이 그리웠던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음식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낯선 땅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안식처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닭도리탕을 먹다 보면, 문득 그때의 바라나시가 떠오른다. 정전 속에서 기다리던 저녁, 말없이 흘러가던 시간, 그리고 늦게 도착했기에 더 따뜻했던 그 한 그릇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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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좌)과 2017년(우)의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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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과 2015년의 바라나시, 변한듯 변하지 않은 묘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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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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