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올라 탄 입석 열차

그시절의 인도 여행

by 비주류여행자

2005년 1월, 뭄바이에서 시작된 인도 여행은 고아(Goa), 함피(Hampi), 하이데라바드(Hyderabad), 아우랑가바드(Aurangabad)를 거쳐 불교 유적지로 유명한 산치(Sanchi)에 닿았다. 이제는 제법 인도에 익숙해졌다고 스스로 느끼던 무렵이었다.

산치의 고요한 유적들을 둘러보고 나서 우리는 다음 행선지를 잔시(Jhansi)로 정했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야간 열차를 예약했는데, 그 표가 문제였다. 우리가 손에 쥔 건 ‘웨이팅 리스트(Waiting List)’ 표였다. 좌석 배정이 확정되지 않은 티켓, 즉 누군가가 취소하지 않으면 자리를 얻지 못하는 입석 표였다.


SV406552.JPG 산치의 불교 유적지

날짜를 바꿔볼까 고민도 했지만, 산치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시골이었다. 유적지 외엔 이렇다 할 거리도, 머물 이유도 딱히 없었다. 결국 “입석으로라도 가자!”는 결심으로 기차에 올랐다. 잔시까지는 약 8시간. 인도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거리였다. 게다가 밤기차. 잠을 못 자면 다음 날 일정이 고스란히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든 자리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기차에 올라탔다. 좌석이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버거웠다.


인도 기차의 객차와 객차 사이, 그러니까 화장실이 있는 연결 통로는 생각보다 넓다. 현지인들 대부분은 그 공간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잠을 청했다. 낯설지만 이상하게 익숙해진 인도의 풍경 속에서, 우리도 조심스럽게 신문지를 펴고 누웠다.


IMG_2568.JPG 화장실이 있는 열차의 연결 구간은 공간이 제법 넓다.


나는 원래 추위를 잘 타는 편이다. 새벽이 되자 바닥의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결국 친구를 남겨두고, 나만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아래층 침대칸의 빈 모서리에 조심스레 몸을 웅크린 채, 여느 인도 사람처럼 잠시 눈을 붙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장실에 가기 위해 다시 객차 밖으로 나왔을 때, 친구는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누워 있던 자리, 그러니까 빈 신문지가 깔려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인도 아이가 ‘큰일’을 해놓고 간 것이다. 친구는 이상한 냄새에 눈을 떴고, 눈앞에 놓인 그 광경에 그저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잠시 후,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다가와 연신 “쏘리, 쏘리…”를 외치며 조심스럽게 신문지를 걷었다.


친구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어떻게 혼자 도망칠 수 있냐!”며 나를 원망했다. 나는 “춥잖아…”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놨고, 결국 우리 둘은 마주 앉아 배를 잡고 웃었다.


“만약 내가 자다가 몸을 뒤척이기라도 했다면…”

친구의 말에 우리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를 쳤다. 그날 밤, 인도의 기차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강렬한 기억을 내게 남겼다. 여행이란 결국, 이런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로 채워지는 것 아닐까. 나는 점점 그렇게 여행의 묘미에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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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SL클래스 열차
인도의 어느 정차역, 카메라를 쳐다보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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